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서쪽 끝 포르투갈을 찾은 건, BMW X2 때문이다. BMW가 새로 선보인 차다. “새로 선보인”이라는 말은 습관처럼 하는 관용어구가 아니다. “전에 없던 차를 새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BMW의 족보에 X2가 새로 이름을 올린 것.
X2는 SUV 풀라인업을 향한 BMW의 포석이다. 이제 X7이 더해지면 1에서 7까지 X 라인업이 완성된다. 8까지 넘보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거기까지 얘기하는 건 성급하다. 1, 3, 5, 7을 기본으로 하고 2, 4, 6을 변형 차종으로 배치하는 게 BMW의 법칙. 따라서 X2는 ‘쿠페’ 스타일이다. X2는 X1, 액티브 투어러와 플랫폼을 같이 쓰면서 BMW의 콤팩트 차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시승차는 X2 20d x드라이브. 모든 시승차는 갈바닉 골드로 컬러를 통일했다. X2의 대표 컬러인 셈이다. 밝은 톤의 황금색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대서양의 파란 바다와 참 잘 어울렸다. 작은 차엔 밝은 컬러가 잘 어울린다. 다만 ‘내 차’를 고를 땐 환한 색을 피한다는 게 함정이다.
키드니 그릴은 사다리꼴이다. 위가 좁고 아래가 넓다. 그 안으로 액티브 그릴 셔터가 있다. 꾹 다문 입처럼 굳게 닫힌 그릴은 한참을 달린 뒤 보면 열려있다. 공기의 흐름, 엔진룸의 열관리를 위해 그릴이 셔터처럼 열고 닫히는 것.
LED 헤드램프는 높게 배치했다. L자형 브레이크등이 독특한 선을 그리며 단정한 틀 안에 자리했다. 뒤에서 보면 딱 벌어진 어깨처럼 넓은 차폭 위로 조금 좁아 보이는 지붕이 얹혀 있다.
옆 모습, 특히 루프라인이 중요하다. X2니까 쿠페고 쿠페는 지붕 라인이 뒤로 갈수록 쳐져야 한다. 루프 라인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살짝 각을 주고 뒤로 낮아지는 라인은 좀 더 내릴까 말까, 주저하면서 끝까지 뻗어있다. 디자이너의 깊은 고민이 여기에 담겨있다고 나는 봤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일단 패스. 휠 하우스는 원형인 듯 사각인 듯 어중간한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 그 안에 225/45R19 사이즈의 피렐리타이어가 있다.
인테리어는 충분히 고급스럽다. 프리미엄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콤팩트’한 차급을 만회라도 하듯 가죽과 금속 재질을 아끼지 않고 인테리어에 사용했다. 버킷 타입의 가죽 시트는 앉는 순간 피부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다.
뒷좌석은 치열함의 흔적이 보인다. 콤팩트 SUV의 뒷좌석은 좁아도 탓하기 힘든 공간이다. 작은 차에 5인승의 기준을 맞춰 내는 것만으로 칭찬받을 일이다. X2는 좁은 공간을 영리하게 연출해 내고 있다. 뒷좌석이 좁지 않다. 무릎 앞으로 최소한의 여유를 확보하고 있고 앉은 자세도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쿠페 라인을 적용했다면서도 머리 윗 공간의 압박은 전혀 없다. 게다가 가죽과 금속 소재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프리미엄’의 격을 완성해 내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겐 가장 어려운 게 ‘콤팩트’ 차급이다. 고급인데 작고, 작지만 좁지 않아야 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소비자를 설득해내야 한다. 담배, 음료수 사오고 잔돈은 너 가지라며 1000원 짜리 지폐 한장 받은 졸병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 자체가 모순인 ‘프리미엄 콤팩트’. 최악의 조건을 조율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모든 요소들을 조화롭게 한데 묶어내는게 말이 쉽지 그 과정은 아비규환이 아니었을까. 이 차를 개발했던 그들은 서로 얼마나 핏대를 세웠을까.
X2는 이런 악조건과 모순들을 영리하게 극복해 냈다. 비례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BMW다운 디자인을 완성했고, 작은
크기에도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냈다. 박수를 쳐줄 만하다.
굵은 스티어링휠은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다. 손에 꽉 찰 만큼 굵다. 2.75회전, 3회전 하기 전에 스티어링 휠은 멈춘다.
2.0 디젤엔진은 4,000rpm에서 190마력의 힘을 낸다. 40.8kgm의 최대토크는 1,750~2,500rpm 구간에서 고르게 터진다. 엔진은 시종일관 얌전하다. 심지어 고속에서조차 그랬다.
고속도로 1차로에 올라서니 어렵지 않게 고속주행이 가능했다. 조용히, 하지만 힘 있게 밀고 나갔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까지 떨어진다. 8단 변속기의 조율을 거친 결과다. 수동변속을 이어가면 같은 속도에서 3단까지 내려간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120km/h. 차체는 여전히 차분했다. 빠른 속도에 살짝 흥분될 법도 하지만 X2는 조용했고 흔들림이 적었다. 160km/h에서야 바람소리가 들렸다. 엔진소리는 이 속도에서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속도 영역에서 엔진은 차분했다. rpm이 순간적으로 치솟을 때 말고는 엔진 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시속 200km를 넘보는 고속에서도 그랬다. 물론 바람소리가 큰 탓도 있지만, 대체로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는 편이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살짝 긴장한 느낌이 들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rpm이 조금 더 올라가면서 힘이 실리기는 하지만 엔진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건 아니다. 가속을 이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박차고 나서는 게 제법 힘을 쓴다. 메이커가 밝힌 100km/h 가속 시간은 7.7초다.
사륜구동의 발놀림은 단단했다. 출발 이후 100km/h까지는 조용하고 편안했고, 이후 고속주행에서는 안정감이 앞선다. 공기저항계수는 0.28. 바람소리와 흔들림이 속도에 비해 크지 않아 빠른 속도를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풀컬러로 깨끗하게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정확하게 속도를 얘기해준다. 체감속도보다 훨씬 빠른 숫자였다.
와인딩이 계속 이어지는 포르투갈의 시골길. X2는 끊임없이 코너를 타고 달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을 춤을 추듯 달렸다. 크지 않은 차체, 적당한 시트 포지션, 사륜구동 등의 요소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코너링이 깔끔했다. 속도가 빠를 때 약한 오버스티어가 느껴지지만, 이럴 땐 스티어링을 조작하는 것보다, 가속페달에서 힘을 빼는 게 확실한 처방이다. 코너에서 X2는 확실히 빛났다. 조금 빠르면 다이내믹해서, 느리면 안정감이 도드라져서.
X2의 유럽 현지 가격은 4만 유로 전후. X드라이브 M 스포츠 옵션인 경우는 5만 유로를 넘는다. 신차 발표의 화룡점정은 가격이다. 한국에서의 가격을 어느 정도까지 낮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GLA, 레인지로버 이보크 정도를 경쟁 모델로 꼽고 있다. 한국에서 GLA는 5510만 원, 이보크는 7,000~8,000만 원 구간이다. 애매하고 넓기는 하지만 그사이 어디쯤이 X2의 좌표가 될 터. 화룡점정이 어디에 찍힐지 두고 볼 일이다.
X2는 상반기 중 한국 상륙을 예고하고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스포츠 액티비티 쿠페, SAC로 BMW는 이 차를 정의하고 있다. ‘쿠페’임을 강조하고 있다. 짝수 번호를 부여한 이유다. 하지만 쿠페, 혹은 쿠페 스타일이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정직한 SUV의 모습이다. X6나 X4처럼 분명한 쿠페 라인이 보이지 않는다. 컴팩트한 크기에 쿠페 라인을 분명하게 적용하면 공간 손해가 치명적이게 된다.
쿠페냐 아니냐, 소비자 입장에선 의미 없는 논쟁이다. 홍동백서를 따지는 유학자들의 고루한 논쟁과 다르지 않다. 쿠페든 아니든 BMW가 X2라는 멋진 소형 SUV를 새로 만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