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짬뽕의 시대다. IT에 생명공학이 섞이고, 인문학이 자연과학, 공학과의 협업을 모색하고 동서양이 만났다는 퓨전음식이 사방에 널렸다. 융복합이라는 거창한 말은 결국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가가 관건이다.
자동차에선 이미 흔한 풍경이다. 크로스오버라는 생소한 말이 등장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세단이 SUV와 섞여 만들어진 변종이다. 세단과 미니밴이 섞인 소형 미니밴도 있다. 짬뽕의 극단적인 예는 쿠페형 SUV다. 차의 성격, 포지셔닝으로 본다면 서로 섞일 수 없을 만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차종을 섞어 참으로 멋있는, 혹은 의외의 형태로 등장했다. BMW X6가 있고, 오늘 시승할 벤츠 GLE 쿠페가 있다. 쌍용자동차의 액티언이 그보다 앞서 등장했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쿠페형 SUV를 보는 시각은 보는 이에 따라 극으로 나뉜다. 쿠페 라인을 SUV에 옮겨 정말 멋있는 차로 만들었다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정체성이 없다며 혹평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게다가 GLE 쿠페는 먼저 나온 X6와 거의 비슷하다는 비난이 더해진다.
디자인은 각자 보이는 대로 느낄 일이다.
SUV에 쿠페의 디자인을 입힌 차 벤츠 GLE 쿠페다. 자동차로서 가장 매력 있는 모습은 쿠페다. SUV까지 쿠페 스타일에 미련을 두는 이유다. 지붕을 깎아내려 멋을 부린 쿠페는 대신 공간을 손해 봐야 한다. 뒷좌석 공간이 젬병이 되어버려서다. 공간이 갖는 의미가 큰 SUV로선 가장 걸리는 대목이다. 벤츠의 결론은 크기 확장이다.
GLE 쿠페의 크기는 4,880×2,030, 1.725mm다. 쿠페 라인을 가져오는 대신 기본형인 GLE 대비 길이(+50mm)와 너비(+95mm)를 키워 공간을 지키려 했다. 높이(-45mm)를 낮춘 건, 의외다. 공간, 즉 머리 윗공간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대신 무게중심이 낮아져 주행안정감에선 득이다. 실제 무릎 공간은 여유가 있고, 머리 위는 압박감이 있다. 센터터널로 인한 공간의 제약은 사륜구동차로선 피하기 힘든 제약이다.
헤드램프는 참 똑똑한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LED 인텔리전트 라이트 시스템이다. 내 차의 시야는 더 환히 비추지만 내 앞을 달리는 차, 마주 오는 차를 인식해 그들의 시야를 방해하진 않는다. 코너에서 진행 방향을 더 밝게 비춰주고, 차의 속도에 비례에서도 광량을 조절한다. 헤드램프를 상향등에 위치시키면, 차가 알아서 판단해 빛을 조절한다.
D컷 핸들은 2.7회전한다. 하는 스티어링 휠. D컷 핸들이다. 스티어링 휠을 쥐면 자연스럽게 패들 시프트가 손 안에 들어온다. 파노라믹 선루프의 개방감은 탁월하다. 차창 밖을 즐길 수 있는 동승객이 더 좋아하는 요소다.
V6 디젤엔진은 258마력과 63.2kgm의 토크를 만든다. 공차중량은 2,40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9.3kg이다. 정지후 시속 100km 돌파 시간은 메이커 발표 기준 7.0초, 실제 측정해본 시간은 7초 초반이다.
앞에 더블위시본, 뒤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넣었고, 여기에 차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 스프링을 추가했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차 높이가 15mm 낮아지고, 오프로드에 들어설 땐 차체를 바짝 들어 올릴 수 있다. 타이어는 앞에 275/45R21 뒤에는 315/40R21 사이즈를 끼웠다.
2.4톤이 넘는 육중한 몸은 부드럽게 움직인다. 과속방지턱의 쇼크는 실제 쇼크와 시트를 통해 전해오는 충격 사이에 차이가 크다. 한 번 더 감싸주는, 그래서 고급스럽고 편안한 느낌이다.
공식연비는 10.1km/L로 4등급이다. 디젤이지만 워낙 무거운 몸무게여서 좋은 연비를 기대하긴 힘든 수준. 그래도 두 자리 수 연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만하다.
9단 변속기를 D 레인지에 넣고 달리면 시속 100km에서 8단에 물리며 1,500rpm까지 낮춘다. 수동 조작을 통해 9단에 물리면 1,300으로 떨어진다. 9단 변속기여서 가능한 일이다. 스포츠 모드에선 100km/h의 속도에서 6단에 물려 2,000rpm 언저리를 맴돈다. 기어비는 6단에서 1:1을 맞췄다.
시속 80km, 차분하고 조용했다. 엔진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고 노면 잡소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1단 에어컨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건 너무 조용한 탓이다. 100km/h로 올리면 바람소리가 조금 커진다. 약간의 바람소리, 노면 소리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실내는 여전히 정숙하다.
시종일관 느껴지는 무게감은 확연했다. 차에 오를 때 도어의 느낌에서부터, 첫 발을 뗀 후 움직일 때, 고속에서도 차의 무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순한 무거움이 아닌 무게감이라 표현한 것은 그 안에 고급스러움이 있어서다. 가볍게 탕탕 거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은 고급스럽다.
차가 멈추니 시동도 꺼진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저항감이 있고 이를 무시하고 좀 더 힘을 줘 돌리면 시동이 켜진다. 시동이 꺼진 상태로 핸들이 돌아가는 게 좀 더 개선된 시스템인데 아쉽다.
가속의 질감은 매우 우수하다. 저속에서 고속까지 밀고 올라가는 느낌에 일관된 안정감이 살아있다. 머리에 인 물동이에 물이 흘러넘칠까 조심하면서 빠르게 달리는 느낌. 안정된 자세로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9단 변속기의 기어물림이 정교해 변속 쇼크를 느끼기 힘들다. 속도를 높여도 엔진소리는 낮다. 가속을 시작하면서 4,000 rpm 부근에서 엔진소리를 만날 뿐이다.
편안하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차체가 편안해 고속안정감이 돋보인다. 4매틱 구동방식과 서스펜션의 조화가 고속에서 탁월한 안정감을 이끌어낸다. 실제속도와 체감속도의 괴리가 크다. 그 차이가 이 차의 수준을 말해준다.
브레이크는 초기반응이 약한 편이다. 정확한 제동이 필요할 땐 처음부터 강하게 다뤄야 하겠다.
빙판, 컴포트, 스포츠, 인디비듀얼 4개 주행 모드가 있다. 에코 모드를 따로 마련하진 않았다. 빙판모드에선 깊게 가속해도 힘의 변화가 부드럽고 완만하다. 스포츠에선 단단하고 즉각적인 펀치력이 느껴진다. 인디비듀얼 모드에선 엔진과 서스펜션, 스티어링 휠의 감도를 개별 조절해 나만의 느낌으로 만들 수 있다.
코너에선 미묘한 느낌이다. 상당히 빠른 코너링이었지만 타이어와 서스펜션은 좀 더 밟아도 조향이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여유가 있다. 하지만 높은 자세에서 오는 운전자의 심리적 불안이 문제다. 더 밟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 심리적 불안의 의미는 운전자의 기량이 거기까지 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시도는 금물이다. 안전이 보장된 후에 즐거움이 있는 법. 이런 저런 안전장비들은 약간의 부족함을 보조해줄 뿐 완전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경쟁모델로 BMW X6가 있다. 사이즈로 보면 X6가 길고 GLE 쿠페가 넓다. 3.0 디젤의 엔진의 출력은 공교롭게 258마력으로 같다. 가격은 1억700만원인 GLE 쿠페보다 1억 1,200만원인 X6가 좀 더 비싸다.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라이벌이다. 비슷한 가격대로는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스커버리 정도가 더 있다. 프리미엄 SUV라는 점에서 좋은 비교대상이다. 많지 않은 경쟁자들이지만 나름 시장의 강자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짬뽕, 즉 융복합의 시대. SUV에 쿠페를 섞은 이 차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냈을까. 이왕이면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멋진 SUV를 타고 싶은 이들이라면 GLE 쿠페의 새로운 가치를 한 눈에 알아 볼 것이다.
SUV면 SUV, 쿠페면 쿠페, 본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차는 그냥 섞어놓은 차일 뿐이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생각이 정답이다. 짬뽕 한 그릇 하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옵션에 박하다. 1억 넘는 이 차에 어댑티브가 아닌 그냥 기본형 크루즈컨트롤을 사용하고 있다. 차선이탈 방지 조향보조 시스템은 아예 없다. 연초에 가격을 100만원 더 올리기까지 했다. 조금 얄밉다.
트렁크는 턱이 상당히 높다. 172cm인 기자의 허리 높이까지 짐을 들어 올려야 트렁크 안으로 짐을 넣을 수 있다. 무거운 짐을 실을 땐 1cm의 높이 차이가 크다. 트렁크 아랫부분을 데크로 만들어 열고 닫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