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겸손한 트로이 목마, 켄보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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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중국차다.

중형 SUV 켄보 600이 1999만원이라는 가격을 앞세우며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전에도 몇몇 중국산 버스나 틈새 차종들이 제한적으로 국내 시판되기는 했다. 하지만 켄보 600은 그 의 의미가 다르다. 한국 시장의 메인스트림인 승용차 시장에 도전하고 있어서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중형 SUV 시장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켄보 600을 만났다.

켄보 600은 북경자동차그룹의 수출차 전담 조직인 북기은상에서 제작한다. 국내 수입 판매는 중한자동차가 맡는다. 중국산 차를 우습게 보는 이들도 많다. 자동차보다 중국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하긴, 전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이에 얽힌 애증의 역사가 길고 깊은 까닭이다.

몇 가지 통계를 먼저 보자. 자동차 생산량 기준 전 세계 1위는 중국이다. 2015년 중국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2,450만대. 2위인 미국이 1,200만대. 한국은 455만대로 5위다. 우리가 우습게 보일지언정, 우리가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다.
켄보600의 모기업 북경자동차그룹은 중국 5위 메이커다. 상하이자동차, 둥펑, 제일기차, 장안그룹, 북경자동차그룹 순이다.

주차장에서 첫 모습을 봤다. 잘 정돈된 라인, 틈새, 단차 마무리도 흠잡을 데가 없다. 비례도 좋다. 안정감 있고 차분한 디자인이다. 세련됐다. 과장, 허세에 익숙한 중국인들이 차분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완성했다. 날개를 모티브로 한 엠블럼, 시동을 켤 때 계기판에 등장하는 횃불 이미지 정도가 조금 낯설 뿐, 이를 제외하면 다른 차들에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당당한 크기다. 길이 4695, 너비 1840, 높이 1685mm다. 휠베이스는 2700mm. 국산 중형 SUV와 견줘도 밀리지 않을 크기를 가졌다. 실내 공간은 좁지 않다. 뒷좌석도 여유롭다.

X자 형태로 정돈된 정면 모습은 나름의 특징을 잘 드러내면서 단정하게 정돈됐다. 측면 모습에서 단정함이 더 돋보인다. 수평에 가까운 두 개의 라인이 기교와는 거리가 멀다. 견고함, 자신감을 말하고 있다. LED 방식의 리어램프가 사각의 틀 안에 단정하게 자리 잡았다. 차분하고 정제된 모습이다.

3회전하는 스티어링휠의 림이 얇다. 손에 쥐기 딱 좋다. 손이 작은 동양인에겐 굵은 핸들보다 얇은 핸들이 쥐기 편하다. 플라스틱, 나무장식, 소프트한 재질들이 어우러졌다. 시트는 브라운과 블랙 투톤으로 마무리했다. 세련됐다. 전동식 시트다. 휠에는 크루즈컨트롤 버튼이 올라왔다. 오른쪽엔 오디오 조작버튼이 자리했다. 컵홀더는 하나뿐.

계기판엔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한눈에 정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중구난방으로 올라오는 정보는 폰트도 촌스러워 정돈된 느낌이 안 든다.

센터페시아 상단 스피커에 BAIC 로고가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아틀란 내비게이션은 옵션이다. 51만원.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안쪽으로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밝은 대낮에도 선명하게 잘 보인다. 블루투스 페어링, 스마트폰 미러링 등이 가능하다. CD 플레이어는 없다. 아틀란 내비게이션을 집어넣어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는 블랙 무광재질로 마감했다. 먼지도 안타고 손때도 안 묻는다. 유광 재질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실용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중 하나다.

변속레버는 헐겁다. D에서 수동모드로 옮길 땐 저항이 거의 없다. 꽉 짜인 맛이 없고 툭 빠지듯이 헐겁게 자리를 옮긴다. 주차 브레이크는 버튼식이다.

가죽 느낌으로 만든 시트는 그 재질이 고급스럽진 않다. 오래 타면 어떨까 궁금하다.

첫 느낌은 겸손이다. 과장되지 않았고, 착한 가격으로 첫 발을 들였다. 두 가지 트림의 가격은 1,999만원과 2,099만원. 차이니스 디스카운트를 감안한 가격으로 보인다. 겸손한 시작이다. 준중형 세단의 기본 트림 정도 가격에 중형 SUV를 만날 수 있게 된 것. 판매 목표도 많지 않다. 겸손한 자세로 한국 시장에서 몸 풀기를 시작한 셈이다.

1.5 가솔린 터보 엔진을 올려 무단변속기로 조율해 낸 힘은 최고출력 147마력에 최대토크 21.5kgm이다. 연비는 9.7km/L다.

출발. 첫 느낌이 어색하다. 가속페달 밟으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는 느낌이다. 한 박자 쉬고 몸을 움직인다. 급가속을 위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정말 움직이기 싫다는 듯 두 박자까지도 모른 체하다가 겨우 반응한다. 오르막에서 정지후 출발 할 땐 잠시 동안 꼼짝하지 않는다. 속이 터질 정도. 무단변속기의 심술이다.

1.5 엔진에서 이 정도 힘이 나온다는 것 대견한 일이라며 추겨 세우고 싶지만 무단변속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 거리게 된다.

일단 속도를 올려놓고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추월가속을 시도하면 엔진은 쥐어짜듯 소리를 내며 rpm을 5,000에 고정한 채 꾸준하게 밀고 간다. 제법 빠른 속도까지 올라갈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꾸준히 속도를 올리고 아주 빠른 한계속도까지도 도달한다. 차선이탈경보장치가 있어 차선을 밟을 때마다 경고음을 날린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을 마크하고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2,500rpm으로 올린다. 엔진 소리는 꾸준히 살아있다. 고속주행에서도 바람소리에 밀리지 않고 소리를 토해낸다.

노면충격을 넘어가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통통 거리는 느낌이 시트까지 전달되진 않는다.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해주는 것.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갈 땐 서스펜션이 제대로 노면을 지지해주지 못하는 느낌이다. 충격을 받으면 옆으로 살짝 살짝 튕기는 느낌이다.

크루즈컨트롤은 가장 기본적인 정속주행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7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오디오는 무난한 수준. 블루투스로 핸드폰과 연결된다. 블루투스로 핸드폰 음악을 들을 때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띄워주진 않았다.

공차중량 1620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11kg. 경쾌한 움직임을 보이기엔 조금 무겁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속도를 높이는 스타일.
금호타이어 225/65R17 사이즈다. 편평비가 65. 승차감에 조금 더 포커싱했다. 제동, 급가속, 코너 등에서의 아쉬움을 감수해야 한다. 가속을 이어가면 변속레버를 통해 자잘한 진동이 계속 전해온다.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으면 차체 앞뒤가 함께 살짝 가라앉는 느낌이다. 노즈 다이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차이나엔캡, 즉 중국 충돌테스트 결과 별 다섯으로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검증 받았다. 전국에 20군데의 정비협력 거점을 확보했다니 최소한의 AS네트워크는 갖춘 셈이다. 판을 키우기엔 그들도 아직은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스케일 큰 중국답지 않게 판매목표는 높지 않고, 판매와 정비 네트워크는 최소한의 수준이다.

가격을 감안하고 평가한다면, 켄보 600은 제법 훌륭하다. 디자인은 갑이고, 성능은 조금 뒤쳐진다. 그래도 밸런스가 잡혀있고, 기본기도 제법 충실하게 갖췄다. 탁월하다고 칭찬하기엔 이르지만, 평균은 넘는 수준이다. 빈자의 싼타페 정도로 충분히 역할을 하겠다.

어쨌든 한국 시장으로의 진입을 따뜻하게 환영하며 선전을 기원해 본다.

2005년경 중국에서 체리자동차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중국 메이커들은 글로벌 메이커들의 차를 부지런히 따라하는 ‘카피의 시절’이었다. 10여년 세월이 지났고 이제 그들은 세계시장을 넘보기에 이르렀다. 카피의 시대를 지나 이제 본격적인 추격을 시작하고 있다. 켄보 600은 그 추격대의 선두에 선 척후병인 셈이다. 그 척후병이 자세를 한껏 낮추고 겸손된 자세로 한국 시장에 첫발을 디뎠다.

켄보 600 뒤에는 또 어떤 차들이 올까.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가 점차 나아진다면, 다른 글로벌 브랜드들도 중국에서 제조한 차들을 들여올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차의 뒤에 한국 진출을 노리는 많은 차들이 대기 중이라고 본다면, 켄보 600은 어쩌면 트로이 목마일 수도 있겠다.

중국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저급차로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니다. 품질이 해외시장을 노릴 정도로 자신감을 가졌다. 과거 우리도 그랬다. 70 80년대 포니와 쏘나타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지난한 과정이었다.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차를 호의적으로 본 건 절대 아니었다. 한국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개선 업그레이드하면서 오늘까지 올라왔다. 중국차 역시 마찬가지다. 우습게 볼 수 있고, 수준이하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모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끊임없이 품질개선을 이뤄나가면 앞선 메이커들과의 차이를 줄이는 건 시간문제다.

여기서 다시 한국차의 고민이 시작된다. 독일 프리미엄세단 근처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중국차. 우리는 과연 어느 지점에 포지셔닝하고 어떤 전략을 택할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켄보 600을 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가속반응을 더디게 만드는 무단변속기는 문제가 있다. 평지에서도 가속반응이 더디지만 경사가 급한 오르막에서 정지 후 출발을 할 때면 한동안 꼼짝하지 않아 뒷차에 한없이 미안해진다. 계기판 등에서 보이는 한자표기는 한글로 변환해주는 게 맞다. 그냥 가져다 파는 게 아니라 현지 소비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다. 계기판에 보이는 글자의 폰트 역시 좀 더 세련되게 조정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켄보 600이라는 글씨체도 마찬가지.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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