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벨라가 한국에 왔다. 레인지로버 브랜드의 네 번째 모델이다. 이보크와 스포츠 사이에 자리하는 중형 SUV다. 프리미엄 니치 마켓을 파고들던 레인지로버는 이제 본격적인 볼륨 메이커로 나설 기세다. 이미 한국에선 수입차 빅5에 들어갔고, 빅3까지도 넘볼 기세다. 디젤 게이트에서도 벗어나 있어 수입차 시장의 판세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브랜드가 바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다.
벨라의 가세로 레인지로버의 공세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
국내에 시판되는 벨라는 모두 3개 엔진에 7개 트림으로 구성됐다. 가솔린 3.0, 디젤 3.0, 디젤 2.0 3개의 엔진에 사양과 옵션을 달리하는 7개 트림이다. 가격대는 9,850만원부터 1억 4,340만원까지.
영종도에서 서울까지 시승한 차는 레인지로버 벨라 D300 R 다이내믹 SE로 판매가격은 1억 1,530만원이다.
레인지로버의 특징을 디자인과 성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고성능을 추구하는 모델로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벨라 역시 딱 보면 레인지로버다. 그릴, 램프, 측면 라인 등에 브랜드의 DNA를 고스란히 담았다. 단순하지만 품격이 있다. 보디 안에 숨겨지는 플러시 도어 핸들이 눈에 띈다. 스마트키로 문을 열면 숨겨져 있던 도어 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다시 원위치로 들어가는 타이밍은 잘못 잡았다.
밝은 아이보리 컬러를 적용해 환한 실내는 기분까지 환하게 만든다. 레인지로버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차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 차 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고해상도 모니터를 상하로 배치한 인커트롤 터치 프로 듀오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버튼을 생략하고 모니터 안으로 집어넣었다. 손끝으로 터치하는 방식으로 거의 모든 기능을 조작한다. 로터리식 변속 레버와 전지형 지형반응 시스템을 조절하는 레버의 조작감은 시판중이 어떤 차들과 비교해도 우위다. 손끝이 이를 인정한다.
레인지로버는 거의 병적으로 모든 시승행사에 오프로드를 포함시킨다. 이번은 예외다. 벨라는 좀 더 조심 지향의 SUV여서다. 그렇다고 오프로드 주행 성능이 부족하거나, 있어야 할 게 없지 않다. 다 있다. 전지형 지형반응시스템을 갖췄고, 에어서스펜션을 적용하면 251mm까지 올라가는 최저지상고, 깊이 650mm에 달하는 도강 능력 등을 보건데 레인지로버로서 갖춰야할 오프로드 주행성능을 기본을 갖췄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프로드는 생략. 온로드에서만 이 차를 느꼈다.
스티어링휠은 조금 큰 편이다. 4,803×1,930×1,665mm에 달하는 거구에는 스티어링휠이 큰게 어울린다. 대신 회전수는 2.5다. 스티어링 휠이 두 바퀴 반을 도는 것. 날렵한 동작을 기대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토크벡터링이 더해져 휘청거리는 동작 없이 깔끔하고 빠른 코너를 선보였다.
V6 3.0 터보 디젤과 8단 자동변속기가 호흡을 맞춘다. 모델명이 말하듯 최고출력은 300마력. 최대토크는 무려 71.4kgm다.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보디를 적용했지만 공차중량은 2,160kg으로 중량급이다.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지만 가볍고 부드럽게 이동한다. 노면 충격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한다. 맞서 부닥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면서 충격을 걷어낸다. 잔진동이 없는 깔끔한 마무리는 당연한 일. 그렇지 않고서야 프리미엄 SUV라고 할 수 없다.
300마력의 힘은 그렇게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2톤이 넘는 무게를 딱 좋을 정도로 끌고 달릴 수 있는 힘이었다. 마력당 무게비가 7.2kg으로 비교적 가벼운 편이지만 다이내믹 모드에서도 탄력을 느끼긴 힘들었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강하게 밀고나가는 스타일이다. 고속에서도 가속감은 살아있어서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만나볼 수 있다. 킥다운하면 제법 굵고 강한 엔진 사운드를 만나게 된다. 흐뭇한 미소를 띠게 된다.
상당한 거구임에도 공기저항 계수 0.32로 마무리했다. 디자인의 힘이다. 덕분에 고속주행중에도 바람소리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드라이버의 몸이 느끼는 체감 속도도 실제보다 훨씬 낮았다.
느슨하지도, 꽉 조이지도 않는 시트다. 허벅지까지 충분히 받쳐주고, 코너에서는 기우는 몸을 딱 지지해 준다.
앞에 더블 위시본, 뒤에 인테그럴 방식의 서스펜션에 255/50R20 사이즈의 타이어가 사륜구동 시스템과 맞물렸다. 탁월한 주행안정감과 확실한 노면 그립을 가졌다. 어떤 속도 영역에서도 차체의 불안한 거동을 느끼기 힘들다. 온로드 지향의 SUV 라는 설명이 실감이 난다.
2톤이 넘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복합연비는 12.8km/L로 인증을 받았다. 칭찬할만한 효율이다.
나무랄 수 없는 성능을 갖췄지만, 디자인이 조금 더 낫다. 균형 잡힌 몸매에 절제된 모습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환한 분위기에 첨단 기능들을 눈으로 보여주는 인테리어는 단연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중국 메이커들이 레인지로버의 디자인을 베끼다시피 따라하는 건, 그들이 보기에도 레인지로버의 디자인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 곧 벨라 짝퉁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인색하다. 1억이 넘는 가격인데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만 적용됐다. 차급간 구별을 위해서일까.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유지 보조시스템은 HSE 모델에 적용됐다. 이 정도는 기본 적용해야 되는 것 아닐까. 너무 짜게 상품구성을 했다.
자동전개식 플러시 도어 핸들은 그냥 드러나 있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다가오면 알아서 드러나고 바로 수납되는 테슬라의 그것과 비교돼 조금 어색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