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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제네시스 G80을 새로 선보였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두 번째 모델이지만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족보 정리를 좀 해야 한다. 프로젝트명 BH로 개발된 제네시스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2008년. 현대차 브랜드의 준대형 세단으로 등장했다. 현대차는 이후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별도 브랜드로 분리시키고 2015년 12월 EQ900을 첫모델로 내놓는다. 원래의 현대차 제네시스는 다시 제네시스 G80으로 브랜드와 이름표를 바꿔달았다. ‘현대’에서 벗어나 ‘제네시스’로 분가한 셈이다.

브랜드와 이름을 바꾸는 제법 큰 변화를 맞았지만 정작 자동차 자체의 변화는 거의 없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라인이 바뀐 정도가 변화라고 하니 무시해도 좋을 사소한 변화다.

시승차는 G80 H 트랙으로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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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시트가 몸에 착 감긴다. 몸을 받아들이는 밀착감이 좋다. 차가 출발하면 안전띠가 몸을 한 번 조였다가 풀어준다. 가벼운 포옹의 느낌. 사소하지만 감정을 매만지는 배려다. 따뜻함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반가운건 엉덩이를 식혀주는 냉풍. 폭염에 운전하면서도 엉덩이는 뽀송뽀송했다.

대시보드의 나무 장식은 나무결을 그대로 살렸다. 시각적으로는 물론 손가락으로 느끼는 질감이 제법 고급스럽다. 금속재질로 마감한 센터 페시아도 밝고 세련된 느낌이어서 마음에 든다.

손에 쏙 들어오는 변속레버는 R N D로 구분된다. P는 그 위쪽에 별도 버튼으로 분리했다. 각 부분의 조작버튼, 커버 등이 매우 부드럽고 조용하게 작동한다. 소리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손으로 눌렀을 때의 조작감이 우수하다. 고급차답다. 전체적으로 매우 고급스러운, 최상의 감성품질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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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 아래쪽에는 스마트폰 무선충전기가 배치됐다. 핸드폰을 갖다놓으면 바로 충전이 시작됐다. 시승하는 동안 핸드폰 배터리를 늘 100%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다. 약간의 발열 현상이 있었지만 무시해도 좋을 수준.

출발 전에 음성 명령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했다. “경기도”라는 소리를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성공했다. 음성으로 전화걸기는 무난하게 수행한다. 대체로 음성명령 인식 수준은 높지만 가끔은 엉뚱한 반응을 보여 답답할 때가 있다.

길이 4,990mm 휠베이스 3,010mm로 충분한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크기를 갖췄다. 센터터널은 제법 높다. 드라이브 샤프트가 뒤로 지나가야하는 구조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운데 자리는 성인이 앉기엔 높이의 압박이 있다. 유일하게 불편한 자리다.

뒷좌석에는 좌우로 2개의 개별 모니터가 배치됐다. 뒷좌석에서 다양한 기능을 직접 조작할 수 있다. 손가락에 착착 달라붙는 버튼 촉감이 인상적이다. 뒷좌석 승객을 위해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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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반발력을 가진 스티어링 휠은 2.5회전한다. 럭셔리 세단으로선 예민한 조향비다. 굴곡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 손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

몇 발짝이나 땠을까. 조용함이 예사스럽지 않다. 공교롭게도 G80을 만나기 전에 탄 차는 벤츠 E300 4매틱. 그 차와 견줘도 전혀 밀리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과속방지턱에서도 충격을 제대로 흡수해낸다. 적당히 살이 붙은 엉덩이가 충격을 줄여주는 느낌이다. 충격의 상당부분을 잘 거르고 있다.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 부주의 운전 경보 시스템, 스마트 후측방 경보시스템,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 주행조향 보조 시스템,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진동경고 스티어링 휠, 스마트 하이빔, 앞좌석 프리액티브 시트벨트 등을 포함하는 제네시스 스마트 센스 패키지는 3.8 파이니스트 트림엔 기본으로, 3.3 럭셔리 트림을 제외한 나머지 트림에선 250만 원짜리 옵션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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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밴스트 스마트 크루즈컨트롤과 조향보조 시스템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핸들과 가속페달에서 손과 발을 떼어도 스스로 움직인다. 낮은 속도에서도 크루즈컨트롤을 설정할 수 있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초기 설정값 30km/h에 맞출 수 있다. 완전 정지가 가능하고 이후 재출발할 때 버튼만 눌러도 다시 움직인다. 체증구간에서 매우 유용하다. 핸들에서 손을 뗀 채 3분이 지나면 핸들을 쥐라는 경고가 뜬다. 핸들을 다시 잡지 않으면 해제된다.

자율운전 상태가 대체로 정확하게 작동하지만 늘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한 차례 차선을 놓치고 이탈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은 이런 장치들이 아직은 운전 보조 시스템일 뿐 운전의 최종책임은 운전자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깨끗하게 잘 보인다. 굳이 계기판을 보지 않아도 주행에 필요한 주요 정보는 한 눈에 볼 수 있다. 운전자가 불필요한 시선을 줄여준다.

V6 3.8 GDI 람다2 엔진은 315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40.5kgm. 이 힘을 8단 자동변속기가 조율해낸다. 깊게 가속을 이어가면 rpm이 6,000-4,500 구간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적당히 기분 좋은 쇼크를 동반한 변속이 이어지며 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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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묵직한 느낌이 살아있다. 묵직함이 주는 적당한 무게감이 안락한 승차감을 만든다. 여기에 조용함이 더해져서 품위 있는 실내를 완성하고 있다. 재미없다 싶을 만큼 노면 잡소리를 잘 차단하고 있다. 시속 100km에서 1,600rpm에 차분하게 머문다. 안정적이다.

노멀 스포츠 에코. 3개의 주행모드가 있다. 각 모드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차의 반응이 조금씩 차이난다. 에코모드에선 차분해졌고 스포츠 모드에선 조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킥다운 버튼을 지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엔진 사운드가 듣기 좋게 살아난다. 찢어지는 소리를 내지르는 게 아니라 잘 튜닝된 사운드를 귀가 먼저 느낀다.

운전자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다. 모든 구간에서 실제 속도 보다 체감속도가 낮고 코너에서도 탁월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사륜구동의 힘이다. 코너에서 같은 조건의 두바퀴굴림차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돌아나간다. 타이어가 살짝 비명을 지를 정도로 코너를 돌아나가는데 그립을 잃지 않았다. 네바퀴가 도로에 짝짝 달라붙는다. 흔들림 없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기량의 전부를 다 쏟아서 코너를 공략해도 좋을 듯 하다. G80은 다 받아줄 준비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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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적인 속도에서 바람소리가 커지기는 하지만 스트레스를 주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잘 만져진 소리다. 스티어링 휠의 적당한 반발력을 통해 안정감, 신뢰감을 느낀다. 차와 교감하는 느낌이 살아난다. 조작하는 느낌이 좋다.

앞서 시승한 E300 4매틱에 못지않은 움직임이다. 제네시스가 선두그룹과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주행 소음 인테리어 디자인 등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질게 없다. 요즘 들어 더 강화되는 전자장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수입차들을 긴장 시킬만한 G80이다. 독일 프리미엄 세단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줘도 좋을 정도다. 계급장을 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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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계급장, 즉 브랜드다. 제네시스가 어떻게 감히 벤츠와 맞장을 뜨느냐는 지적은 적어도 브랜드 이미지 차원에선 맞는 얘기다. 벤츠, 혹은 BMW 만큼의 브랜드 파워가 제네시스엔 아직 없는 게 사실. 차만 잘 만든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게 ‘프리미엄’의 세계다. 제대로 만든 제품은 기본, 여기에 문화 역사 스토리 소비자에 대한 대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질 때 비로소 프리미엄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브랜드 파워가 생겨나는 것. 이제 기본은 갖췄다고 보인다. 절반은 해낸 셈이다.

시승차인 G80 3.8 파이니스트 모델 가격은 7,170만원. 사륜구동시스템인 H 트랙은 250만원을 더 주고 선택해야 한다. 가장 저렴한 기본 모델인 3.3 럭셔리는 4,81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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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무겁다. 그래서 연비가 나쁘다. G80 3.8 H 트랙의 공차중량은 2,035kg으로 2톤이 넘는다. 사륜구동 시스템을 비롯해 다양한 편의장비, 안전장비들이 총동원된 탓이다. 사륜구동 시스템의 특성상 동력전달 과정에서 동력 손실도 어느 정도 발생한다. 메이커가 밝히는 복합 연비는 8.6km/L로 5등급에 해당한다. 실제 주행연비는 이보다 조금 더 떨어졌다.
이제 제네시스도 다운사이징을 통한 효율의 극대화에 적극적으로 신경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높은 배기량을 앞세우는 모습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