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CAN-AM사의 수입 바이크 모델들과 수도권 딜러의 간판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절반은 바이크, 절반은 자동차. 삼륜에 바퀴를 하나 더 하면 쿼드(Quad)가 되고 덮게 씌우고 원형 조향핸들을 달면 완벽한 1인승 자동차가 될 것이니 “법제가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잠시 갸우뚱거릴 말큼 파격적인 조합물이다.
실제로 자동차 서스팬션과 동일한 구조를 취하는 두 전륜의 간격은 소형 승용차 만큼이고 3기통 115마력 엔진, 자동 6단 변속기, 냉방기 및 오디오시스템 등 자동차에 들어가는 것 이상의 구성요소들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 이런 특이 모델이 뽐내며 거리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법적, 제도적 관점 그리고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이동수단의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구입비 3천 만 원쯤과 이후 유지보수비를 흔쾌히 지출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층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 자동차를 따라가는 법, 법을 따라가는 자동차
이상은 잘 만든 외산 특이 모델을 판매하고 서비스하는 시장 내 작은 사례일뿐이다. 그렇다면 국내 중소기업이 이런 류의 특별한 모델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또는 쉬운 일일까?
2012년 르노(Renault)가 소개한 2인승 전기자동차 트위지(Twizy)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그 실용적 타당성을 인정받았으나 자동차와 바이크를 구분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때문에 한 동안 판매불가 상태로 있었다. 르노삼성과 시장의 성화에 못이긴 국토교통부가 2015년 자동차관리법 하위 기준에 “초소형 전기차(Micro-Mobility)”를 추가하고 장관 직권에 의한 개정이라는 편법으로 2017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임시로 허용한다”는 꼬리표가 달렸고 경찰청은 최고속도 80km/h 자동차가 속도제한 80km/h 자동차전용도로에 진입하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초소형 전기차’는 바퀴 3~4개, 1~2인승으로
자동차관리법 상 경형승용차의 기준보다 크기가 작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바로서 ‘안전’ ,’교통흐름’ 등 몇 가지 변수를 놓고 볼 때 통상의 자동차와 다른 면이 너무 많아 “자동차로 인정은 하되 다르게 취급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어정쩡한 허용, 그 작은 변화에도 전동모터를 이용한 소형 이동수단을 개발해온 국내 중소기업들과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현대/기아 등 메이저 제작사의 진입이 어려운 조건을 고려할 때 트위지의 등장은 작은 국내기업들이 상용모델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유의미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야쿠르트 전동카트로 이름을 알린 ‘대창모터스’의 ‘다니고’, ‘새안’의 삼륜, 사륜 전기자동차들, 에코원의 iM3, 코니자동차의 전기 경화물차 ‘TX500e’, SMPS 전문업체 파워프라자의 경화물차 ‘피스 등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전동 휠체어 제작, 전동 골프카트 등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근근히 사업을 영위해온 국내 제작사들이 지난 10여 년간 많은 시도와 준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널리 알려지지않은 것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는 바이크인지 아니면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인지로 비유되는 법적 정의와 판단 그리고 제도나 안전성 평가기준 등이 모호했고 특히, 비즈니스의 결정적 열쇠인 전기차 보조금정책이 갈팡질팡하면서 좋은 모델을 만들어도 제대로 팔 수 없다는 현실의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많이, 널리 팔 수 없다” 그외의, 눈에 보이지않는 세력들의 배타적 행태들까지 고려하면 중소기업들의 전기자동차 생산은 그냥 꿈처럼 그렇고 그런 사업이었다.
아무튼 우연하게 거대 글로벌 기업 르노의 제품 하나가 큰 장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낸 듯 아닌 듯 그러나 분명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이제야 봇물이 터지려나?”, “이제 불법논란에서 자유로워지고 일반도로를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려나?”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는 시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트위지’의 도움없이 몇 몇 중소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임시허가’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긴 가뭄에 단비같은 사례.
좋은 일이지만… 이쯤에서, 우후죽순 업체 난립이 염려되는 초소형 전기자동차 시장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위지가 ‘간신히’라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선은 경험있는 자동차 제작사가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즉, 트위지는 최소한의 안전성 검증을 거쳤다. 그리고 르노삼성 서비스 망을 이용하는 전국단위 사후관리 체제가 정립되어 있고 국내조립이 아닐 바에야 CAN-AM 고급 바이크 수입판매 사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사업적 리스크도 배제되어 있다. 안전과 성능의 최소한을 보장하고 할 만 하니까 일이 진행된 셈이다.
■ 초소형 전기차의 기준점이 되어 버린 트위지. 국내 시장의 문을 연 트위지.
도로를 고속 달리는 것과 도로가 아닌 곳에서 쓰이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과연 천천히 가는 전동휠체어나 농사용 전동 트랙터 등 슬로우-템포 차량들을 만들어 온 국내 중소기업들이 총대를 맨 트위지 또는 해외모델들을 기준으로 제기될 이런저런 기술적 요구사항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한편, 자동차 세상의 많은 이들이 흥분하고 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쓰고 있으되 “안전한 차를 타고 편안하게 사후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프레임 설계하고 배터리, 적당한 모터와 기어 어셈블리를 구매하거나 제작해서 배치하고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를 붙여가며 1인 승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대부문 하위 모듈을 사고 솔루션들을 조합, 조립하여 차를 만들므로 기본적으로는 ‘통상의 기술자’가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복잡한 엔진’이 배제되는 순간 많은 기술부담이 사라졌고 그 만큼 진입이 쉬운 사업이 되었다는 뜻인데 그러면서 고의든 아니든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요지는 유형물을 열심히 만들었고 겉보기로나 기능적으로나 일반 자동차와 다름없으니 당장 거리를 내달리릴 수 있겠다는 발상이 문제.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충돌실험을 포함하는 장기 안전성 테스트를 거친 후 판매가 되어야할 것인데 과연 국내 중소기업들이 메이저 제작사들의 플랫폼을 쓰지않는 조건에서, 과하지않은 돈을 쓰는 조건에서 그런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아무래도 ‘안전성 미확인’, ‘안전성 부족’을 사유로 사망사고 확율을 낮추기 위해 주행속도를 한정한다거나 달릴 수 있는 도로도 제한을 두겠다거나 어쩌면 헬멧 쓰고 운전하라는 식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반론제기의 논거는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일반 자동차에 비해 상당히 취약한 특성을 보여준 트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다변화된 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안하고 탈 원전, 친 환경이 공세적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시절임을 기회로 삼아 용기있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최소한의 배려와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또한 사회적 명제이다.
모든 것은 국산 초소형 전기차를 잘나가는 테슬라의 전기자동차와 CITI 100 배달용 오토바이 사이 어떤 지점에 포지셔닝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어떤 정책 결정자나 정치가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빠른 방향성 제시행위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정 이후 장시간에 걸쳐 성능기준, 안전기준, 테스트기준, 서비스 기준 정립과 유관 산업계와의 협의, 국회 협조와 본격적인 법률개정 등 많은 사항들이 처리되어야 하겠지만… 최초는 A4 반 장이면 충분할, 문장 몇 마디 끄적거리는 단순한 생각정리에서 시작하면 되겠다.
■ 초소형 전기차 제작은 대한민국 중소기업 입장에서 자동차 제작의 경계선을 확장하는 기준점이다.
그러므로 법률과 제도는 ‘통제’가 아닌 ‘권장’의 관점에서 입안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그 시장이 활성화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거대자본이나 대기업에 의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일정한 제한조건이 부여되는 것도 좋겠다. (초소형 전기차 제작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함이 나름 합리적이라는 개인의견을 달아둔다)
(2014년 소개된 Toyota i-ROAD Concept)
이제부터는… 재차 언급하는 바로서 진작에 뭣 좀 만들었다 자랑하는 중소 제작사들은 차량 안전수준 확보에 본격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뢰할 수 없는 장비를 쓰고, 통제되지않는 직원이 새시를 대충 용접한 후 적당한 모터와 바퀴 달아 놓고는 그게 곧 최신형 제품이라 말하는 식의… 짐짓 무지의 관성으로 일관하면 훗날 큰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몇 몇 태만한 사례들이 중첩되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들이 생기면 그 시장은 쉽게 허물어지고 종국에는 신뢰할 수 있는 외산 모델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 세상에 이미 트위지같은 모델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지금 당장은 몇 백 cc 가솔린 엔진을 쓰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들이 들인 시간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초소형 전기차로 둔갑을 할 수 있는 외산 대체모델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지난 몇 년간을 부품입수가 쉽고 만들고 제어하기 쉬운 ‘전기자동차’를 키워드로 우후죽순 업체들, 정체모를 모델들, 그외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로 정의하면…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산업의 큰 틀이 잡히면 좋겠다. 틀만 잡히면 약간의 방황에도 불구하고 나머지는 순리대로 처리될 것이고 국내 중소기업들 자동차 제작의 경계선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
* 참고문서
‘초소형 전기차(Micro-Mobility) 차종분류에 대한 법제 이슈 및 개선방향 모색'(LEGISLATIVE ISSUE BRIEF, 한국법제연구원, 2015년9월(통권 제 06호))
*이 글은 한국자동차기술신문(www.atnkorea.net)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박태수 motordicdaser@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