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프레임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특히 선거에서 그렇다. 어떤 프레임을 만드느냐에 따라, 혹은 상대의 프레임에 말려드느냐 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프레임은 중요하다. 차대를 말하는 프레임이 아니다. 시장의 판세, 틀을 말하는 프레임이다. ‘연비’는 대표적인 프레임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연비 좋은 차냐 아니냐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차이난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을 휩쓸었던 디젤차의 강세는 따지고 보면 ‘연비 프레임’의 결과다. 지금은 힘을 잃었지만 ‘성능’ 역시 한때 시장의 중요한 프레임이었다.
경형, 소형, 준중형, 중형, 준대형, 대형, 초대형으로 구분되는 ‘차급(세그먼트)’이 있다. 또 하나의 프레임이다. 모든 차들이 이 기준에 맞춰 분류되고 각자의 차급에서 경쟁한다. 모닝은 스파크와, 쏘나타는 K5, 말리부와 세그먼트 안에서 경쟁한다. ‘차급’은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견고한 프레임이다.
르노삼성차가 이 같은 프레임에 반기를 들었다. SM6를 출시하면서다. 르노삼성차는 중형 세단 SM5를 대체할 후속모델로 개발된 SM6를 SM5 윗급으로 배치했다. SM6 출시로 단종이 예상됐던 SM5를 존속시키고 SM6로는 중형과 준대형 시장까지 커버하는 전략을 선보인 것이다. 쏘나타는 중형, 그랜저는 준대형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시장에 SM6는 중형이자 준대형인 모델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미다.
전통적인 시장의 세그먼트 구분을 허무는 파격이었다. 이는 “경쟁사가 짜놓은 구도가 아닌 우리만의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박동훈 사장의 의도적인 도발이기도 하다.
반응은 엇갈린다. SM6에 열광하는 이도 있고, SM6가 어떻게 준대형일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좋고 나쁨이 개인에 따라 갈린다. 분명한 건 SM6 구매자들이 그랜저와 K7까지도 비교 대상으로 고려한다는 사실이다. 파격이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 놀라운 일이다.
지난 3월 공식 출시한 SM6는 한 달간 6,751대를 판매했다. 르노삼성차의 기사회생을 뜻한다. 이 뿐 아니다. 이미 계약대수 2만대를 훌쩍 넘겨 안정적인 판매를 예고하고 있다. 수입차 고객중에서도 제법 많은 소비자들이 이 차를 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르노삼성차의 명운을 가를 SM6는 이로써 일단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르노삼성차가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기존 SM5는 867대가 팔렸다. 평소보다는 판매량이 떨어졌지만 SM6 출시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실적을 올린 것은 SM5에 대한 수요도 여전히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SM5의 롱런을 기대해볼만한 성적이다.
어쩌면 억지스럽고 무모하게도 보이는 르노삼성의 전략이 시장 안착에 성공한 것은 SM6의 성능과 상품성을 소비자들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SM6는 두 개의 가솔린 엔진과 하나의 LPG 엔진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1.6 TCe, 2.0 GDe, 2.0LPe 엔진이다. 놀라운 건 다운사이징의 정수를 보여주는 1.6 TCe 엔진. 불과 1,618cc의 배기량에 터보를 더해 190마력, 26.5kgm의 파워를 만들어낸다.
배기량이 훨씬 큰 2.0 GDe 엔진보다도 월등한 성능을 보이는 것. 2.0 GDe 엔진 역시 150마력, 20.6kgm로 만만치 않은 성능을 확보했다. 터보를 장착한 다운 사이징 엔진의 고성능 파워를 즐기고 싶다면 1.6 TCe,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출력을 원한다면 2.0 GDe를 택하면 된다.
풍부한 안전장비와 편의장비 역시 SM6의 성공 요인이다. 고급 편의장비들을 아낌없이 탑재해 차의 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긴급제동시스템,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 차선이탈 경보시스템, 사각지대 경보시스템, 오토매틱 하이빔, 헤드업 디스플레이, 매직 트렁크, 통풍 및 마사지 시트,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주차경보 시스템,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 매직 핸들, 오토 클로징 등을 택할 수 있게 했다.
세그먼트를 허무는 파격으로 르노삼성차는 프레임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절벽에서 한 걸음 멀어진 것일 뿐 이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면 위기는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르노삼성차가 판을 흔드는 또 다른 프레임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판을 흔들 줄 아는 탁월한 전략가의 활약을 한 번 더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