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딱 좋은 힘에 가벼운 몸, 10세대 혼다 시빅

혼다 시빅이 10세대로 시프트업을 시도하다 강력한 변속충격에 휩싸였다. 녹 문제로 발목을 잡혀 버렸다. 신차출시와 함께 터져버린 녹 파동 때문에 시빅은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할 처지에 놓였다. 혼다코리아는 원인 규명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고 녹을 제거해준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혼다의 명성에도 녹이 피고 있는 셈이다.

시빅은 1972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40여 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2,400만대가 팔린 차다. 어코드와 더불어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중이 크다. 10세대 시빅은 ‘와이드&로’ 스타일로 훨씬 안정감 있는 비례를 구현했다. 잘 숙성된 모습이다.

LED 헤드램프와 두터운 크롬라인으로 구성된 라디에이터그릴이 정면 모습을 이룬다. 앞 뒤 215/50R17 사이즈의 파이어스톤 타이어가 휠 하우스를 채웠다.

공기저항을 고려한 것일까, 바깥쪽을 뜯어놓은 형상의 사이드 미러가 눈길을 잡는다. 크롬으로 마감한 도어핸들이 반짝인다. 차창에 붙은 에너지효율 스티커에는 복합연비 14.3km/L, 2등급이라고 표시됐다. 2.0 가솔린 엔진으로는 우수한 수준이다.

뒷모습에서는 차체의 좌우측을 C자 형태로 감싼 리어램프가 가장 눈에 띈다. 선이 강한 뒷모습이다.

3분할된 계기판은 주행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알려준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볼륨버튼은 손가락으로 쓸어내는 방식이다. 일자형 변속레버는 여전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컵홀더와 연결되는 센터 콘솔박스는 공간분할을 재미있게 했다. 두 개의 컵홀더는 깊이가 다르고, 센터 콘솔의 덮개를 앞으로 밀면 공간을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다.

DOHC 2.0 아이브이텍 엔진은 160마력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이 1300kg이니 마력당 무게비는 8kg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몸무게를 낮춰 우수한 효율을 만들어냈다.

스티어링 휠은 2.2 회전한다. 작은 차에 짧은 조향비, 잘 어울리는 세팅이다. 날렵하고 칼같은 조향비를 기대할 수 있겠다. 8인치 모니터는 선명하게 지도를 보여준다. 햇볕 강한 대낮에도 깔끔하게 보인다.

출발 후 서행 구간, 움직임이 가볍다. 낮은 속도에서의 조용함은 수준급이다. 디젤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 가솔린 엔진의 조용하고 경쾌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60km/h에서 타이어 마찰음이 자글거리며 실내로 파고든다. 길 상태가 안 좋은 곳에선 어김없이 드러나는 소리다.

변속레버 옆에는 에코버튼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다. 스포츠 버튼은 없다.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효율적으로 달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버튼의 크기가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어지간하면 이를 사용하라는 압박이다.

공차중량 1300kg, 움직임도 가볍다. 사뿐거리며 달려 나간다. 19.1kgm의 최대토크는 4,200rpm에서, 최고출력 160마력은 6,500rpm에서 터진다. 고회전에서 최고의 파워를 내는 엔진이다. 160마력. 큰 힘은 아니나 차체가 가벼워 상대적으로 큰 힘으로 다가온다. 힘은 몸무게와 반비례한다.

가솔린 엔진 특유의 편안함이 돋보인다. 고속주행을 제외하면 차체는 안정돼 있고, 대체로 조용한 실내를 유지한다. 부드럽게 다루면 시종일관 조용하고 편안한 실내를 유지한다.

힘은 무단 변속기의 조율을 거쳐 드러난다.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강한 힘이 차체를 확 나꿔챈다. 엔진이 과하게 힘쓰는 소리는 가끔 안쓰러울 때가 있다. 속도를 끌어올리며 쥐어 짜내는 소리다. 얇고 높은 가솔린 특유의 음색, 좁은 관을 통과하는 소리다. 높은 rpm을 이어갈 때, 가끔은 이러다 숨넘어가지 싶다. 킥다운 버튼은 없다. 저항 없이 끝까지 밟힌다.

고속주행을 이어가면 실제속도와 체감속도가 일치한다. 달리는 만큼 떨림과 진동이 전해진다. 속도가 오를수록 불안감이 증폭된다. 적당한 무게감이 아쉽다.

넘치게 팡팡 터지는 힘은 아니다. 성능보다는 효율에 맞춰진 파워트레인이다. 큰 힘을 내며 가속을 이어가기보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이 차를 다루는 게 어울린다. 에코모드면 더 좋다. 그래도 2.0 엔진인데 살짝 아쉬움은 남는다.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에 차를 올렸다. 과감한 움직임을 차체가 잘 버텨줬다. 약한 언더스티어링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 멀티링크 타입의 뒷 서스펜션이 지면과의 밀착감을 유지해주만 때로 가볍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일자형 변속레버지만 D레인지 아래로 S와 L이 있다. S, L을 택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이를 통해 운전자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다. 스텝트로닉이나 패들 시프트가 아닌, 일자형 레버를 혼다는 고집한다. 적절한 기능의 여부는 차치하고, 10년 전 20년 전에도 보아왔던 형태가 주는 시각적 고루함은 피할 수 없다. 세상은 변하는데, 꼬장꼬장한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크루즈컨트롤은 정속주행까지만 가능하다. 차선이탈 경보, 조향유지보조 장치는 없다. 뭔가 허전한 이유다. 국산차에서 높아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조금 부족하다.

시속 100km에서 1,650rpm을 마크한다. 엔진소리보다 노면 소음이 조금 더 많이 들어온다. 편안함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니, 차급에 비해 볼 때 나쁘다고 탓할 수는 없다. 바람소리는 크지 않다. 가속하면 엔진소리가 살짝 살아난다.

브레이크 제동감은 흡족하다. 무게와 속도를 이겨낸다. 흔들리거나 불안정한 움직임 없이 속도를 제어한다.

예견했듯이 스티어링 반응은 예민하다. 작은 조향작동에 크게 반응하며 날렵한 동작을 이어간다. 작은 차엔 역시 날렵한 조향이 어울린다.

판매가격 3060만원이다. 3,000만 원 선을 넘겼다는 건 자신감이 충만함을 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녹 파문이 모든 걸 그르치고 말았다.

오종훈의 단독직입
성능과 반응으로 볼 때 2.0 엔진은 오버스펙이다. 1.6 미만의 작은 엔진이어도 이 정도 성능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역으로 2.0 엔진이라면 좀 더 고성능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아쉬운 대목이다.

계기판 오른쪽 끝에 잇는 리셋버튼. 막대기처럼 길게 뽑아놓았는데 뜬금없다. 심플한 계기판에 엉뚱한 모습. 거슬린다.

녹 파문. 구매한 고객들은 많이 화가 나있다. 사후 조치를 통해 “그래도 혼다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아직 부족해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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