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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화환’은 사라졌지만 피카소는 시트로엥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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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기업 시트로엥은 어떻게 스페인의 거장 ‘피카소’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을까.

수많은 작품을 남긴 피카소지만 자동차에 그림을 그린 경우는 딱 한 차례다. 이야기는 60여 년 전인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뉴엘 메히도(Manuel Mejido). 멕시코 출신으로 파리에 거주하던 당시 22세의 기자였다. 피카소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언론과 거리를 두던 피카소를 신출내기 기자가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를 피해 망명 중이던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한때 ‘피카소’라는 이름이 금기였던 시절도 있었다.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었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을 뿐이었다.

어쨌든, 메히도 기자는 피카소의 정치적 성향에 착안해 자신을 스페인 공화당 관계자로 소개하고 인터뷰 약속을 받아낸다. 어려운 인터뷰를 성사시킨 것.

피카소를 만나러 가기 위해 마뉴엘 메히도는 친구의 차 시트로엥 DS를 빌려 타고 인터뷰를 나선다. 인터뷰를 끝낸 뒤 피카소는 직접 붓을 들고 차에 그림을 그렸다. 하얀색 꽃들과 나무 그리고 가족들을 피카소 특유의 화풍으로 그린 뒤 휠 아치에 사인까지 했다. 작품명 ‘평화의 화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자동차와 그림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메히도는 차를 빌린 친구에게 1,000달러를 주고 차를 산 뒤 6,000달러를 받고 파리의 한 갤러리에 팔아버린다.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훗날 밝힌 그의 증언이다. 가난한 기자는 작품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것. 그렇게 피카소의 그림이 그려진 시트로엥 DS는 헐값으로 팔려버렸다. 그 후로 피카소의 작품이 그려진 그 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소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림의 가치를 몰라보고 폐차되어 버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차와 함께 그림은 사라졌지만 ‘피카소’라는 이름은 시트로엥에 남는다. 시트로엥의 모기업인 PSA는 1998년 ‘피카소’라는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유족들로부터 사들였다. 유족 일부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피카소라는 이름은 최고급 제품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유족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친자식과 혼외 자녀, 그리고 그 손자들까지 얽힌 복잡한 가계를 일일이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략한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시트로엥은 이듬해인 1999년 ‘사라 피카소’ 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세상에 선보인다. 5도어 미니밴이었다. 사라 피카소는 2004년 페이스 리프트를 거치며 피카소2로 변경됐고 2007년 C4 피카소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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