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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명가를 자처하는 기아자동차가 그동안 빈자리였던 소형 SUV 자리에 니로를 투입했다. 엔진과 모터 두 개의 심장으로 무장한 하이브리드 차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발을 담그지 않았던 소형 SUV 시장에 기아차가 진입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 이상 그들만의 놀이터로 놔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바탕 회오리가 시작됐다.

단정한 디자인이다. 어느 한 곳 튀는 부분이 없다. 소형 SUV라면 튀는 디자인을 욕심낼 만도 한데 차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절제된 디자인에서 기아차의 자신감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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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정렬된 수많은 니로는 하나같이 무채색 계열이다. 스노 화이트, 실키 실버, 메탈 스트림, 오로라 블랙펄 등 흰색, 회색, 검정색뿐이다. 리치 에스프레소와 그레티 블루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짙은 갈색과 어두운 파란색으로 어둡게 묻히는 색깔이다. ‘소형’SUV라면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이 하나쯤 있어도 좋겠지만 밝은 컬러는 선택 리스트에 없다. 하얀색이 많이 팔리는 이유다. 전체 계약중 43.8%가 흰색이라고 기아차는 밝히고 있다.

4,355×1,805×1,545mm에 휠베이스 2,700mm의 크기다. 경쟁 모델들 보다 길고 넓다. 휠베이스도 가장 길다. 가장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앉아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뒷좌석이 제법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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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05마력짜리 1.6 GDi 엔진에 43.5 마력의 힘을 내는 영구자석형 전기모터를 사용하고 여기에 6단 DCT를 조합했다. 전체 시스템 출력은 141마력. 뒷좌석 시트 아래에는 1.56kWh 용량의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가 배치됐다.

운전석에 들어서는 순간 묵직한 도어가 느껴진다. 무겁게 닫히는 도어는 차의 고급스러움을 더해주는 감성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물론 무거움은 연비에 독이 된다. 도어는 니로에서 거의 유일하게 묵직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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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근육처럼 단단하게 보이는 스티어링휠은 2.7회전한다. 작은 차에 어울리는 예민한 조향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좌우측 후방 시야는 충분하다. 룸미러도 뒤를 잘 보여준다. 다만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붕과 2열 시트 등이 룸미러의 가장 자리에 걸린다.

출발이 다르다. 모터가 조용히 차를 이끈다. 엔진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EV 모드는 시속 120km 이하의 속도일 때 수시로 활성화된다. 에너지 모니터를 통해 EV가 활성화 되거나 배터리로 전력이 충전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만큼 돈 쓰러 주유소 갈 일이 멀어지는 셈이다.

70-80km/h 구간까지 속도를 올렸다. 실내는 아주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2단으로 켠 에어컨 바람소리가 잔잔하게 들릴 정도다. 너무 조용해서 들리는 소리다. 어쨌든 엔진소리가 빠진,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는 인상적이다.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처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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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모델은 최고급 트림인 니로 노블리스 트림에 풀옵션 모델이다. 225/45R18 사이즈의 미쉐린 타이어, 아이티 컨비니언스 패키지(휴대폰 무선충전시스템, 센터콘솔 내장형 USB 충전포트, 2열 220V 인버터), 드라이빙 세이프티 패키지(슈퍼 비전 클러스터, 긴급제동 보조시스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시스템, 후측방 경보시스템, 차선이탈 경보시스템), UVO 2.0 내비게이션 등이 옵션으로 추가됐다.

가격 체계는 복잡하다. 정부 지원금과 세제혜택이 있어 판매가격보다 최종 구매가격이 낮아진다. 하이브리드차의 매력이다. 노블리스 트림의 기본 판매가격은 2,845만원이지만 세제 혜택을 받은 뒤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2,721만원이 된다. 옵션은 제외된 가격이다. 가장 기본형 모델은 니로 럭셔리로 세제 혜택후 구매가격이 2,327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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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는 비슷한 옵션을 갖춘 동급의 티볼리보다 싸다고 강조한다. ‘동급’에 방점을 찍었다. 개별소비세, 취득세, 공채 매입 등을 감면받고 하이브리드 정부 보조금 100만원을 받으면 동급 티볼리보다 가격이 싸다는 주장이다. 쌍용차는 절대 가격을 말한다. 티볼리 디젤은 2,008만원부터, 가솔린은 1,606만원부터 시작한다. 1,600만원이면 티볼리를 살 수 있지만 그 돈으로 니로를 살 수는 없다는 것. 분명한 건 기아차가 ‘티볼리’라는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조준할 만큼 이 시장에서 티볼리의 입지가 탄탄하다는 사실이다.

니로에는 6단 DCT가 올라간다. 7단 DCT도 있지만 필드 테스트한 결과 7단보다 6단이 나았다는 설명이다. 무거운 7단 변속기 대신 좀 더 가벼운 6단 변속기로 최고의 효율을 끌어냈다는 얘기다.

크렐 오디오는 짱짱한 음질을 들려준다. 볼륨을 살짝 올리면 다른 잡소리들을 덮어버리며 음악만 들을 수 있다.

모니터를 통해 에너지 흐름을 보며 운전하는 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에서 가능한 일이다. 에코 드라이빙을 얼마나 잘하는지 에코레벨도 보여준다. 지난 30분 동안의 연비를 분 단위로 체크해주고 전기 모터 사용량도 보여준다. 운전습관을 교정하는데 좋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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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은 앞차와 차간거리를 조절하며 달린다. 가감속이 자연스럽다. 완전히 정지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차가 정지하기 직전에 스마트 크루즈시스템은 해제된다.

가속페달에 킥다운 버튼은 없다. 아무 저항 없이 가볍게 밟힌다. 변속레버를 왼쪽으로 옮기면 스포츠 모드가 된다. 힘 있는 반응 팽팽한 가속감을 만나게 된다.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느릿하고 둔한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빠른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하이브리드로 만들었다.

공차중량 1,465kg인 차체는 노면이 불규칙한 곳을 지날 때 묵직하게 누르고 달리는 게 아니라 통통 튀는 느낌을 준다. 경쾌하고 가볍다. 묵직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2명의 시승자가 같은 차로 왕복하며 시승했다. 갈 때에는 과속을 피하고 교통 흐름을 따라가며 달려 20.9km/L의 연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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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엔 연비를 무시하고 다이내믹한 주행을 이어갔다. 가감속을 자주했고 고속주행도 시도했다. 양평에서 광장동 워커힐호텔까지 50여 km를 달린 연비는 16.9km/L. 메이커가 밝힌 복합연비 17.1km/L에 육박한다. 이 정도라면 일반인들이 평범한 주행을 한다면 메이커 발표 복합 연비는 누구나 충분히 확인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는 의미다.

배터리로 달리는 구간이 의외로 길었다. 정속주행 구간에서 간간히 EV 모드가 실현됐고 가속후 발을 떼면 거의 어김없이 EV 모드가 활성화됐다. 엔진은 수시로 잠을 잔다. 수업 시간에 틈만 나면 자는 잠꾸러기 학생 닮았다. 때로는 과감히 속도를 올려 기름을 많이 써도 그 다음 EV 모드로 이어가며 어느 정도 연비를 보상할 수 있다.

코너에서의 느낌도 좋다. 가벼운 느낌이지만 컨트롤하기에 무리가 없다. 짧은 차여서 다루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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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SUV 시장에 하이브리드로 무장한 니로의 진입으로 상황은 복잡해졌다. 친환경에 가치를 두는 얼리 어댑터들을 중심으로 니로를 택할 가능성이 높겠다. 다만 소형 SUV는 아니지만 같은 하이브리드차인 아이오닉과의 경쟁도 피할 수는 없겠다.

하이브리드에 대한 어색함에 망설이는 이들은 여전히 가솔린과 디젤 엔진을 가진 기존 모델들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강한 토크감을 맛볼 수 있는 디젤, 경쾌한 가솔린 엔진 등 나름의 장점들을 가진 차들이다. 하지만 막연한 거부감, 어색함을 걷어내면 니로에서도 강한 힘을 충분히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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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ECO-DAS 시스템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연비운전 지원 시스템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면 진행 방향의 내비게이션 지도 정보를 미리 읽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시점을 계기판을 통해 알려줘 관성주행을 돕는 시스템이다. 주행하는 동안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목적지 설정, 에코 모드 등 작동조건을 맞추고 계기판을 계속 주시했지만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라는 안내등은 점등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모니터 테두리는 광택 소재를 넓게 사용했다. 터치 스크린 방식으로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어서 손때 묻을 염려가 크다. 먼지도 많이 타게 된다. 고급감도 떨어진다.

운전자의 오른쪽 무릎이 맞닿는 부분은 딱딱하다. 코너가 이어지는 굽이길에서는 센터 페시아에 무릎을 맞닿으면서 몸을 지지하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조금 부드러운 재질이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