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버스가 시나브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다. 국내에선 현대차가 쏠라티를 출시한 이후 비슷한 스타일의 스프린터도 더불어 주목받는 상황. 해외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소형 버스다. 공항 셔틀로 이 차를 경험했던 이들도 많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는 95년에 첫모델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130개국에서 300여만 대가 팔려나갔다.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섀시를 공급받은 보디빌더 와이즈오토홀딩스에서 제작한 스프린터 유로코치를 만났다.

크다. 길이가 5,926mm로 6m달한다. 높이는 2,350mm. 스탠더드 루프로, 스프린터 중에선 낮은 편이다. 휠베이스는 3665mm. 꽉 찬 크기의 밴이다.

우리에겐 낯선 껑충한 세미보닛 스타일이다. 키가 높아 불안해 보인다. 뒤에서 보면 벽처럼 보인다. 172cm인 기자가 실내에 들어서면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의 높이. 똑바로 설 수는 없지만 불편한대로 서 있을 수는 있다.

11인승으로 꾸며진 실내는 여유롭다. 11명 개개인이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바이제논 헤드램프에 LED 주간주행등을 사용했다. 235/65R16 컨티넨탈 타이어다. 사이드 월이 제법 높은 16인치 타이어. 연비와 승차감을 좀 더 감안한 타이어다. 버스니까 당연한 선택.

V6 3.0 블루이피션시 친환경 디젤엔진이라고 벤츠는 소개했다. 디젤 게이트가 벤츠로 옮겨붙는 와중이다. 친환경 디젤이라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겨지지 않는 게 사실. 요소수를 사용하는 선택적 환원촉매를 사용해 유로 6 기준을 만족시킨다고 벤츠는 밝히고 있다.

스프린터 유로코치의 가격은 부가세별도 7,350만원이고 부가세를 포함하면 8,085만원이다. 사업용으로 이 차를 사용할 경우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기능적으로 꾸며진 실내는 고급스럽다. 시트는 얇다. 아메리칸 풀사이즈 밴의 푹신한 시트와는 다르다. 얇은 골격에 가죽으로 마감했다. 제한된 실내 공간을 최적화하기엔 얇은 시트가 유리하다. 얇지만 가죽을 사용해 고급감을 잃지는 않았다. 시트는 조금 더 뒤로 누일 수 있고 발받침과 간이 테이블도 갖췄다.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 정도 공간도 있다.

2열 시트 앞 중앙에는 접이식 대형 모니터가 있어 운행 중에 TV나 비디오를 즐길 수 있다.

고급스럽지만, 최고급은 아니다. 벤츠가 공급한 기본 뼈대위에 플라스틱 폼을 덧대는 수준에서 마감했다.

운전석 시트는 푹신하다. 시트에 쇼크업소버가 있다. 쿠션의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과속방지턱 넘을 때마다 시트가 출렁댄다. 적어도 운전석에선 요트를 탄 느낌이다. 충격을 넘을 때마다 마치 파도를 타고 넘는 요트처럼 시트가 출렁인다. 운전석 이외의 시트에서는 느끼기 힘든 맛이다. 운전자의 입장에선 이 차의 승차감을 정확하게 느낄 수 없다.

수납공간이 많다. 대시보드 상단, 센터페시아 상단, 선바이저 위쪽, 도어 포켓 등등. 자잘한 소품들을 정돈하기에 유리하다. 함정은 있다. 수납공간이 많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뒤 서스펜션은 흔히 ‘판 스프링’이라 불리는 리프 스프링이다. 두 세 겹의 긴 철판을 묶어 스프링으로 사용하는 형태. 승용차에선 찾아보기 힘들고 트럭 버스 등 상용차에서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장 기본적인 서스펜션 스프링이다. 당연히 고급일 수 없다. ‘벤츠는 고급’이라는 명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부분이다. 스프린터는 상용차여서 모든 부분을 고급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변명은 가능하다. 물론 옵션으로 제공되는 에어서스펜션이나 더 나아가 사륜구동시스템까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벤츠는 무려 600여개의 옵션을 스프린터에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화물차로 이 차를 보면 리프 스프링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화물과 사람을 많이 실을 땐 스프링이 강해야 한다. 대신 승차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계기판은 주황색 단색으로 정보를 표시한다. 크루즈컨트롤이 있어 정속주행이 가능하다. 차선이탈 경고장치가 있어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차선을 넘을 땐 경고음을 내 주의를 촉구한다.

V6 3.0 디젤 트윈 터보 엔진은 190마력, 44.9kgm의 토크를 낸다.

편안한 이동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 11인승 버스다. 시속 110km에 묶이는 속도제한 장치를 달아 놓은 이유다. 과속은 아예 불가능하다.

차폭이 2m 가까워 차선 하나를 꽉 채운다. 시속 80km.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람소리도 없다. 노면 잡소리가 조금 들어오는 수준이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데 딱 좋은 수준이다. 앞 차와 가까워지면 조심하라는 경고가 계기판에 뜨지만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해주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기능이 포함된 드라이빙 어시스텬스 패키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측풍 어시스트다. 측면에 강한 바람이 불 때 휘청이거나 쏠리지 않게 능동형 ESP가 한쪽 바퀴에 제동을 걸어 중심을 잡아준다. 큰 차에서는 아주 중요한 장비다. 이밖에 차선이탈 방지 어시스트, 충돌방지 어시스트, 하이빔 어시스트, 사각지대 어시스트 등이 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킥다운이 걸린다. 마지막 저항점을 넘어서면 엔진이 큰 소리를 내면서 힘을 제법 쓴다. 물론 시속 110km까지만. 계기판 속도로는 120km/h다.

브레이크는 반응이 조금 더딘 편이다. 무거운 느낌. 화물과 사람을 꽉 채웠다면 미리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원하는 지점에서 정지할 수 있다.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스프린터를 타고 급출발 급제동을 한다면 이 차를 운전할 자격이 없다. 실제로 이 차는 제동이 강하지는 않다. 천천히 밟혀 들어가는 느낌, 강하게 제동해도 반응은 느리다. 승용차와는 확실히 다르다.

스티어링 휠은 3.5회전한다. 버스로선 딱 좋은 수준이다. 큰 차에 민첩한 핸들링은 독이다. 차도 운전자도 한 템포 여유를 가져야 한다. 스프린터는 버스니까.

시속 100km에서 2,000rpm을 마크한다. 7단 변속기는 변속레버로 수동 변속이 가능하다. 왼쪽으로 밀면 시프트다운, 오른쪽은 시프트업이다. 5, 6, 7단이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코너에서 전속으로 달리는데 기우는 느낌이 아니다. 꼿꼿하게 선채로 돌아나가는 느낌이다. 기운다는 느낌이 없다. 속도가 제어되고 있어서 그런 자세가 가능하겠다. 자세가 흐트러지기 쉬운 코너에서 자세를 딱 잡는 반응은 인상적이다.

스프린터는 공간이다. 여럿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동 중에 커뮤니케이션, 휴식, 엔터테인먼트를 공유하는 공간으로써 존재 의미가 크다. 엔진과 바퀴로 구성된 파워트레인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척 무딘 차다. 큰 덩치에 느린 동작이 곰돌이 푸우와 닮았다. 가속반응도, 조향반응도, 고속주행도 무디다. 승용차라면 혹평 받을 부분이다. 하지만 스프린터는 버스다. 무딘 반응이 당연하다. 무디지 않다면 혹평해야하는 것.

오종훈의 단도직입
벤츠의 상용차. 벤츠는 고급이지만 상용차는 그렇지 않다. 스프린터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해야 하는 숙명이다. 뒤에 사용된 리프 스프링이 그렇다. 벤츠라는 고급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품을 사용했다. 센터페시아의 컵홀더도 그렇다. 조작할 때 끼긱 거리는 작동음은 벤츠답지 않다. 벤츠라서 비싼데 상용차라 덜 고급스럽다. 벤츠라면, 디테일이 조금 더 고급스러운 게 맞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