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XC70이 ‘크로스컨트리’로 이름을 바꾸고 우리 앞에 다시 왔다.
볼보는 최상급 모델들을 ’90 클러스터’로 분류하면서 크로스컨트리를 여기에 포함시켰다. 70이라는 이름을 버린 이유다. 원래는 V90 크로스 컨트리로 이름지었다. 한국에선 V90을 떼내고 그냥 크로스컨트리로 이름을 붙였다. 볼보 라인업에는 V40, V60, S60에도 각각 크로스컨트리가 있는데 차후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90 클러스터의 파워트레인에 좀 더 긴 차체를 적용했다. SUV와 왜건 사이에 명확한 경계는 없다. 세단과 SUV 사이가 왜건의 자리지만, 크게 보면 SUV의 한 종류라고 해도 좋겠다. 세단에 좀 더 가까운 왜건이 있는가하면, SUV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크로스컨트리는 후자다. 최저지상고 210mm가 이를 말한다. 이보다 낮은 최저지상고를 가진 SUV도 많다. 왜건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 차를 봐야하는 이유다.
길이가 4,940mm로 5m에 육박한다. 덕분에 실내공간과 트렁크를 모두 여유 있게 확보했다. 뒷좌석에 앉으면 무릎과 머리 윗 공간이 부족하지 않다. 센터터널이 높이 솟아있어 가운데 좌석 공간을 제약하는 불편함은 있다.
i-ART와 파워 펄스 기술이 적용된 드라이브 E 파워트레인을 적용했다. 지능형 연료분사 기술을 의미하는 i-ART는 각 인젝터에 들어간 칩이 분사압력을 체크해 최적의 연료량을 분사하는 기술이다. 성능을 양보하지 않고 효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워펄스는 터보 작동의 시간차, 즉 터보랙을 없애는 장치다. 2리터의 압축공기를 저장해 터보가 작동할 때 바로 터보차저를 돌려준다. 배기가스가 터빈에 이르기 전에 압축공기가 즉시 터빈을 돌려주는 것.
이 같은 기술이 2.0 트윈 터보 디젤 엔진에 더해지고, 8단 변속기의 조율을 거쳐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9.0kgm의 성능을 낸다.
크로스컨트리는 세단과 SUV를 절묘하게 섞어놓았다. 온로드에선 세단에 버금가는 주행감각을 가졌고, 오프로드에선 SUV에 뒤지지 않는 주파능력을 보였다.
크로스컨트리의 서스펜션은 특히 인상적이다. 앞 더블위시본, 뒤 멀티링크 조합의 서스펜션은 노면에서 올라오는 거친 충격을 잘 다스린다. 시트를 통해 운전자에게 전해지는 최종 충격은 충격이라기보다 부드러운 터치 정도다. 특히 도로 곳곳에 잠복해 운전자를 성가시게 하는 과속방지턱을 넘는 반응이 인상적이다. 이를 통과하고 난 후의 잔진동이 없다. 마무리가 깔끔했다.
타이어는 기본형 모델에는 235/55R18, 고급형인 크로스컨트리 프로에 235/50R 19 사이즈를 적용했다. 편평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접지면의 절반 정도 높이의 사이드월을 확보해 적절한 완충효과를 노렸다.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않다.
타이어 그립도 인상적이다. 중미산을 넘어가는 와인딩 코스를 환상적으로 달렸다. 오른발의 깊이를 조절하며 연주하듯, 그 길을 타고 넘었다. 도로를 놓치지 않고 부여잡은 타이어는 소리를 지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달리며 소임을 다했다.
노면에 잔 자갈들이 자잘하게 깔린 오프로드에선 잠깐 잠깐 밀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바로 그립을 회복했다. 흙먼지 폴폴 날리며 빠르게 달린 뒤 제동을 할 때에도 2톤 가까운 무게를 제대로 제어했다. 공차중량은 1,945kg. 거친 산길이나 진흙길 등 제대로 된 하드코어 오프로드에선 어느 정도 성능을 보일지 궁금하다.
고속주행을 할 땐 세단인줄 알았다. 고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안정된 자세 때문에 가능했다. 차의 흔들림을 잘 제어해 체감속도를 확 낮춘다. 중저속에서보다 고속에서 느낌이 더 좋았다. 무슨 왜건이 이래.
고급형인 ‘크로스컨트리 프로’에는 360도 카메라, 바워스&월킨스 오디오 시스템, 19인치 타이어, 나파 가죽 마사지 시트 등이 더해진다. B&W의 소리는 황홀했다. 현장에 있는 듯 입체감 있는 소리가 귀를 호강시킨다. 크로스컨트리는 6,990만원, 크로스컨트리 프로는 7,690만원이다.
크로스컨트리는 안전에 관한 한 평등하다. 반자율주행 시스템인 파일럿 어시스트 2, 도로이탈 보호 시스템, 시티 세이프티 등의 안전 관련 장비를 전 트림에 예외 없이 기본 적용한다. 안전에는 차별이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이 회사, 203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를 없애겠다는 목표를 대놓고 얘기하고 있다. 무모할 정도로 안전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니, 부럽다. ‘안전’은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차의 안전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이다.
왜건은 폼 잡는 차가 아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말없이 보여주는 차일 수 없다. 사람과 짐을 함께 싣고 이동한다는 개념에 맞춘 지극히 실용적인 차다.
한국에선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차이기도 하다. 세단 아니면 SUV인 시장에서 생뚱맞은 존재로 취급받는다. 왜건의 무덤이라는 말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팍팍한 현실도 그 원인일 수 있다. 충분한 휴식과 휴가, 주말이 보장된다면, 그래서 여가생활을 할 여유가 넉넉하다면, 왜건 수요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크로스컨트리를 만든 스웨덴은 연간 5주의 법정 휴가가 보장된 나라다. 한달 이상의 휴가가 있다면, 왜건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크로스컨트리 같은 왜건이 많이 팔릴 시장은 아니다. 그래서 판매목표도 소박하다. 볼보자동차코리아 이윤모 사장은 월 100대 수준을 얘기했지만, 그 절반 정도가 실제 목표라는 얘기를 들었다. 50대든 100대든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왜건으로선 엄청난 숫자다.
다행히 크로스컨트리는 이렇다 할 경쟁모델이 없다. BMW 3시리즈 왜건, 푸조 508과 308 SW정도가 있지만 차급이 달라 직접 경쟁할 일은 없다. 왜건의 무덤이라는 한국이지만 그래도 시장 전망이 밝다고 격려해줄만한 이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대시보드 상단에 날카로운 예각이 드러나 있다. 안전을 앞세우는 볼보가 어떻게 이런 인테리어를 적용했을까 의문이다. 물론 안전띠와 에어백이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했다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승객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수석 앞 대시보드에 멋을 부리느라 날카롭게 드러난 예각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중저속에서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은 가끔 거슬린다. 엔진소리와 노면에서 발생한 자잘한 잡소리, 그리고 타이어 마찰음이 실내로 제법 들어온다. 뒷좌석에서는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NVH 대책을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