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은 갑자기 치솟아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뭉게구름이 활짝 핀 여름 하늘. 그런 낭만적인 풍경을 하필 운전석에서 마주했다. 그 길을 올라서야 하는 처지에 멋진 풍경은 중요치 않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옥죄여 올 뿐이다. 가속페달을 밟는 덴 용기가 필요했다.
슬쩍 밟아본다. 움찔 반응을 하더니 차근차근 길을 밟아 올라간다.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로 타이어 궤적을 보여주니 훨씬 낫다. 경사도 30도. 하늘로 솟구치던 길은 다시 내리꽂히듯 주저앉고 있었다. 핸들을 쥔 운전자는 안절부절 울고 웃지만, 그를 품은 차는 심드렁하게 움직일 뿐이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8년 만에 풀체인지를 거친 5세대 모델로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전작 디스커버리 4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정식 명칭을 ‘올 뉴 디스커버리’로 정했다.
그 차를 타고 유명산 언저리를 오르락내리락 거침없이 내달리며 즐겼다. 쨍쨍한 햇볕에 바짝 마른 길인 듯 길 아닌 길에선 흙먼지가 폴폴 날렸다. 산꼭대기에선 세찬 바람과 빗방울이 반겼다. 디스커버리의 등장에 맞장구를 치는 격이었다.
조개처럼 꽉 다문 보닛은 고집쟁이의 입이다. 타협도 양보도 없음을 앙다문 입이 말하고 있다. 견고한 측면 라인은 살짝 앞으로 숙여 긴장감을 살렸다. 두터운 C 필러와 뒤가 살짝 높은 옆모습, 좌우 비대칭으로 마무리한 장난스러운 뒷모습은 여전히 디스커버리다운 디자인이다. 깨끗하게 세차한 뒤 반짝이는 광택을 자랑하는 모습도 멋있지만, 흙먼지 뒤집어쓰고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헝클어진 모습은 조금 더 멋져 보인다.
시승차는 퍼스트 에디션. 전 세계2400대만 한정 생산됐고, 국내에선 50대만 팔린다는 그 차다. 퍼스트 에디션 마크가 B 필러와 기어박스 아래에 새겨졌고, 22인치 블랙컬러 휠을 적용했다. 라디에이터그릴과 그 위에 새겨진 디스커버리 표기도 블랙 컬러로 마무리했다. 판매가격은 1억560만원.
이밖에 2.0 디젤 인제니움 엔진을 사용하는 SD4 HSE(8,930만원), V6 3.0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TD6 HSE(9,420만원), TD6 HSE 럭셔리(1억650만원), TD6 런치 에디션(1억790만원) 등으로 라인업을 이룬다.
시트는 모두 7개다. 어디에 앉아도 좁지 않다. 뒤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지는 극장식 시트 배열로 모두에게 최대한의 시야를 확보해준다. 2열은 슬라이딩 기능이 있어 3열과 공간을 적절하게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2, 3열의 5개 시트는 모두 ISOFIX 기능을 갖췄다. 유야용 시트를 5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것. 3열은 성인에게도 좁지 않다. 흉내만 내고 만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앉을 수 있는 3열을 만들었다.
‘인텔리전트 시트 폴딩’은 버튼으로 시트를 접고 펼 수 있다. 차 밖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차에서는 운전석에서 버튼으로 혹은 트렁크의 버튼으로 손쉽게 시트를 선택해서 펴고 접을 수 있다. 시트 붙들고 낑낑대며 씨름할 일은 없다.
실내에는 모두 9개의 USB 포트가 있다. 7명이 다 탔을 때 모두가 USB를 이용할 수 있다. 충전 포트를 찾아서 다툴 일이 없다.
전동식 이너 테일게이트도 있다. 적재물을 고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성인 3명이 걸터앉은 받침대로도 훌륭하다. 300kg까지 견딘다.
V6 3.0 터보 디젤 엔진은 258마력의 힘을 낸다. 만만치 않은 큰 힘이지만 2,500kg에 달하는 공차중량이 힘의 탄력을 빼앗는다. 첫발을 뗄 때부터 시종일관 묵직한 느낌이 지배한다. 그래도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로 보디를 만들어 무게를 480kg이나 줄인 결과다. 최대토크는 61.2kgm. 중저속에서 전해지는 굵은 힘의 원천이다. 연비는 9.4km/L로 4등급이다.
이를 조율하는 건 로터리 시프터로 조절되는 8단 자동변속기. 수동변속은 패들 시프트를 이용한다.
무게감이 주는 묵직한 승차감이 인상적이다. 마냥 묵직한 건 아니어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빠른 몸짓으로 도로를 헤쳐 나간다.
첫 탄성이 흘러나온 건, 고속주행에서다. 조금 빠르다 싶은데 계기판을 보니 아주 빠른 속도였던 것. 바람소리도, 차의 흔들림도 크지 않아 그리 빠른 줄 몰랐다. 실제 속도와 체감 속도의 차이가 아주 컸다.
네 바퀴에는 에어서스펜션을 적용해 차체 높이가 주행 상황에 맞춰 달라진다. 차고 조절 범위는 115mm로 이전보다 10mm 더 늘었다. 승하차, 오프로드 주행시, 고속주행시 차의 높이는 달라진다.
전자동지형반응시스템은 랜드로버의 아이콘. 노면 상황에 맞춰 세팅하면 최적의 구동력을 발휘한다. 퍼스트에디션에는 전자동지형반응시스템 2가 적용됐다. 여기엔 오토 모드가 추가 제공된다. 노면 상황에 일일이 맞출 필요 없이 오토에 넣고 움직이면 되는 것. 오프로드 주행이 익숙지 않은 초보자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인컨트롤 앱에는 T맵이 들어가 있다. 스마트 폰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시장을 위해 개발한 서비스다.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지니 서비스도 랜드로버가 한국형으로 개발한 서비스다.
시트를 가장 낮게 세팅해도 차창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칠 수 있다. 차창이 그만큼 밑으로 내려와 있고 차가 높아 전후좌우로 시원한 시야를 확보했다.
유명산을 오르는 오프로드는 재미있었지만 짜릿할 정도는 아니었다. 극한의 오프로드를 커버한다는 디스커버리에겐 성이 찰 리가 없다. 깊이 700mm의 물길, 사면 언덕, 급경사 오르막과 내리막 등의 특별 코스를 따로 만든 이유다. 그 길을 달리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사실은 특별히 만들었다는 그 길도 디스커버리 능력의 30~40% 정도로 커버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정도도 일상에 지친 몸에는 아주 강하고 짜릿한 자극이었다.
오프로드에선 로(Low)모드에 전지형지형반응의 오토 모드 세팅이면 끝이다. 네 바퀴의 구동, 디퍼렌셜의 작동을 모두 알아서 척척 해내니 운전자는 그냥 스티어링휠을 붙들고 차분히 가속페달을 밟고 있으면 된다. 조금 더 편하게 오프로드를 즐기며 움직일 수 있다.
SUV가 대자연의 품에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다면 디스커버리는 세 발쯤 더 깊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 전천후로 움직이는 네바퀴의 힘이다.
온로드에서는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항공모함처럼, 고속주행에선 목표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전투기처럼, 그리고 험로에선 적진을 향해 밀고 나가는 탱크처럼 디스커버리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동차 혹은 SUV라고만 부르기엔 아까운 물건이다.
랜드로버의 시승일정은 늘 빡빡하고 고되다. 브랜드 입장에선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많고, 기자로서는 살펴봐야할 부분이 많아서다. 하루 종일 이 차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일부’ 밖에는 맛볼 수 없었다. 이 차의 전부를 느끼는 건 차분히 시간을 갖고 즐길 권리를 가진 ‘오너’의 몫이다. 장담컨대 디스커버리의 오너라 하더라도 이 차의 모든 기능을 다 경험해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차가 제대로 힘을 쓰며 모든 기능을 다 발휘할 만큼 험한 길을 한국에선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뒤태가 아쉽다. 장난스럽게 비대칭으로 디자인한 모습은 범퍼 아래로 스페어타이어가 드러나 보인다. 서스펜션의 세팅, 이탈각을 고려한 범퍼의 배치 등의 문제로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그래도 드러나 보이는 스페어타이어는 치마 속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