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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뉴 무라노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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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로 거듭난 올 뉴 무라노가 지난 6월 국내 출시했다. 무라노는 2002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2008년 풀체인지를 거쳤고 다시 올해 3세대 모델로 진화했다. ‘움직이는 스위트 룸’을 컨셉으로 내세워 편안한 SUV를 지향하고 있다. SUV 지만 거친 오프로드보다는 고급스럽고 안락한 이동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판매가격은 5,490만원.

무라노. 언뜻 일본말처럼 들리는 이 이름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의 작은 섬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탈리아 말인 셈이다.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잘 생겼다. V자 형태로 구성된 라디에이터 그릴, 부메랑 형상을 한 LED 헤드램프가 앞모습을 개성 있게 완성했다. 선과 면이 살아있는 입체적인 옆모습도 멋있다. 측면 아랫부분 곡면이 품위 있고 우아한 모습을 완성하고 있다. 차창 테두리를 따라 배치된 반짝이는 크롬 라인은 D 필러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고 리어 램프로 빠지면서 지붕이 떠 있는 형상을 만든다. 차를 세워두고 몇 발짝 떨어져서 보면 참 멋있다.

3세대 무라노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춰 이전 세대 모델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2.5리터 수퍼 차저 엔진(233ps) 및 15kW(20ps) 전기모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 253마력의 힘을 확보했다. 복합연비는 11.1km/L로 이전 세대 모델 대비 약 35% 개선됐다고 닛산은 강조하고 있다.

닛산은 무라노에 저중력 시트를 적용했다. 탑승자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산 지지해 중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트를 만들었다는 게 닛산의 설명이다. 그 효과를 탑승객이 실질적으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몸이 시트에 잘 밀착된다는 느낌은 받는다. 저중력 시트는 2열까지 적용됐다.

6:4로 접을 수 있는 2열 시트는 운전석에서 버튼을 눌러서 우아하게 접고 펼 수 있다. 시트를 접으려 낑낑대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트렁크 도어도 리모트키로 여닫을 수 있다. 손가락 하나로 우아하게 차를 컨트롤하는 맛이 괜찮다.

계기판에는 7인치 컬러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실시간 연비, 에너지 흐름 등 다양한 주행 정보를 띄워준다. 센터페시아에도 터치패널 방식의 8인치 모니터가 올라와 있다.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은 생생한 사운드로 지루함을 덜어준다. 볼륨을 올리면 11개의 스피커를 통해 짱짱한 소리가 터져나온다. 음질이 수준 이상이다.

묵직하게 돌아가는 핸들은 정확하게 3회전한다. 길이 4,900mm 보다 부담스러운 건 1,900mm에 이르는 차폭이다. 좁은 길에서 좌우 회전을 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올 어라운드 뷰가 차의 사방을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필요한 부분만 베어내는 외과의사의 매스처럼, 화면을 보면서 아주 세밀하게 차를 다룰 수 있다. 차는 크지만 소형차 못지않게 정확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 좋았다. 올 어라운드 뷰가 없다면 좁은 공간에서 차를 움직이기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이동 물체 감지 시스템(Moving Object Detection)은 주차 시 차량 주변 360°에 움직이는 물체가 들어올 경우 경고음과 함께 물체가 감지된 영역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갑툭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

닛산은 음식점으로 치면 무단변속기 전문점이다. 무단변속기를 다양하게 조리해 밋밋한 맛에서부터 강렬한 맛까지 연출해 낸다. 무라노의 파워트레인 출력을 조율하는 것 역시 닛산의 자랑, X 트로닉 무단변속기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무단변속기 느낌이 사라지고 반응이 빠른 자동변속기처럼 반응한다. 6,000rpm을 넘기며 레드존에 바짝 다가선 뒤 시프트업이 일어나면 5,500rpm 근처로 짧게 떨어지고 다시 부지런히 rpm을 올린다. 변속 호흡이 짧다. 부지런히 따박따박 계단을 밟아 오르는 느낌이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무단변속기를 아주 재미있게 조율해 냈다. 무단변속기 전문점, 닛산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시속 100km으로 정속주행하면 rpm은 1,400에 아주 편안하게 머문다. 에너지 모니터링을 통해서 엔진과 타이어, 배터리 사이에 동력이 흐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동력의 흐름이 주행 상황에 따라 때로는 역류하기도 했고 아주 가끔 엔진 rpm이 0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엔진이 멈추는 것이다. 이 차가 하이브리드임을 실감하게 되는, 유일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다.

신형 무라노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차 이름에 이를 표시하진 않았다. ‘무라노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그냥 ‘무라노’다. 시승을 마치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이브리드임을 내세우기엔 배터리와 모터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 모델의 3.5리터 엔진을 2.5로 줄이고 수퍼차저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이용해 그 차이를 커버하는 개념으로 읽힌다.

하이브리드지만 스탑앤고 시스템은 없다. 차가 멈춰도 엔진은 멈추지 않고 공회전 상태를 유지한다. 주행 상태에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자 잠깐 엔진이 멈추는 경우는 있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고 배터리가 충분한 전력을 확보할 때 잠깐 확인할 수 있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주행보조 개념으로 작동하는 수준이다. 배터리로만 차를 움직이는 EV주행은 아주 잠깐씩만 볼 수 있다. EV 모드로 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준.

모터 출력을 포함해 전체 시스템 출력 253마력이 힘 있게 끌고 나가는 차체는 편안했다. 저속에서부터 극한적인 고속까지 여유 있는 힘을 즐길 수 있다. 터보차저를 장착해 쭉 뻗어나가는 힘을 접하게 된다. 힘의 질이 좋다. 권투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듯한 힘이다. 파워풀하지만 거칠지 않게 잘 조절된 섬세한 힘이다.

움직이는 스위트룸이라는 닛산의 설명에 대체로 동의한다. 다이내믹한 주행중에도 차체의 진동과 소음이 크지 않아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칼칼한 엔진 소리가 살아났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강한 힘과 부드러운 움직임이 균형점을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 단단한 하체와 더불어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이 뒷받침한 결과다.

인텔리전트 크루즈 컨트롤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닛산식 표현이다. 차간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며 정해진 속도 이내에서 달렸다. 장거리 운행에서는 물론 시내주행에서도 매우 편했다.

전방 충돌 예측 경고 시스템(PFCW, Predictive Forward Collision Warning), 전방 비상 브레이크(FEB, Forward Emergency Braking) 등이 있어 좀 더 안전한 주행을 기대할 수 있다. 명심할 것은 이런 장비들이 어디까지나 운전 보조장비라는 사실. 운전의 최종 책임은 아직 운전자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무라노엔 전쟁과 평화가 공존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가하면 때론 격렬하게 부딪힌다. SUV와 좀처럼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스위트룸’이라는 컨셉은 무라노에서 무척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널찍한 공간은 시종일관 평화로웠고, 여유와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무단변속기지만 적절한 변속감을 조화롭게 확보한 점도 돋보였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조화롭지 않았다. 어정쩡했다. 부조화다. 연비를 크게 개선하지도, EV 모드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 차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배터리 용량의 문제로 보인다. 배터리 용량을 좀 더 키워야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다. 닛산이 이 차의 배터리 제원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무라노에 하이브리드를 굳이 적용했는지는 의문이다.

5,490만원. 가격은 디자인처럼 매력적이다. 수입차 시장에서 5,000만 원대에 만날 수 있는 풀타임 4WD SUV는 흔치않다. 게다가 가솔린 엔진이다. 디젤 엔진이 주는 심리적 불편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넉넉한 공간에 고급스러운 실내, 그리고 여유 있는 힘을 차분하게 사용하는 SUV,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은 이 차의 가치를 높여주는 분명한 요소들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복합연비 11.1km/L.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전체 운행의 70~80% 정도를 고속도로에서 달려야 메이커가 발표한 연비에 맞출 수 있다. 시속 100km로 정속주행하면 14km/L, 120km 정속주행이면 12~13km/L까지도 연비가 좋아지지만 시내 주행 구간이 많다면 연비는 확 떨어진다. 연비만 놓고 본다면 하이브리드자동차라고 하기 힘든 수준이다.
차에서 내려 리모트키로 도어를 잠그면 “삑”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도어가 잘 잠겼다는 의미다. 그 소리가 제법 크고 날카로워 거슬린다. 조용한 심야에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 이웃에 미안할 정도의 소리다. 아무 이상 없이 잠겼다면 소리를 내지 않고, 뭔가 이상이 있을 때 이런 소리를 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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