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 현대차가 드디어 움직였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 된 지 3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시장을 관망하던 현대차가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꺼내 들었다. 이제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뜨거워질 것으로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다.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3월 제주에서였다. 국제전기차엑스포에서 공개된 이 차를 현지에서 잠깐 시승한 데 이어 서울에서 지난 15일 다시 만났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하이브리드 모델과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막혀있고, 범퍼 아랫부분에 브론즈 라인을 살짝 덧댔다. 브론즈 라인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특징으로 실내에도 구석구석 포인트처럼 자리하고 있다. 충전구는 차체 좌측에 앞 뒤로 두 곳에 마련됐다. 앞은 완속충전구, 뒤는 급속충전구다.
길이 4,470mm, 너비 1,820mm, 높이 1,450mm다. 4,540×1,760×1,470mm인 토요타 프리우스와 비교할만한 사이즈다. 아이오닉이 조금 짧고, 넓고, 낮다.
아이오닉은 친환경차 전용 플랫폼으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플랫폼을 공유한다. 구조가 다른 차를 친환경차 플랫폼으로 묶어낸 것. 즉,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아닌 셈이다.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전용이고, 닛산 리프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이들과 달리 현대차가 아직은 폭넓게 친환경차의 방향을 잡고 있음을 말해주는 플랫폼이라 해석해본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결국 배터리 용량이 주행 가능거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배터리 용량은 28kwh로 국내 시판중인 전기차중 가장 우수하다. 배터리를 완충하면 191km를 달릴 수 있다고 현대차는 밝히고 있다.
당초 현대차는 이차의 주행 가능거리를 169km로 발표했었다. 이를 191km까지 올린 것. 시승을 통해 느낀 바로는 이 조차 보수적으로 보인다.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에 에어컨을 켜고 막 밟아도 연비는 7km/kwh 정도를 기록했다. 이 차의 공인 복합연비 6.3km/kwh보다 우수한 수준이다. 한겨울의 맹추위가 아니라면 주행 가능거리 200km 이상을 기대해도 좋겠다. 전기차의 메카 제주도 한 바퀴 혹은, 서울에서 대전, 논산, 평창 정도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거리다.
또한 버튼을 누르면 근처의 충전소를 찾을 수 있다. 시승 도중 몇 차례 근처의 충전소를 확인해보니 짧게는 500m 이내, 멀어도 2km 안팎에 충전소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충전소는 많았다. 물론 그 충전소에 지금 다른 이용자가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찾아 갔다가 다른 차가 충전하는 동안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승코스는 여의도를 출발해 올림픽도로와 강남 도심, 강북강변도로를 지나 하남시까지로 구성됐다. 도심 체증구간과 자동차 전용도로가 골고루 섞인 코스.
모터 출력은 88kw로 120마력의 힘이다. 몸이 느끼는 힘은 120마력의 두 배쯤 된다. 저속에서 급가속할 때 특히 그랬다. 앞에서 확 잡아끄는 느낌이 스포츠카 저리가라다. 짧은 구간에서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가속감이 압권이다.
주행 모드는 에코, 노멀, 스포츠로 바꿀 수 있다. 에코에서는 느슨하고 여유 있는 운전을 할 수 있고, 스포츠모드에선 스포츠카와 동일한 수준의 차체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그 차이가 확연해 마음에 든다.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면 차체가 조금 가볍다는 느낌을 받는다. 불안한 흔들림이 시작되는 것. 일상주행 속도의 영역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달렸다.
공기저항 계수는 0.24로 바람소리조차 잡아낸다. 엔진소리가 사라지고, 바람소리조차 잦아드니 실내는 조용하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타이어가 구르는 소리. 실내가 조용해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게 함정이다.
회생제동 시스템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핸들에 달린 패들을 이용해 좀 더 강한 제동 혹은 조금 느슨한 제동으로 회생제동의 효율을 조절할 수 있다.
버릇처럼 변속레버를 찾아 오른 손을 뻗을 때마다 허전했다. 변속레버가 없어서다. 버튼을 눌러 변속하는 방식이다. 마우스처럼 생긴 곳에 손을 놓고 P, N, D, R 버튼을 누르는 식이다. 색다르다.
170만원을 주고 택하는 세이프티 패키지에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시스템(ASCC), 보행자 보호 기능이 포함된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주행조향보조시스템(LKAS) 등이 포함된다. LKAS는 차선을 읽으며 스스로 조향을 한다. 차선 중앙을 유지한다기보다는 좌우측으로 차선에 가까울 때마다 안쪽으로 방향을 잡아주는 방식이다. ASCC는 차간거리를 조절하며 잘 달렸지만 코너에서나 끼어드는 차가 있을 때에는 속도조절을 놓칠 때가 있었다.
세제혜택후 판매가격은 N 트림이 4,000만원, Q 트림은 4,300만원이다. 정부보조금 1,200만원은 최근 200만원을 더 추가해 1,400만원까지 올라갔다. 오비이락일까. 현대차가 움직이니 정부보조금이 조금 더 올라갔다. 지자체도 300만~80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 이를 제하면 1,800만~2,300만원 수준에서 이 차를 살 수 있다. 이 정도라면 한번쯤 욕심내볼만한 수준이다.
배터리는 10년 20만 km, 배터리 이외의 전기차 전용부품은 10년 16만km를 보증한다.
문제는 충전 인프라다. 전기차를 사도 내 집에서 충전할 수 없다면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홈충전기 원스톱 서비스에 나서는 이유다. 홈충전기 설치 과정을 컨설팅해주는 것. 한번쯤 문을 두르려보면 해결방법을 찾게 될지 모른다.
현대차는 또 하나의 유인책을 꺼냈다. 자사 고객에 대해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포스코 ICT와 협력해 공용시설에서의 충전요금을 무료로 하겠다는 것.
전기차를 사야할 이유는 많다. 하지만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시대가 바뀌는 도도한 흐름은 벌써 시작됐다는 것.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등장으로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또 하나의 전기차가 추가된 게 아니라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주력군의 출발인 셈이다. 시장은 벌써 60% 이상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기울고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디자인. 앞모습은 어설프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막아놓았는데 그 모습이 영 어색하다. 양산차가 아니라 아직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차 같다. 전기차라면 좀 더 세련되게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다듬어야 했다. 리어 윙이 룸미러의 후방 시야를 상하로 나눈다. 아마도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룸미러를 볼 때마다 아쉽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