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따먹고 싶을 만큼 농익은 i30

핫 해치. 현대차가 신형 i30의 캐치플레이즈다. 많이 듣던 단어다. 핫 해치가 말처럼 뜨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적들의 언어여서다. 적들이 앞서 쓰던 말을 되풀이하는 건, 안전하게 그들의 뒤를 따르겠다는 의미다. 전형적인 팔로어의 태도다. ‘핫 해치’라는 말 한 마디에 i30의 방향이 읽힌다. 퍼스트 무버가 아니라 팔로어라는 것.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말이다.

현대차가 i30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였다. 유럽형 모델이다. i는 현대차의 유럽 전용 차종에 붙는 이니셜. 거의 대부분의 개발을 해외, 즉 유럽에서 진행했다. 9월 7일, 이 차의 발표는 유럽과 동시에 진행됐다. 밤 10시까지 엠바고를 건 이유다.

1.4, 1.6 가솔린 터보 엔진, 1.6 디젤 엔진 등 3종류의 엔진이 올라간다. 배기량 1.6으로 200마력이 넘는 힘을 뽑아낸다. 다운사이징 흐름에 이제 현대차도 본격 합류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은 것 보다는 낫다.

1.6 터보 가솔린 엔진 모델을 얹은 i30를 시승했다.

단정한 디자인에선 힘이 느껴진다. 과장되지 않은 선은 당당하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유려한, 혹은 난해한 리어램프의 곡선은 사라지고 단순명료한 모습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신감이다.

40mm 길어졌고, 15mm 넓어졌다. 높이는 15mm 낮췄다. 좀 더 넓고 납작해진 모습이 됐다. 뒤에서 보면 이를 느낀다. 도로에 착 달라붙어 잘 달릴 수 있는 체형으로 진화했다. 촉이 빠른 이는 차의 크기만 보고서도 달리기에 욕심을 낸, 재미있는 차를 만들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힌트는 또 있다. 핸들 회전수가 2.5에 불과하다. 아주 예민한 조향비다. 조향성능에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 속도감응형 MDPS를 적용해 정지 상태에선 살짝 무게감도 있다.

하나 더. 204마력이 감당해야 하는 이 차의 공차중량은 1,380kg.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해보면 6.76kg이다. 계산상으로는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7초 이내로 끊을 수 있을 정도의 효율이다. 스포티한 주행을 기대해도 좋겠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잔뜩 힘을 줬다. 용광로에서 녹아내리는 쇳물, 그리고 한국 도자기의 우아한 곡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캐스캐이딩 그릴’이다. 임팩트가 강하다. 두터운 C 필러는 강한 느낌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듀얼 머플러가 힘을 보탠다.

빨깐 스티치로 포인트를 준 실내 인테리어는 감각적이다. 8인치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센터페시아 상단에 돌출시켰다. 모나지 않게 디자인해서 세련된 모습이지만 돌출형 모니터는 안전측면에선 바람직하지 않다.

뒷좌석은 저스트 스페이스다. 넓지도 좁지도 않는 딱 맞는 공간. 무릎을 세워 똑바로 앉으면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 정도가 남는다. 비스듬히 누워 등받이에 기대는 자세를 취하면 무릎이 닿는다. 센터터널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무시해도 좋은 높이다. 뒷좌석을 위한 별도의 송풍구가 눈에 띈다.

센터페시아 하단 수납공간에는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이 있다. 핸드폰을 올려놓으면 알아서 충전이 되는 것. 물론 스마트폰에 해당 기능이 있어야 한다. 애플 카플레이가 있어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선루프는 시원하게 열렸다. 지붕의 거의 대부분을 선루프가 차지한다. 파란 가을하늘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열선 스티어링 휠이 적용됐고 시트는 냉풍, 온열이 모두 가능했다.

운전석에 오르며 도어를 닫으면 묵직한 무게감을 만난다. 고급차에서 만날 수 있는 무게감이다. 뒷 도어는 그렇게 무게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툭 도어를 밀어 닫으면 가끔 도어가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살짝 걸쳐지는 정도로만 닫히는 것. 도어는 힘 있게 닫아야 하겠다.

가솔린 1.6 터보 엔진은 무려 204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27.0kgm으로 1,500~4,500rpm 구간에서 발휘된다. 차가 움직이는 거의 모든 구간에서 최대토크가 나온다고 보면 되겠다.
이 힘을 조율하는 건 7단 DCT다. 가속페달을 완전히 밟아 가속을 이어가면 절도 있는 변속감이 확 와 닿는다. 큰 힘을 쓰면서 시프트 다운을 할 때면 변속 쇼크가 제법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힘 있는 엔진 사운드, 하지만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아니다. 부담 없이 듣기 좋은 정도로 소리를 잘 만졌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을 살짝 넘는다. 일반적으로 1,800rpm을 보이거나 1,600rpm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i30는 좀 더 높은 엔진회전수를 보였다. 배기량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운 탓으로 보인다.

중저속부터 아주 빠른 고속구간까지 i30는 거침이 없다. 모든 속도에서 힘이 넘친다.

놀라운 건 고속주행 안정성이다. 일반적으로 해치백은 고속에서 불안해진다. 지붕을 타고 넘어간 공기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와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트렁크가 있어야 공기의 다운포스 효과를 얻으며 조금 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데 트렁크가 없는 해치백은 불안정한 와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차체는 흔들리고 바람소리도 더 커지는 이유다.

i30는 그런 면에서 매우 높은 안정감을 보였다. 덜 흔들렸고 바람소리도 크지는 않았다. 해치백으로선 매우 우수한 반응이다.

주행모드는 모두 3가지가 있다. 스포츠, 노멀, 에코다. 각 모드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이를 확연하게 느끼기는 힘든 수준. 스포츠모드에서 좀 더 강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무리가 없다. 넘는 순간 크게 전해오는 한 차례의 흔들림으로 쇼크를 마무리한다. 잔 진동이 없다. 멀티링크 리어서스펜션, 개선된 쇼크업소버, 후륜에 적용된 우레탄 인슐레이터의 효과로 해석해 본다.

코너가 재미있다. 짧은 길이의 해치백은 코너를 리드미컬하게 즐기며 달렸다. 뒤가 짧아 부담이 없고 조향반응도 즉각적이라 재미있게 코너를 즐길 수 있다. 작은 산을 넘는 와인딩로드를 시속 80km 전후로 타고 넘을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만큼 코너를 즐기면 되겠다.

제동성능은 상황에 따라 반응이 조금 다르다. 디스크 지름이 앞 305mm(기존 280mm), 뒤 284mm(기존 262mm)로 늘려 제동력이 강해졌다. 조금 더 강한 제동력, 혹은 조금 더 가혹한 조건에서 안정감 있는 제동을 기대할 수 있다. 한 번에 페달을 ‘콱’ 밟는 급제동을 하면 노즈 다이브가 심하기는 하지만 차체의 흔들림은 적었다. 반면, 점차로 강하게 페달을 밀어 밟는 제동에선 뒤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반응이 나온다. 급제동을 하면 비상등이 자동으로 점멸했다. 급제동 경보장치다.

흡차음재를 확대 적용해 실내 정숙성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이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조용하다기 보다 시끄럽지는 않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초고장력 강판 비율을 53.5%까지 높였다고 한다. 차체 강성은 높아지고 차 무게는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안전과 연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더 튼튼해진 녀석이 먹성은 줄어드는 셈.

운전석 무릎 에어백을 포함해 모두 7개의 에어백이 적용됐다. 앞좌석 어드밴스드 에어백, 운전석 무릎 에어백은 좀 더 적극적으로 안전을 보장해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해진다.

경사로 밀림방지장치가 적용됐다고 하는데 조금 경사가 있는 오르막에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차가 스르르 뒤로 밀렸다.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은 정해진 속도로 정속주행할 수 있는 정도다. 연말부터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이 적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차 혹은 보행자와의 충돌이 예상되면 차량을 자동으로 제동시켜주는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운전자가 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자동으로 조향을 제어해주는 ‘주행 조향 보조 시스템(LKAS)’, 운전자의 피로도가 높을 때 팝업 메시지와 경보음으로 휴식을 유도하는 ‘부주의 운전 경보 시스템(DAA)’도 연말쯤 만날 수 있게 된다.

i30 공인 복합 연비는 11.6km/L. 시승차의 계기판이 알려준 실제 연비는 8.0km/L 였다. 고속질주, 저속 주행, 공회전, 스포츠 모드 등 가혹한 환경에서 시승을 진행한 결과다. 에코 모드를 이용해 조금 더 신경 써서 안정감 있게 차를 다루면 공인 복합연비 수준을 경험하기는 어렵지 않겠다.

신형 i30의 가격은 가솔린 1.4 터보가 2,010 ~ 2,435만원(튜너 패키지 적용 시 1,910만원부터) 가솔린 1.6 터보가 2,225 ~ 2,515만원이며 디젤 1.6이 2,190 ~ 2,615만원이다.

i30는 농익었다. 따먹어도 좋을만큼이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다. 파워트레인의 성능, 차체의 반응, 편의장비 등에서 그렇다. 성공을 위한 기본은 갖췄다.

다시 앞서 얘기한 문제다. 캐치플레이즈가 보여주듯 팔로워의 자세는 아쉽다. 좋은 제품을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궁극적인 승리로 이끄는 힘이 과연 있는지는 의문이다. 몸통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는데 머리는 아직 옛날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지, 한번 돌아보길 권한다. 핫 해치 말고 다른 말, 나의 언어를 찾을 때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가격이 올랐다. 최고 트림을 기준으로 보면 100만 원 이상 가격이 인상됐다. 준중형 해치백의 가격이 2,600만원을 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가격 상승을 동반하는 기술의 진보는 의미가 없다. 가격 상승 없이 좀 더 앞선 기술을 만나는 게 진짜 기술의 진보다. 소비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돌출된 내비게이션은 안전과 상충된다. 8인치 모니터는 모서리에 각을 없애고 나름 보기 좋게 만들었지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할 때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대시보드에는 돌출된 부분이 없을수록 좋다. 안전을 위해서 그렇다. 안전은 아름다움에 우선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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