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XT5가 한국에 왔다. 지난해 부산모터쇼에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뒤 연말부터 본격 판매에 나섰다. 국내 시판 모델은 최고급 트림인 플래티넘.
SRX의 후속작으로 ‘미드 사이즈 럭셔리 크로스오버’로 소개 된 차다. 알파벳과 숫자로 네이밍을 한다는 캐딜락의 새로운 전략에 따르면 앞으로 XT3와 XT7이 XT5의 위 아래로 포진하게 된다. 캐딜락의 차세대 SUV 라인업 중심에 위치하는 셈이다.
XT5는 전륜구동 기반으로 고급 트림에 사륜구동 기능이 추가된다.
앞뒤 램프를 세로로 배치하는 캐딜락다운 모습을 유지했다. 입을 쫙 벌린 살모사의 옆모습 같은 헤드램프. 아래로 흘러내린 부분 아래로 주간주행등도 세로로 배치했다.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뱀의 눈물을 그려내고 있다.
바람과 맞서야 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물러서지 않을 듯 당당하다. 월계관을 벗어던진 캐딜락의 앰블럼은 전통을 유지하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측면 라인은 앞으로 쏠리고, 차창은 뒤로 갈수록 좁다. 앞뒤에서 시작하는 두 개의 라인은 서로 엇나가며 볼륨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아래 버틴 20인치 타이어. 235/55R20 미쉐린 타이어다.
문을 열고 엉덩이를 먼저 집어넣으면 그곳에 시트가 있다.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는 구조다. 스티어링휠은 조금 크게 느껴진다. 크지 않은 차체에 큰 핸들은 어색하다.
룸미러는 거울이자 모니터다. 단순한 거울로 뒤를 반사해 보여주는 룸미러가 레버를 젖히면 카메라를 통해 보는 후방 시야를 띄워주는 모니터로 변한다. 영화 화면 같은 시원한 영상이 펼쳐진다. 거울로 보면 뒷좌석 헤드레스트 사이로 좁게 보이는데 모니터 상태를 택하면 차 실내 모습은 생략하고 거울보다 서너 배는 넓은 각도로 보인다. 달리는 동안에 뒤차 모습은 물론 좌우측 차까지 온전히 다 보여 마치 영화의 추격신같은 영상이 펼쳐진다. 밝은 대낮인대도 화면을 보는데 지장이 없다. 다만 약간의 이질감은 있다. 거울에 익숙했던 눈이 당황하는 것이다.
대시보드의 일부를 스웨이드 가죽으로 마감했다. 보들보들한 가죽을 손끝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관리하기가 까다롭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나름 특색 있는 구성이다. 이밖에 가죽, 나무, 탄소섬유 등의 소재를 사용한 실내는 제법 고급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뒷좌석은 여유롭고 편하다. 시트를 뒤로 조금 더 누일 수 있고, 센터터널도 없어 평평한 바닥을 갖췄다. 230V 가정용 전원을 사용할 수 있고, USB 포트도 앞에 둘, 뒤에 둘 모두 네 개를 확보했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 하지만 시승차는 안드로이드 오토를 연결할 수 없었다. 시승차는 미리 수입해놓은 2016년형이어서 그렇다는 답을 캐딜락 홍보 관계자로부터 들었다.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V6 3.6 가솔린 엔진은 가로로 배치했다. 엔진룸은 공간이 여유롭다. 손이 쉽게 드나들 수 있어 정비가 편하겠다. 최고출력 314마력, 37.5kgm의 토크를 낸다. 300마력이 넘는 힘은 발끝을 통해 순식간에 구현된다.
이 힘을 조율하는 건 아이신 8단 자동변속기. 하이드라매틱 8단 변속기를 빼고 아이신 변속기를 택한 건 의외다.
변속레버 작동법도 조금 색다르다. N과 R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다. N에서 레버의 버튼을 누르고 왼쪽으로 밀어야 R이 된다. P는 버튼을 누르는 방식. D에서 아래로 한 번 더 내리면 수동변속 모드인 M이 된다. 수동변속 상태에서 2, 3단은 시프트업이 자동으로 일어나지만 3단에서는 자동으로 4단 시프트업이 안 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운전자가 조작을 해야 변속된다.
가속페달을 꾹 밟아 킥다운 버튼을 넘어서면 시트가 몸을 툭 밀며 달려 나간다. 몸무게가 있어 처음 잠깐 멈칫 거리는 느낌을 받는 순간 튀어나간다. 고속주행으로 이어지는 차체는 극한의 속도에 다가설 때쯤 약간의 피칭을 보인다. 앞뒤 방향의 흔들림이 나타나는 것. 무게중심이 높은 SUV가 아주 빠른 속도에서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XT5에는 기존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시스템 대신 ZF사의 컨티뉴어스 댐핑 컨트롤이 장착됐다.
럭셔리 SUV 답게 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엔진소리와 바람소리가 적당히 뒤섞여 들어올 뿐이다. 엔진 사운드는 잘 다듬어졌다. 소리가 커져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효율과 관련해 두 개의 시스템이 눈에 뜨인다.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시스템과 오토스탑 시스템. 정속주행이나 내리막 길 등 엔진이 특별히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구간에선 여섯 개의 실린더중 두개는 쉬고 네 개만 작동한다. 그만큼 연료를 아낄 수 있다.
오토스톱도 마찬가지. 차가 멈추면 어김없이 엔진이 멈춘다. 그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잠든 엔진은 깨어나지 않았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그때 부르르 몸을 떤다. 스포츠모드에서도 마찬가지. 대게 다른 차들은 스포츠 모드에선 오토스탑을 해제하지만 XT5는 예외가 없다.
메이커가 밝히는 복합연비는 8.9km/L로 5등급이다. 사이즈는 작은데 식욕은 제법 왕성하다. 3.6 리터에 달하는 배기량, 2,030kg의 공차중량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는 연비다. 시승하는 동안의 평균 연비는 7km/L를 조금 넘는 수준. 가감속이 잦고, 공회전 시간도 많은 등 주행 조건이 아주 좋지 않음을 감안해야 한다.
드라이버 어시스트 패키지는 완성도가 높다. 보행자도 인식한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사람을 인식해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경보를 내보낸다. 경보에도 운전자가 제동을 하지 않아 충돌 위험이 있으면 차가 스스로 제동한다. 긴급제동, 전후방 자동 브레이킹 등이 힘을 보탠다.
3단계로 차간 거리를 조절해주는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시스템에 더해 조향보조까지 해 준다. 반자율 운행이 가능한 것. 뱀처럼 영민하게 움직여준다.
하지만 너무 믿어선 안 된다. 차선이 희미하거나 코너가 급한 곳에선 간혹 차선을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다양한 첨단장비가 현란한 미사여구로 설명되지만 분명한 건 아직은 어시스트, 즉 ‘보조’장비라는 사실이다. 책임은 운전자 몫이라는 말이다.
시트는 수시로 진동한다. 차선을 밟을 때, 차간거리가 가까워질 때, 사람이 튀어나올 때 등등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엔 시트가 부르르 떤다. 그 느낌이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다.
4WD 시스템은 특이하다. 주행 모드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는 것. 투어, 스포츠, AWD 등 3개의 주행모드가 있고 이중 AWD를 택해야 사륜구동 기능이 활성화된다. 스포츠 모드에서 미끄러운 길을 만날 때 사륜구동이 자동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평소엔 앞바퀴굴림으로 주행하다가 필요할 때 사륜구동을 선택해야 한다.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 AWD로 봐야하는 이유다.
트윈클러치를 적용해 사륜구동시스템은 앞뒤 구동 배분을 0:100 혹은 그 반대가 가능하다. 전자제어되는 리어 디퍼렌셜도 어느 한쪽으로 힘을 다 몰아줄 수 있다.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는 오프로드에 차를 잠깐 올렸다. 간간이 잔설이 남아있고, 질척거리는 흙길을 네 바퀴가 자근자근 밟으며 올랐다. 두 개의 앞바퀴가 턱에 걸렸을 때, 탄력 없이 천천히 힘으로 타고 넘으려 했는데 힘을 쓰지 못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엔진의 힘은 살아나지 않았다. ESC가 개입한 탓이다. 가지 않겠다며 버티는 녀석을 살짝 후진 시킨 뒤 탄력을 붙여 넘을 수 있었다. 거친 오프로드에선 ESC를 꺼야하는 이유다.
V6 3.6 엔진에 314마력이 호쾌한 주행을 보장하지만 어찌 보면 너무 과한 성능은 아닐까. 중국에선 2.0 터보 모델도 판매한다는 데 그 정도면 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투덜이의 푸념이다.
판매가격 7,480만원. 시장엔 X3, Q5, GLC 등의 독일 라이벌들이 버티고 있다. 작정하고 붙는다면 해볼만 하겠다. 문제는 캐딜락을 판매하는 GM코리아의 투지다. 그들의 투지가 XT5의 성능을 앞선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차는 좋은데…….
오종훈의 단도직입
오토스탑 시스템을 해제할 방법이 없다. 정확하게 작동하는 오토스탑 기능은 마음에 든다. 재시동도 부드러워 이질감도 없다. 하지만 발톱을 드러내며 조금 거칠게 달리고 싶을 때조차도 정지하면 엔진은 얌전하게 잠들어 버린다. 초반 출발에서 굼뜬 이유다. 잠을 깨고 달리느라 한 박자 쉬고 움직인다. 게다가 몸무게가 2톤이 넘어 더딘 출발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버튼 하나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다.
스티어링 휠 아래 말 그대로 숨어 있는 패들 시프트는 조정했으면 좋겠다. 손이 작은 사람이 이를 조작하려면 손가락을 쫙 펴야 겨우 걸릴 정도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