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새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형 SUV 인기가 드높다. 현대차를 제외한 모든 국내 메이커가 이 시장에 선수를 내보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르노삼성차가 판매 실적의 터닝 포인트를 만든 게 QM3였고, 쌍용차는 티볼리 덕분에 소형 SUV의 맹주로 떠오르며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고 있다.
쉐보레 트랙스는 해외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무려 17만대 넘게 해외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국지엠 입장에선 제일 효자 차종이다. 유럽에선 오펠 모카, 미국에선 뷰익 앙코르로 팔린다. 트랙스는 해외 시장에 집중한 탓일까 국내에선 시장 열기에 비해 두각을 내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신형 트랙스로 모델이 교체된 건 지난 10월. 트랙스 가솔린 1.4 터보 LTZ를 시승차로 제공받아 하루 동안의 만남을 즐겼다.
어반 시크 디자인, 어반 유틸리티 비클, 쉐보레가 이 차를 설명하는 말에는 ‘어반’ 즉 도심 지향의 의미가 담겨있다. 길이든 아니든 들이대 놓고 보는 정통 오프로드 SUV가 아니라 세련된 도시의 삶을 지향하는 차다.
4,255 x 1,775 x 1,650mm의 크기는 짧고 껑충하게 보일 수 있는 비례지만 디자인이 이를 잘 커버해주고 있다. 소형 SUV에서 안정감 있는 비례를 바라는 건 무리다. 듀얼포트 그릴에 프로젝션 램프, LED 주간 주행등이 세련된 외모를 잘 마무리하고 있다. 소형 SUV 중에선 디자인이 가장 나은 수준.
인테리어도 차급에 비해 고급스럽다. 시승차는 블랙&브라운 컬러로 단색의 지루함에서 벗어났다. 대시보드엔 가죽질감의 부드러운 소재를 댔고 대시보드 상단은 플라스틱이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잘 만들어냈다. 센터페시아는 모니터와 몇 개의 버튼이 전부. 단촐한 구성이다. 버튼 조작감은 거친 편. 부드럽지 않아 어색하다. 도어 아래쪽에 배치된 스피커에는 ‘보스’ 배지가 붙어있다.
운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계기판. 모터사이클 계기판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3.5인치 흑백 TFT LCD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계기판은 간단한 주행정보를 띄워준다.
편안한 2열 시트는 손쉽게 접어 넣고 트렁크를 넓게 쓸 수도 있다. 소형 SUV여서 뒷공간이 좁지 않을까 염려됐지만 실제 앉아보니 기우다. 등을 똑바로 세워 앉으면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 넘는 공간이 남고, 비스듬히 기대앉으면 무릎이 앞 시트에 닿는다. 지붕은 머리 위를 살짝 파놓아서 여유 공간을 확보했다. 센터터널은 손가락 길이 정도로 솟아있지만 걸리적거리지 않아 가운데 좌석에도 편하게 앉을 수 있다. 220V를 사용할 수 있는 전원 연결구도 뒷좌석에 마련돼 있다.
소형 SUV에는 과분한 장비들이 들어와 있다. 차선이탈 경고시스템, 사각지대경고 시스템, 전방충돌 경고시스템, 후측방 경고 시스템 등이다. 여기에 정속 주행이 가능한 기본적인 크루즈컨트롤이 더해졌다. 6개의 에어백과 함께 차와 승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장비들이다.
하지만 이미 쌍용 티볼리에는 이보다 앞선 수준인 ADAS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조향보조 기능 등을 적용하며 치고 나간 것. 뭐, 그렇단 얘기다.
쉐보레가 미국 브랜드여서일까. 트랙스는 애플에 최적화돼있다. 애플 카플레이를 탑재해 차에서도 아이폰을 쉽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이 그대로 차에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된다. 내비게이션도 핸드폰과 연동된다. 삼성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 폰과는 안 친하다. 연동이 안 된다.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하는 이들은 핸드폰 거치대를 사용해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없다. 트랙스를 사려면 먼저 아이폰을 구매하는 게 좋겠다. 쉐보레는 시장의 절반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1.4 가솔린 터보 엔진은 140마력의 힘을 낸다. 무려 140마력이다. 이 작은 엔진으로 이 힘을 만들어 내다니. 최대토크도 1,850~4,900rpm 구간에서 20.4kgm가 나온다. 공차중량은 1,370kg. 마력당 무게비가 9.8kg으로 10kg에 못 미친다. 소형 SUV로선 훌륭한 힘의 효율이다. 참고로 쌍용차 티볼리 1.6 가솔린은 공차중량 1,270kg으로 최고출력 126마력 최대토크 16.0kgm이다. 마력당 무게비는 10.1kg 수준. 트랙스가 더 작은 엔진으로 더 센 힘을 내고 있다.
가솔린 엔진 특유의 경쾌한 발놀림이 인상적이다. 가볍고 빠르다. 움직임에 전혀 부담이 없다. 시야가 탁 트여 마음이 가벼운, 심리적 요인도 크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최대한 밑으로 하향 배치해 앞창의 면적을 넓게 만든 효과다. 대형 화면을 마주한 듯한 확트인 개방감은 압권이다.
가속페달은 끝까지 밟히는데 걸림이 없다. 확 밟으면 처음엔 멈칫하고 탄력을 받으면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초반 지체현상을 느끼지만 일단 터보가 작동을 하면 제법 힘을 쓴다. 탄력을 받으면 빠르다는 느낌이 온다. 배기량에 비해 칭찬할만한 가속력이다. 140마력의 힘을 꽉 차게 사용한다.
엔진 회전수를 레드존 근처로 끌어올리면 변속레버를 통해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지만 거부감은 없다. 탓할 생각도 없다. 소형 SUV로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다.
시속 100km에서 2,000rpm을 정확하게 마크한다. 배기량이 작은데도 엔진회전수는 높지 않다. 의외의 안정감이다.
고속주행은 두 단계로 나뉜다. 엔진소리가 들리는 구간과 안 들리는 구간. 1단계 고속구간에선 바람소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엔진 소리는 카랑카랑 살아난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의 절묘한 합주를 듣게 된다. 바람소리에 밀리지 않는 엔진이 대견하다. 그 보다 속도를 좀 더 높여 2단계에 접어들면 비로소 바람소리가 엔진 소리를 먹어버린다. 엔진은 열심히 작동하지만 바람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스티어링휠은 2.5 회전한다. 소형차에 어울리는 세팅. 작은 SUV에는 민첩하게 반응하는 조향이 어울린다. 딱 좋은 조향비다.
방향을 바꿀 때 몸이 쏠리는 느낌은 숨길 수 없다. 빠르게 달릴 때 살짝 살짝 뒤뚱거리는 느낌도 온다. 착 가라앉는 느낌은 아니다. 차체와 시트 포지션이 높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높고 짧은 오똑한 스타일이어서 높은 수준의 안정감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체형이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토션빔 조합이다.
컨티넨탈 타이어가 공급된다. 사이즈는 215/55R18. 조금 과하게 코너를 돌아도 그립을 확실하게 유지한다. 정지상태에서 급출발하면 살짝 스핀할 때가 있었다.
3세대 자동 6단 변속기, 흔히 얘기하는 ‘보령 밋션’이다. 일상적인 주행상황에선 변속 쇼크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급가속을 할 때 시프트업이 일어나면서 ‘툭’하고 풀리는 느낌이 있지만 그 정도야 뭐…….
자동변속기 레버 엄지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수동 변속용 토글스위치가 있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변속을 할 수 있는 것. 단 수동 변속을 위해선 변속레버를 M으로 내려야 한다. D에선 수동변속 조작이 먹히지 않는다.
수동변속을 하면 운전자가 직접 조작하기 전에는 절대 변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rpm이 높다고 차가 스스로 시프트업을 하지 않는 것. 운전자에 절대 복종하는 충성스런 변속기다. 높은 rpm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을 때 아주 유용하다.
전체적인 주행 반응은 매우 훌륭한 수준이다. 단, 소형 SUV임을 감안한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
연비는 12.2km/L로 3등급이다. 연비 기준이 크게 강화됐으니 이전 연비로 한다면 이보다 1~2km 정도는 더 나온다고 봐야한다. 작은 배기량, 강한 힘, 우수한 연비. 다운사이징의 모범이다.
트랙스는 가장 저렴한 모델이 1,845만 원 부터다. 최고급은 2,580만원이다. 2,000만 원대로 살 수 있는 SUV 라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이미 시장엔 강력한 경쟁모델이 자리하고 있다. 티볼리다. 차근차근 따져보면 트랙스가 티볼리에 앞서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성능, 연비가 그렇고 트랙스가 더 예뻐 보인다는 사람도 많다.
트랙스가 더 우수하다고 해도, 판매 숫자로 티볼리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겠다. 제품 라인업에선 밀리기 때문이다. 숏보디, 롱보디, 2WD, 4WD에 수동 변속기까지 갖춘 게 티볼리다.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라인업이 티볼리의 강점. 가격도 싸다. 이를테면 수동, 롱보디, 4WD를 원하는 이들은 트랙스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구매 전에 상당한 갈등을 겪어야 한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을 감수하고도 트랙스가 선전한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선전을 기원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실내의 지붕 끝 선은 지금까지 만나본 차 중 최악이다. 재질의 단면이 우둘투둘 다 드러나 있고 심지어 접착제의 끈적임도 손에 느껴진다. 이 정도면 마무리를 한 게 아니라 만들다 만 수준이다. ‘소형’SUV라고 넘어가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수준으로 출고 검사에서 OK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주유구에는 유종 표시가 없다. 휘발유인지 디젤인지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 혼유 위험이 크다. 유종 표시는 반드시 해야 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