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렉서스 RX400h의 등장으로 한국은 비로소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RX400h는 한국 시장에 등장한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최초의 국산 하이브리드로 꼽히는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그로부터 3년 후인 2009년에 판매를 시작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렉서스 RX400h는 하이브리드의 선구자라 할만하다. 수입차가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자극하고 기술개발을 촉발시킨 좋은 사례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하이브리드의 선구자일 뿐 아니라 전도사였다. 수입차 시장이 온통 디젤엔진에 장악될 때도 토요타와 렉서스는 하이브리드 중심의 라인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은 물론, 모든 모델에 하이브리드 차종을 배치해 친환경차 중심의 전략을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다. 시류에 편승해 디젤차를 내놓을 법도 했건만, 디젤엔진에는 눈도 주지 않았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온리 하이브리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철학이 있는 브랜드다.

국내 첫 하이브리드 자동차 렉서스 RX400h는 이제 RX450h로 진화했다. 2016년 초에 신형 모델로 개선됐다. 그 차를 다시 만났다. 하이브리드를 다시 생각하기 위한 시승이다. 시승차는 렉서스 RX 450h 이그제큐티브.

과감한 스핀들 그릴이 적용된 앞모습이다. 강한 모습은 의도적이다. 어딘지 모르게 약할 것이라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선입견을 당당하고 강한 모습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 측면 보디에는 마치 종이를 접은 듯 엣지가 분명한 선이 드러나 있다. 아래쪽으로는 곡면을 줘 볼륨감을 살렸다. 뒷모습은 단정하게 마무리했다. 배기구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범퍼 아래, 안쪽으로 감춰놓았다.

RX의 안팎을 관통하는 디자인 요소는 ‘선’이다. 인테리어에서도 선은 살아있다. 계기판과 나란히 견고한 수평라인을 구성하는 대시보드가 그랬다.

12.3인치 멀티미디어 스크린은 마우스를 응용한 컨트롤러로 작동한다. 터치스크린은 아니어서 모니터에 손가락을 갖다 댈 일은 없다. 당연히 지문이 묻어 더러워질 일도 없다.

스크린을 통한 조작이 번거러우면 그냥 버튼을 눌러 작동할 수도 있다. 많은 버튼들이 배치돼있어 주요 기능들을 대부분 직접 조작할 수 있다. 원샷원킬이 가능한 구조.

뒷좌석은 넓다.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넘는 공간을 확보했고 바닥도 센터터널이 없이 평평해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트 좌우측 아래, 트렁크에 배치된 버튼으로 뒷시트를 접고 펼 수 있다. 앞뒤로 슬라이딩이 가능하고 시트 등받이도 조금 더 뒤로 누일 수 있다. 넓은 공간에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시트다.

뒷 시트 아래에는 하이브리드용 배터리가 있다. 시트 아래에 있는 송풍구는 배터리 열관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장치다.

파워트레인 구성은 조금 복잡하다. 엔진 배터리 모터가 모두 들어가 있는 구조. RX450h는 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3.5리터 앳킨슨 엔진, 두 개의 모터, e-CVT로 구성된다. 최고출력 313마력, 최대토크 34.2kgm다.
전자식 사륜주행 컨트롤은 모터를 통해 후륜구동력을 확보한다. 주행중 계기판을 통해 사륜구동 작동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상주행중에는 앞바퀴 굴림으로 작동하며 가속, 코너링 등을 시도할 때 뒷바퀴에도 구동력이 공급된다.

연비는 12.8km/L. 2,175kg의 공차중량, 3.5리터의 가솔린 엔진 배기량 등을 감안하면 매우 우수한 연비다. 배터리를 이용한 EV모드가 수시로 가동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에 이 같은 우수한 연비가 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도심연비가 고속도로 연비보다 우수하다는 사실. 도심 연비가 13.4km/L로 고속도로 연비 12.1km/L보다 우수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특징이다.

모니터를 통해 에너지흐름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운전하면 저절로 경제운전을 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배터리에 전기를 쌓아두고 싶은 본능이 거친 운전을 절제하게 만들어주는 것.

스티어링 휠은 2.7회전한다. 5m에 가까운 큰 덩치지만 조금 예민하고 민첩한 조향을 기대할 수 있는 조향비를 가졌다.

시속 100km까지의 구간에서 RX450h는 응접실이었다. 그만큼 조용해서 1단으로 작동하는 에어컨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 너무 조용해서 들리는 소리다. 노면에서 발생하는 잡소리들이 아주 낮게 실내에 깔리는 정도가 들릴 뿐 바람소리 엔진소리는 흔적조차 없다.

후방 출돌시 시트를 앞으로 이동시켜 경추 손상을 방지해준다는 시트는 편하기까지 하다. 응접실의 소파 같은 시트다.

가속페달을 깊이 밟아 속도를 높이면 엔진과 모터가 힘을 합해 빠르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시속 200km까지는 이르지 못해 그 전에 속도는 제한됐다. SUV로서는 충분히 빠른 속도다. 가속페달은 킥다운 버튼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 없이 밟힌다.

놀라운 것은 고속주행에서의 안정감. 고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차체의 떨림, 도로 굴곡에 따른 흔들림 등이 거의 없다. 덕분에 체감속도는 실제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운전자의 심리적 불안감이 덜했다.

가변식 사륜구동시스템에 운전자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차가 알아서 구동력을 변환한다. 운전자는 늘 하던 대로 운전에 집중하면 된다.

무단변속기가 보여주는 끊김 없는 가속도 재미있다. rpm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변속이 아니다. rpm이 속도와 함께 증가한다. 이 부분은 평가가 갈릴 수 있다. 다이내믹한 변속감을 즐기는 이들에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수동변속모들 제공하고 있어 이 같은 불만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 변속 과정에서의 동력 손실을 막을 수 있고 부드럽고 편안한 변속과 가속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제동은 묵직한 반응이다. 첫반응은 조금 무겁다거나 느리다고 느낄 수도 있다. 앞으로 콕 박히며 제동하는 것이 아니라 차체가 아래로 쑥 가라않으며 제동이 이뤄지는 느낌이다. 차체가 그만큼 안정적으로 제어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

앞에 맥퍼슨 스트럿, 뒤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적용한 것도 주행안정감이 우수한 이유다. 서스펜션이 노면의 충격을 받는 타이어와 그 흔들림이 전해지는 차체 사이에서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낸다. 충격의 대부분을 잘 걸러줄 뿐 아니라 충격을 지난 후 잔진동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무릎 에어백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에어백이 실내 곳곳에 배치됐다. 렉서스와 찰떡궁합으로 평가받는 마크레빈슨 오디오도 있다. 현장에 있는 듯 고품질의 질감 있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실내가 조용한 차인만큼 최고급 오디오는 최고의 소리를 들려준다.

12.3인치 디스플레이는 터치스크린이 아니다. 조절레버 통해서 작동한다. 에너지 모니터도 보여준다. 동력 흐름을 보여주는 것. 이를 보면서 운전하면 경제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시장에선 디젤의 약세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디젤의 빈자리를 다시 가솔린차가 채우는 건 의미가 없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건 디젤이나 가솔린이나 큰 차이가 없다. 디젤엔진이 미세먼지에 영향을 준다면 가솔린 엔진은 일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해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디젤엔진차나 가솔린 엔진차 보다는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들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물론 더 큰 틀에서의 에너지 전략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건 사회와 국가의 몫이다. 친환경차 공급을 늘리는 게 자동차 메이커의 역할이고 환경에 덜 부담을 주는 차를 선택하는 게 현명한 소비자들의 몫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 하이브리드로 처음 등장했던 렉서스 RX가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쨍하게 해가 빛나는 대낮에 풀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흐리게 보인다. 그늘진 곳이나 어두운 곳에서는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해가 밝은 곳에서는 헤드업디스플레이가 선명하지 않다. 날씨에 크게 상관없이 선명한 헤드업디스플레이를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