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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열고 가속페달을 지그시 눌러 밟는다. 지축을 흔드는 숨소리, 도로 끝으로 빨려들어가는 무아지경. 잡념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차와 한 몸이 되는 순간. 행복했다.

911 라인업 중 그래도 얌전한 편이지만 피는 못 속인다. 새로 바뀐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다.

포르쉐의 진화가 유독 눈길을 끄는 건 변해야할 것과 지켜야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모델 체인지를 이유로 뜬금없는 모습을 내보이는 건 적어도 포르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체적인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디테일에 변화를 주고, 박서 엔진을 뒤에 배치하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그 성능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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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대향 엔진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고향집처럼 차의 뒤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엔진이 이번 변화의 핵이다. 배기량은 작아졌고 터보를 더했다. 힘은 더 세졌다. 다운사이징의 정석이다. 터보를 적용하면서 엔진 열관리는 더 세심하게 다뤄야할 문제가 됐다. 이를 위해 공기 유도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쳤다. 연소 공기는 리어 스포일러 앞부분에서 엔진룸으로 빨려 들어간다. 흡입된 공기는 엔진룸 하단의 터보차저와 인터쿨러를 거쳐 엔진으로 유입된다.

냉각수 온도가 낮으면 냉각펌프가 작동하지 않는 것도 열관리를 위한 방안이다. 비활성 상태의 펌프는 엔진 파워를 사용하지 않으며, 냉각수만 서서히 순환하게 된다. 펌프에 클러치를 추가해 상황에 따라 펌프 작동을 멈출 수 있게 한 것.

3.8 자연흡기 엔진이 3.0 트윈 터보로 교체됐다. 출력은 20마력을 더해 420마력의 힘을 낸다. 51kgm의 최대토크는 1,750rpm에서부터 5,000rpm까지 발휘된다. 엔진이 움직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낸다고 보면 된다.

많은 컨버터블들이 하드탑을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포르쉐는 여전히 소프트탑을 고집한다. 같은 형식의 쿠페가 있기 때문이다. 하드탑을 적용하면 쿠페와 다를 게 없어서다. 톱을 벗기는 데에는 약 17초 정도 걸린다.

오픈 톱 상태로 달리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고 머리가 휘날린다. 이때 필요한 게 윈드 리플렉터다. 뒤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잡아주는 일종의 바람막이다. 이를 올리면 실내가 훨씬 잔잔해진다. 안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멎고 머리도 날리지 않는다. 컨버터블에선 유용한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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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높이가 1,295mm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시트 포지션도 따라서 낮아져 달릴 때 속도감을 즐기기에 좋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를 적용해 차체 높이를 10mm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앞 차축에 유압식 차고 조절 시스템을 적용해 버튼을 누르면 5초 이내에 40mm가 높아진다. 주차장 경사면이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언더바디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준다. 충격 흡수 능력이 향상된 새 쇼크업소버는 차체를 더욱 정교하게 컨트롤한다.

눈여겨 봐야할 건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다. 이는 주행 조건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시속 50km 미만에서는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2.8도 움직인다. 시속 80km 이상에선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1.5도 방향을 튼다. 뒷 타이어를 2.8도 혹은 1.5도 가량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차는 차원 높은 조향감을 선보인다. 빠르고 민첩하게, 그리고 안정감 있게 방향을 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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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전 하는 핸들에는 동그란 스티어링 휠 모드 스위치가 있다. 이를 돌려 주행 모드를 선택하는 스위치다. 918 스파이더에서 이식된 기능으로 핸들을 쥔 채로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노멀, 인디비쥬얼,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모드가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포르쉐의 상품성을 갉아 먹었던 내비게이션은 완전히 바뀌었다. 해상도 높은 선명함은 기본이다. 한글이 적용됐고 7인치 터치스크린에 직접 손글씨로 입력할 수도 있다. 실시간 교통상황을 보여주는 건 물론이다.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다. 스마트폰 다루듯 사용하면 된다. 애플 카플레이가 적용돼 아이폰과도 연동할 수 있다. 젊은 취향을 저격하겠다는 의지다.

우렁찬 엔진 소리는 힘의 상징이다. 도로 위를 달릴 땐, 주변을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살아있는 사운드다. 골목길에선 자제해야 할 정도다.
가속을 이어가면 매우 특이한 소리가 들린다. 엔진 사운드가 폭발하듯 터지고 나서 마지막에 빗자루로 쓸어내는 듯한 소리로 마무리한다. 이 소리를 들어보려고 자꾸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 이색적인, 그리고 매력적인 사운드다.

911 Carrera S Cabriolet

탁 트인 직선로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면 총알과 레이스를 벌여도 좋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다. 속도가 높아져도 가속감은 여전히 살아있다. 즉각적인 가속감과 함께 직결감이 강한 변속감도 느껴진다. 7단 PDK는 7단에서 킥다운하면 3단까지도 떨어진다. 가속페달에 킥다운 버튼은 없다. 적당한 반발력을 보이며 바닥까지 한 번에 닿는다.

빨리 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문제는 완성도다. 빠른 속도에서도 운전자가 갖는 심리적 안정감은 전체적인 완성도가 좌우한다. 엔진 소리가 끝없이 올라오고 바람소리가 극한적으로 커지는 고속주행에서 불안하지 않다. 재미있고 즐겁다. 고속에서도 차체의 안정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차를 믿을 수 있게 해준다.

이 차를 신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제동장치, 브레이크다. 제동감이 매우 좋다. 제대로 잘 선다. 엔진 못지않게 고성능에 최적화된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앞에는 6피스톤 알루미늄 모노블록 브레이크 캘리퍼를 적용했다. 직경 350mm의 V 디스크다. 뒤에는 4피스톤 알루미늄 모노블록 브레이크 캘리퍼에 330mm V 디스크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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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가 앞에는 245/35ZR20, 뒤에는 305/30ZR20 피렐리 타이어를 장착했다. 구동바퀴인 뒤에 접지면이 더 넓은 타이어를 사용했다. 구동력은 물론 제동력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타이어다.

수동변속을 할 때 변속레버 방향이 이전과 바뀌었다. 엔진룸쪽으로 밀면 시프트다운, 뒷좌석쪽으로 당기면 시프트업이다. BMW가 이런 방식을 고집했는데 포르쉐가 이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코스팅 모드가 작동한다. 클러치가 개방되고 변속기는 중립이 되면서 엔진이 공회전 상태가 된다. 연비를 고려한 조치다.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지는 오토 스톱 기능도 있다. 엔진 스톱 상태에서 핸들을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

카브리올레인지라 조용함과는 거리가 있다. 지붕을 닫아도 조용하지 않다. 잡소리가 파고들고 엔진소리도 만만치 않게 들린다.
스포츠 플러스에선 오토스톱이 해제되고 차체가 좀 더 강해진다. 엔진은 훨씬 더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악착같이 rpm을 물고 올라가는 것도 인상적이다. 7,500rpm까지 아주 빠르게 올라가고 변속 뒤 5,500rpm까지 떨어지는 시간도 매우 빠르다. rpm 게이지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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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멀 모드로 오면 차가 착해진 느낌을 준다. 중대형 세단만큼의 승차감은 아니지만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내고 철이든 청년의 느낌. 하지만 순간적인 펀치를 내지르는 힘은 노멀 모드에서도 살아있다. 어떤 주행 모드에서도 스포츠카의 본성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몰아붙여도 피곤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운전자 의도 보다 조금 더 달려주는 느낌이다.

다중충돌방지시스템은 2차 충돌을 예방하는 장비다. 1차 추돌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0.6G 가량의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시속 10km까지 속도를 낮춰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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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온 차지만 우리말을 알아듣는다. 음성명령 버튼을 누르고 “주유소 검색” 하면 근처 주유소를 검색해 준다. 전화도 걸 수 있다. 한층 편해진 기능이다.

판매가격은 1,5010만원부터다. 연비는 9.3km/l이다.

카브리올레는 뒤통수에 꽂히는 타인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매연 가득한 도심에선 지붕 벗기가 두려운 게 사실이다. 탁 트인 바닷가에서, 혹은 와인딩이 이어지는 산길이 어울리겠다.

잘 달리고 잘 선다. 그리고 잘 돈다. 달리기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 않겠다는 포르쉐의 의지가 잘 담겨있는 스포츠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시트는 4개지만 2인승이다. 뒷좌석은 사람이 앉을 수 없는 공간. 법률에서 요구하는 시트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짐을 던져 놓거나 애완견을 위한 공간 정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공간의 협소함은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없다. 체증구간에서 더 아쉽다. 다리가 아플 정도다. 편의장비에 조금 인색한 건 아닌가 싶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