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엔 뭔가 다른 게 있다. 프랑스 사람의 자존심처럼, 남다른 고집을 차에 심어 놓았다. 남들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올려놓을 때, 푸조는 엉뚱하게 계기판을 올리고 핸들을 줄여버렸다. 아이콕핏의 탄생이다. 물론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고 본 모양이다.
큼직한 핸들과 핸들의 빈 틈 사이로 보이는 계기판에 익숙한 이들에게 장난감 같은 핸들, 그 위로 보이는 계기판은 신선한 쇼크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기능적이다. 푸조의 고집과 상상력의 결과다.
푸조 308GT를 만났다. 준중형급 해치백 308을 고성능으로 만들어 GT 배지를 붙인 차다. 고성능에 빨간 컬러는 거의 공식과도 같은 조합.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하단부에는 크롬으로 마무리해 포인트를 줬다. 고양이 발톱처럼 범퍼 양옆을 찢어놓은 곳은 공기 출입구다. 앞 타이어로 빨려 들어간 공기는 브레이크 냉각을 돕는다.
리어램프는 사자가 할퀸 형상으로 만들었다. 어두운 곳에서 브레이크등을 보면 꽤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308 GT 역시 앞서 얘기한 아이콕핏을 적용했다. 센터페시아도 운전석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운전자 중심의 배치다. 작은 핸들은 가로 직경이 351mm, 세로 직경은 329mm다. 핸들 아래쪽을 깎아 D컷으로 만든 탓이다. 핸들 안쪽 빈틈으로는 주먹 하나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착시를 부르는 rpm 게이지는 재미있다. 계기판 우측에 배치된 rpm 게이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늘이 이동한다. 일반적인 경우와 정반대다. 무심코 운전하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rpm 게이지가 오른쪽으로 눕는 것을 보고 “뭐지?”하고 놀랄 때가 있다. 어색함. 혹은 당혹스러움. 운전의 지루함을 깨는 푸조의 익살이다.
알칸테라 가죽을 사용한 시트는 몸과 밀착된다. 버킷 타입 시트로 옆구리까지도 지지해준다. 시트 가운데 부분은 스웨이드 가죽을 사용해 몸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시트에 송풍 기능이 있으면 더 좋겠다. 한여름에는 밀착된 시트가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센터페시아에는 푸조의 미니멀리즘이 극단적으로 구현됐다. 가장 심플한 센터페시아가 아닐까 싶다. 터치방식으로 작동하는 9.7인치 모니터 말고는 이렇다 할 장치나 버튼이 없다. CD 플레이어 아래에 있는 5개의 버튼이 전부다. 공조장치는 물론 오디오, 차량 기능 설정, 내비게이션, 트립미터까지 거의 대부분의 기능이 9.7인치 모니터를 통해 구현된다.
키가 작다. 차 높이는 1,460mm. 차 옆에 서면 어깨 아래로 지붕이 위치한다. 시트 포지션도, 무게중심도 따라서 내려간다. 잘 달리기 위한 체격을 가진 셈이다. 어딘가를 달리다 경치가 좋은 곳에선 해치를 열고 차에 걸터앉기도 좋다. 왜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 걸터앉아 자연 속에 녹아들어 사색에 잠기기에도 어울린다.
2.0 디젤엔진은 180마력 40.8kg의 힘을 낸다. SCR(선택적 환원촉매 시스템)을 적용해 유로 6 기준을 만족시키는 엔진이다. 일본 아이신이 공급하는 6단 자동변속기가 힘을 조율한다. 변속기는 부드럽게 엔진 파워를 다루다가 스포츠 모드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메이커가 발표한 복합연비는 14.3km/L. 고속주행을 포함해 편안하게 115km를 달린 시승 1일차 연비는 14.7km/L를 보였다. 비슷한 구간을 고속주행 위주로 달린 2일차 누적 연비는 13km/L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동을 걸면 디젤 엔진이 낮은 숨을 쉬기 시작한다. 타이어는 미쉐린이 공급한 225/40ZR18 사이즈다. 휠하우스를 꽉 채우는 타이어는 보기에도 노면 밀착감이 좋다. 어지간해서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급출발을 해도, 깊은 코너를 빠르게 공략해도 묵묵히 제 할 일만 할 뿐, 타이어는 말이 없었다.
노멀모드에선 노멀 해치백이다. 엔진 숨소리도, 차의 움직임도 잔잔하다. 시속 100km에서 겨우 1,500rpm을 살짝 웃돌 뿐이다. 낮은 rpm에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변속기의 효율 덕이다.
노면 잡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엔진소리, 타이어 구르는 소리 정도가 들리고 속도를 올리면 바람소리가 더해진다.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엔진 소리가 확 달라진다. 낮고 굵은, 맹수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다.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만들어낸, 가공된 소리지만 소리가 주는 자극은 제법 세다. 한 템포 올라가는 엔진 회전수는 차의 반응을 예민하게 끌어올린다. 툭 툭 가속페달을 치면 그 즉시 차체도 반응한다.
속도를 확 끌어 올렸다. 엔진 소리는 조금 더 커졌지만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아니다. 여전히 낮은 톤을 유지한다. 뭐랄까, 화가 나도 낮은 톤을 유지하는 큰 형님의 목소리처럼 어느 수준을 넘지 않는 사운드다. 재미있다.
잘 달렸다. 쭉 뻗은 도로에서는 빨려 들어가듯 달리는 맛도 느낄 수 있다. 4,255mm로 짧은 길이에 트렁크 리드가 없는 해치백이어서 고속에서 안정감이 떨어질 수 있는 체격인데 크게 불안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체감속도와 실제속도가 거의 일치했다. 달리는 만큼의 솔직한 속도감이다.
브레이크는 달리는 차체를 잘 다룬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흔들림 없이 속도제어가 된다.
엔진 스톱은 정확하게 이뤄진다. 이 상태에서 핸들을 돌려도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출발할 때 재시동은 아주 부드럽게 이뤄진다. 엔진 오토스톱 장치는 푸조가 가장 앞섰다는데 동의한다.
액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조금 어정쩡하다. 앞 차와의 차간 거리를 조절하며 달리기는 하는데 차간거리가 가까워지면 위험 경고음을 날리고, 계기판에 경고등을 띄운 뒤에 맥없이 크루즈 기능이 풀려버린다.
차간 거리도 시간으로 표시된다. 0.5초 1초, 1.5초, 2초 등으로 앞 차와의 거리를 시간으로 정하게 된다.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액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고성능 모델이기는 하지만 극한의 고성능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적당한 수준에서 고성능을 맛볼 수 있는 차다.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잠깐 달리고 싶을 때, 스포츠 모드로 달리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생활 속 고성능 해치백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판매가격은 4,145만원. 유러피언 고성능 해치백을 원하는 이에겐 참 좋은 가격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센터 콘솔 위로 덮개를 세워 팔걸이용으로 사용하게 했는데 억지스럽다. 덥게는 세워도 팔을 편하게 지지해주지 못한다. 팔을 걸친 상태에선 핸들을 쥘 수도 변속레버를 조절할 수도 없다. 그냥 쉬어야 한다. 이 부분은 푸조의 상상력이 조금 더 발휘되어야 할 것 같다.
둥근 레버를 열심히 돌려 시트 등받이를 조절하는 건 여전하다. 불편하다. 전동시트가 아닌 바에야 레버를 잡아당겨 한 번에 시트 각도를 조절하는 게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