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의 플래그십 CT6를 다시 탔다. 지난 해 7월 출시 당시 짧은 시간 진행된 단체 시승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서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다시 한 번 찬찬히 이 차를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CT6는 벤츠 S, BMW 7 시리즈 등을 경쟁상대로 지목한 캐딜락 최고의 세단이다. 대형세단용 플랫폼인 최신 오메가 아키텍처를 적용했다. 차체 길이가 더 길고, 훨씬 가벼운 몸에 V6 3.6 엔진을 얹어 ‘포스트 클래스 세단’을 지향해 만들었다.
핸들은 2.2회전한다. 5m가 넘는 대형 세단임에도 아주 타이트한 조향비다.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차가 크게 반응한다.
차를 움직이려는 찰라, 앞으로 사람이 지나갔다. 차가 사람을 인식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깜빡이며 경고가 뜬다. 주의하라는 얘기다.
실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 건 카메라와 연동하는 룸미러다. 거울을 통해서 뒤를 보는 게 아니라 차 뒤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후방 시야를 확보한다. 기존 거울보다 세배나 되는 시야를 확보해 사각을 없앴다. 뒤에 3개 차로를 또렷하고 넓게 보여준다. 물론 카메라가 아닌 거울로도 볼 수는 있지만 답답했다.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한 편의 영상이다. 다이내믹하고 깨끗한 영상이 액션 영화의 추격신 저리가라 할 정도다.
뒷좌석은 아주 편안하다. 도어를 열고 닫을 때 차의 무게감이 전해온다. 중후하다. 뒷좌석 암레스트를 내리면 뒷좌석 엔터테인먼트용 헤드폰이 있다. 리모컨을 통해 모니터를 수납할 수 있다. 각 시트별로 헤드폰을 끼고 나만의 음악, 혹은 영상을 즐길 수 있다.
뒷좌석도 전동조절 장치로 시트를 조절할 수 있다. 안마기능과 열선 기능도 갖췄다.
제법 높이 솟은 센터콘솔은 뒷좌석 가운데 공간을 제약한다. 이 자리는 비우는 게 낫겠다.
첫 감탄은 골목길의 턱을 타고 넘을 때 나왔다. 충격이 거칠지 않다. 쇼크를 잘 흡수해 조절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딱딱함과는 거리가 있다. 승차감에 좀 더 중점을 둔 차임을 출발하자마자 알게 된다.
V6 3.6 직분사 엔진은 340마력의 힘을 가졌다. 편안하게 달리다가도 필요한 순간엔 폭발적인 힘을 끌어낸다. 그 힘을 조율하는 건 하이드로매틱 8단 자동변속기다. 공식 연비는 8.2km/L로 5등급이다.
엔진이 큰 힘을 낼 필요가 없을 때, 예를 들면 정속 주행으로 순항할 때에는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가 작동한다. 6개의 실린더중 2개는 쉬고 4개 실린더만 작동한다. 효율을 고려한 것으로 연료 절약에 도움이 된다.
편안한 승차감의 기원은 마그네틱 라이트 컨트롤이다. 천분의 1초마다 노면을 체크해 댐퍼를 조절한다. 대체적으로 편안한 승차감에 포커싱했지만 마냥 물렁한 건 아니다. 순간적으로 하드한 면모를 보일 때도 있다. 순간순간 전혀 다른 감각을 보인다.
가속페달은 킥다운 버튼이 없어 아무런 저항 없이 밋밋하게 끝까지 밟힌다. 시속 100km에서 1600rpm을 마크한다. 차분하고 조용한 엔진이다. 주행모드는 투어. 스포츠, 스노/아이스 모드 3가지다. 시속 100km에서 아주 잔잔한 바람소리 정도가 들린다. 엔진 소리, 노면 잡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 실내 정숙성이 돋보였다.
이 상태에서 가속하면 엔진 소리가 살아나면서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간다. 속도도 속도지만 엔진 사운드가 귀에 착 감긴다. 편안한 럭셔리 세단이 고성능 스포츠 세단으로 자세를 바꾼다. 단단한 근육이 느껴진다.
공차중량 1,950kg이 지그시 눌러주는 맛도 있다. 게다가 사륜구동이어서 고속주행안정감이 뛰어나다. 대형세단을 타는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스포츠카와는 또 다른 안정감을 느낀다. 고속에서도 체감속도는 낮았고, 편안함이 꽤 오래 유지된다.
필요할 땐 폭발적인 힘으로 고성능 세단의 모습을 보인다. 뒤에 앉으면 편안한 승차감을 즐기는 쇼퍼드리븐 카로도 최고의 수준을 갖췄다. 강하고, 부드러운, 서로 상반되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모습을 훌륭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패들 시프트를 통한 수동변속은 운전자가 변속하지 않으면 시프트업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운전자의 의지가 차의 판단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달릴 땐 수동 변속이 재미있겠다.
액티브 스티어링도 있다. 아주 조금이지만 뒷바퀴도 움직이는 것. 방향전환을 좀 더 민첩하게 한다. 고속에선 같은 방향, 저속에선 역방향으로 움직여 방향전환, 차로변경을 빠르고 안정감 있게 한다. 이를 통해 회전직경을 1m 줄였다고 한다. U턴이 의외로 쉽다.
정지상태에서 급출발을 하면 2, 3단 변속이 매우 거칠다. 급출발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흠잡을 일은 아니다. 거칠어도 빨리 움직이기를 원하는 운전자의 의도를 파악한 반응이다.
빠르게 코너를 돌 때 시트가 좀 더 강하게 옆구리 지지해줬으면 좋겠다. 몸이 기울 때 밀리는 느낌이다.
어두우면 나이트비전을 이용할 수 있다. 적외선 열감지 카메라를 이용해 잘 보이지 않는 전방 모습을 계기판에 띄워준다. 차는 물론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색다른 경험이다. 물론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CT6는 아메리칸 럭셔리 세단의 전형이다. 고급스럽고 넓은 공간을 갖췄고 부드럽게 다루면 아주 편안한 승차감이 돋보였다. 딱딱함은 싫고, 편안함을 포기 못한다는 고객에게 딱 좋겠다. 바로 이 차의 경쟁력이다. 합리적 가격은 플러스알파.
시승차는 고급형인 플레티넘으로 9,580만원이다. 프리미엄 모델은 7,880만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차선유지 조향 보조시스템은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왼쪽 차선을 넘기 전 오른쪽으로 가고, 다시 오른쪽 차선을 밟기 전에 왼쪽으로 가는 식. 뒤에서 보면 졸음운전을 한다고 오해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차선을 벗어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트렁크 안쪽 지붕에는 철판이 그러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에는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부분이다.
앞에서는 12V 전원이 없다. 이를 사용하려면 뒤에서 끌어와야 한다. 불편하다. 앞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