현대자동차 넥소를 만났다. 수소자동차다. 정확하게는 수소연료전지자동차다. 수소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들고 이 전기로 모터를 돌려 차가 움직인다. 배출가스는 없다. 수증기 혹은 물이 나온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가 나오는데 수소연료전지는 그 과정을 반대로 진행한다.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물을 뱉어내는 것. 엔진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엔진룸에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엔진 없는 엔진룸을 어떻게 불러야할지도 고민거리다.
3월 출시 예정. 아직 출시하기 전인 넥소가 이 시점에 등장한 건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이다. 올림픽이야말로 전 세계를 상대로 수소자동차의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현대차에 수소차는 의미가 크다. 200년 가까운 자동차 역사에서 한국이 선두권에 진입할 수 있는 분야다. 적어도 수소차 분야에서 현대차는 앞선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차의 뒷부분에 적용할 법한 라인을 정면에 과감히 적용했다. 호라이즌 포지셔닝 램프다. 지평선처럼 얇은 라인이 보디를 가로지르고 있다. 엔진의 시대에서 전기차를 지나 수소차로 넘어가는 ‘시대의 경계선’으로 해석해 본다.
딱 좋은 크기다. 호화롭게 넓지도 않고, 궁색하게 좁지도 않다. 불편하지 않게 뒷좌석에 앉을 수 있었고, 트렁크 공간도 넓게 확보했다.
계기판 옆으로 이어진 대형 모니터가 눈길을 끈다. 책상 위의 듀얼모니터 느낌이다. 이제 자율주행 기능이 더해지면 모니터의 역할은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떤 일들이 가능할지 본격적인 상상력의 싸움이 펼쳐질 무대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는 다양한 조작 버튼들이 자리하면서 큰 벽을 이루고 있다. 변속레버도 버튼식으로 배치했다. 좁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조수석으로 빠져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긴 그럴 일도 없다. 운전석에서 내린 뒤, 차 스스로 주차하는 기능이 있다.
넥소는 조용했다. 엔진과 더불어 엔진 사운드도 사라진 탓이 크다. 시속 80km까지는 타이어가 노면을 밀어내는 소리 정도가 들릴 뿐이다. 그 이후에서는 바람소리가 속도에 따라 커진다. 잔잔한 소리가 점차 커져서 계기판을 보면 제법 빠른 속도를 알려준다. 엔진 소리 빠진 고속주행의 느낌은 색다르다.
현대차의 운전자 주행보조 시스템(ADAS)은 넥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주차와 출차가 가능하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주차할 때 아주 좋다. 차선이탈방지 조향보조(LKA)는 차로 유지보조(LFA)로 기능을 더욱 가다듬었다. 이는 0-150km/h 구간에서 차로 중앙을 유지하도록 조향을 돕는 기능이다. 훨씬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작용했다. 굽은 도로에서 차선을 벗어날 것같은 상황에서 강하게 차로 안으로 조향해내는 느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3개의 수소탱크는 트렁크 아래에 배치했다. 탱크를 3개로 나눠 분산 배치해 공간을 좀 더 영리하게 사용했다. 트렁크 바닥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 역시 부족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수소탱크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화재, 충돌 테스트 등을 거쳤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수소를 가득 채우는데 드는 시간은 5분가량이다. 1회 충전으로 609km를 달릴 수 있다고 현대차는 밝혔다. 수소탱크의 용량은 약 6.3ℓ.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있는 수소충전소 관계자에 따르면 수소 가격은 리터당 7,000원 정도라고 한다. 탱크를 가득 채우는데 약 4만 원 정도가 들고, 600km를 달릴 수 있는 것.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수소 가격, 정부의 지원금, 이 차의 가격 등이 모두 확정된 게 없다. 연비도 편차가 크다. 현대차가 밝힌 연비는 96.2km/kg, 계기판은 58km/kg을 알려주고 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 연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좀 더 찬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수소차의 경제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주행가능거리도 메이커 발표와는 오차가 컸다. 일산에서 출발할 때 수소를 가득 채운 상태였지만 250km를 달려 평창에 도착할 때쯤엔 주행가능거리가 120km가량 남겨뒀을 뿐이었다. 400km 주행이 빠듯하다는 얘기다. 이 역시 혹한 때문일 수 있다.
화창한 봄날, 이 차가 공식 데뷔할 때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 할 숙제로 남겨둔다.
평창에 도착해서 넥소 자율주행차를 타볼 기회를 얻었다. 정해진 코스를 10분 남짓 함께 타보는 자리였다. 운전자는 손과 발을 차에서 완전히 떼고 자동차는 카메라와 센서 등에 의지해서 움직였다. 차선 변경, 신호등 인식, 회전 등을 완벽하게 해냈다.
황색 점멸등이 있는 교차로, 맞은 편에 좌회전 깜빡이를 켠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시승차는 교차로에서 멈춘 뒤 잠시 멈칫거렸다. 시승차와 버스 모두 양보를 위해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약간의 어색한 시간이 흘렀고 시승차가 먼저 움직여 교차로를 빠져나왔다.
원형 교차로, 즉 로터리에서 차들이 많을 때 진입 순간을 포착하지 못해 오래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실제 주행에서는 진입하고 벗어나기까지 부드럽게 이동했다.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다. 넥소라는 자동차는 완성돼 있지만 이를 둘러싼 법, 도로, 시장, 산업환경 등이 확실하게 거의 없다. 자동차 메이커의 기술 발전을 다른 부분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신새벽,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건 넥소 탓이 아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인테리어 재질은 조금 더 고급스러울 필요가 있다. 대시보드와 도어패널 등이 무척 고급스럽게 보이지만 만져보면 플라스틱이다. 친환경차의 특성을 살려 일부에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했지만, 고급감은 많이 떨어진다.
12곳에 불과한 수소충전소 수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그나마 절반가량은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연구용이어서 수소차를 사려는 결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