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로는 이 차가 고성능 세단임을 알아채기 힘들다. 벤츠 E 클래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메르세데스의 고성능 브랜드, AMG 배지가 붙어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10세대 E 클래스에 AMG 배지를 단 첫 모델, 더 뉴 메르세데스 AMG E43이다.
실루엣은 E클래스지만 디테일에 AMG가 살아있다. E 클래스와 가장 다른 부분은 라디에이터 그릴. 다이아몬드형상의 크롬핀 그릴이다. 그릴 옆으로 AMG 배지를 살포시 얹었다. 그릴 중앙의 벤츠 삼각별, 그 바로 위 보닛 끝에 다시 벤츠 삼각별 엠블럼. 중첩된 감이 없지 않다.
멀티빔 헤드램프는 좌우 각각 84개 LED램프로 구성됐다. 대향차의 눈부심까지 고려하고 조향에도 대응하는 스마트한 램프다.
트렁크 리드 끝에 카본 리어스포일러를 배치했다. 끝을 치켜올린 선이 살아있다. 고속주행에서 다운포스 효과로 안정감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탁월한 고속주행 안정감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파츠다.
540 리터 크기의 트렁크 안쪽 위로는 맨철판이 드러나 있다. 스페어타이어 대신 응급용 컴프레서를 비치했다.
도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고급스러운 실내가 펼쳐진다. 가죽과 카본을 기본으로 대시보드를 구성했다. 조금 차갑지만 명징한 카본과 부드럽고 포근한 가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빨간 스티치를 넣어 포인트를 줬다. 가죽과 나무를 사용한 인테리어와는 또 다른, 하지만 여전한 고급감이다.
부메스터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은 출력 590와트의 스피커 13개로 구성된다. 입체감이 살아있고 질감이 높은 살아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최고급 수준의 오디오다.
D컷 스티어링 휠은 손이 닿는 부분에 부드러운 가죽을 덧대 밀착감을 높였다. 딱 2회전한다. 고성능 세단에 딱 들어맞는 타이트한 조향비다. 스티어링 휠 아래엔 패들 시프트가 자리했다.
두 개의 대형 모니터로 구성된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연이어 배치됐다. 시원한 화면으로 다양한 정보가 선명하게 제공된다. 터치스크린은 아니다. 커맨드 시스템의 조절레버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고 기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은 한글 자판 입력이 불편하다. 손 글씨로 입력할 수 있어 그나마 조금은 낫지만,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스티어링 휠에 자리한 터치 버튼으로 커맨드 시스템을 다룰 수도 있다. 편하다.
운전석 마사지, 다이내믹 시트, 다이내믹 실렉트, 서스펜션 세팅, 에코스탑, 교통표지판 어시스트,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액티브 사각지대 어시스트, 주의 어시스트, 분단위 연비, 차 높이 조절 등 매우 다양한 기능을 커맨드 시스템으로 선택, 조절할 수 있다. 정확하게 차를 다루기 위해선 매뉴얼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
시동 걸고 가속페달을 꾹 누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린다. 숨소리가 다르다. 미소를 부르는 소리다.
앞에 245/35ZR20 뒤에 275/30ZR20 사이즈의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S 타이어를 신었다. 엔진의 힘을 받아 노면과 싸우는 최종 병기다. 복합 연비는 8.9km/L로 5등급.
편안하게 차를 다루며 이동할 때, 평상시 거동은 E클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편안하게 도로를 타고 넘는다.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플러스는 첨단 운전 보조 장비들이 망라된 시스템이다. 차선유지 조향 보조는 매우 정교하게 반응한다. 차선을 따라 중앙을 유지하며 달린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연계해 차간거리를 잘 유지하며 반자율운전을 수행한다. 넓은 화면에 펼쳐지는 선명한 내비게이션 지도는 5개 차로중 2차로로 운행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최고수준의 반자율운전시스템이다.
소음 차단은 훌륭한 수준이다. 옆에서 트럭이 함께 달리는 데 소리가 거의 안 들릴 정도다. 거친 시멘트 도로에서 타이어 노면 마찰음 정도가 조금 유입된다. 매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에서 실내는 적막강산이 된다.
401마력의 힘을 내는 V6 3.0 바이터보 엔진은 전형적인 다운사이징 엔진이다. 주행모드에 따라 엔진, 변속기, 조향 반응 등이 연동한다.
스포츠 플러스를 택하면 엔진 사운드가 가장 먼저 반긴다. 웅장한 사운드를 꽉 눌러놓아 퍼지지 않게 했다.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감성을 자극한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소리다. 킥다운 하면 힘찬 엔진소리와 더불어 순식간에 속도가 빨라진다. 변속감도 부드럽다.
매뉴얼 모드를 택해 패들 시프트로 수동변속을 이어가면 자동변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운전자가 변속을 할 때까지 기어를 물고 늘어지는 것.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이런 반응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한다.
지동 9단 변속기를 사용해 시속 100km에서 rpm은 1,400 정도를 보인다. 3~9단이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속도 구간을 촘촘하게 쪼개서 기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100km/h에서 3단을 이용해 스포티하게 차를 다룰 수도, 9단으로 세상 편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운전자가 택할 수 있는 기어가 그만큼 많다.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0-100km/h는 4.6초. 수퍼카급의 순발력이지만 AMG 모델들 중에선 귀여운 수준이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강한 가속을 이어가면 힘이 툭 끊어지면서 바로 다음 기어가 이어받는 계단식 느낌이 온다. 불안한 반응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잘 맞물리는 느낌. 가속하는 순간에 감탄사만 나온다. 극한 속도에서도 차체가 안정되고 바람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는다. 사륜구동시스템, 단단하면서 정교하게 작동하는 서스펜션, 리어 스포일러, 광폭 타이어의 그립 등이 어울려 빚어내는 주행안정감이다. AMG 에어서스펜션은 노면의 굴곡, 노면의 쇼크를 거의 무시하듯 달린다.
공차중량 1,915kg. 아주 많은 장비들을 집어넣은 중형 세단을 2톤 넘지 않는 무게로 만들어냈다. 경량화는 힘을 더 크게 만들어 준다. 401마력의 힘이 언제 어떤 순간에도 짜릿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AMG E43 4매틱의 파워트레인은 E400 4매틱과 같다. V6 3.0 가솔린 엔진에 9단 변속기 조합이다. 기어비도 같다. 출력은 401마력과 333마력, 토크는 53.0kgm, 48.9kgm로 AMG E43이 앞선다. 연비는 8.9와 9.0km/L로 겨우 0.1km/L 차이다. 같은 엔진이지만 프로그램을 달리해 훨씬 높은 성능을 구현해 냈다.
고속 코너는 재미있다. 일단 속도를 낮춘 뒤 코너에 진입, 속도를 조금씩 높이는데 잘 버틴다. 사륜구동 덕분에 한계속도가 훨씬 더 높아 흔들림 없이 달려 나간다. 다이내믹 시트도 힘을 보탠다. 몸이 기울어지는 부분으로 시트가 부풀며 몸을 확실하게 지지해 준다. 드라이버의 안정감은 차체의 안정감과 직결된다.
타이트한 코너에서도 탁월했다. 타이어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조용히 잘 돌아나간다. 타이어 역시 이 차의 성능과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
차창으로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쯤 속도를 체크했다. 체감속도와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매우 빠른 속도였다. 시종일관 돋보이는 건 안정감. 강한 힘을 안정감 있게 구현해내고 있다. 낮은 속도에서 최고속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안정감을 보였다.
AMG 브레이크 시스템은 고속에서 강한 제동도 깔끔하게 마무리해 낸다. 높은 속도를 정확하게 제어한다. 제동 하면 차가 앞으로 숙이는 게 아니라 밑으로 주저앉는 느낌이다. 거칠지 않다.
놀라운 성능을 보이는 세단이지만 요란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 차를 지배하는 건 겸손함이다. 생김새부터 그렇다. 고성능을 강조하는 과장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AMG 배지 정도가 이 차의 정체를 살짝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거칠 것 없는 성능도 때로 겸손했다. 엔진 사운드가 그랬다. 찢어지는 소리로 나를 봐주기를 강요하는 소리가 아니다. 힘차고 강하지만 주변을 자극하지 않는 잘 제어된 소리는 겸손했다. 겸손한 고성능, E 클래스와 잘 어울리는 컨셉이 아닐까.
판매가격은 1억 1,400만원. E 클래스중 가장 비싸고, AMG 모델 중에선 비교적 낮은 편이다. AMG를 경험하고 싶은 이라면, 도전해볼만한 가격이 아닐까 싶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단조롭다. 내비게이션과 연동이 안 돼 길안내를 확인하려면 내비게이션을 봐야 한다. 좀 더 많은 정보를 효과적인 그래픽으로 담아놓을 필요가 있다.
커맨드시스템 컨트롤러에 가려 그 오른쪽에 배치된 버튼이 잘 안 보인다. 일종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 버튼을 보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모든 버튼들이 시야 안에 들어오도록 좀 더 기능적으로 보완할 필요는 있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