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하순, 유채꽃이 막 피어나는 제주엔 봄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푸조 뉴 308SW를 만났다. 1.6 블루HDi 엔진을 얹은 알뤼르 트림이다.
정제된 디자인은 과장을 피하고 농익은 모습이다. 조금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이전 세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측면에서 보면 단정한 생김새가 와 닿는다. 50대 이상도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점잖은 모습이다.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4,585, 1,805, 1,470mm, 휠베이스는 2,730mm다. 공차중량은 1,425kg. 이 작지 않은 덩치에 이식된 심장은 1.6리터 디젤 엔진이다. 유로6 기준에 맞춘 ‘블루HDi’ 엔진이다. 미세 먼지를 99.9%까지 걸러주고 줍니다. 이전 엔진에 비해 질소산화물(NOx)을 90%까지 줄였다고 푸조측은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PSA 그룹이 6,000억 유로를 투자해 만든 EMP2(Efficient Modular Platform2) 플랫폼. 이를 사용해 308 SW는 140kg을 감량하고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뭔가 다르다. i 콕핏이다. 핸들은 작게 만들어 조금 아래로 계기판은 핸들 위로 올려 배치했다. 핸들은 아래로 내리고 계기판은 위로 올려 운전자의 시선이 전방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계기판을 함께 볼 수 있다. 굳이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적용하지 않아도 그 효과를 보게 만든 것. 기존 틀에 구애받지 않는 발상의 전환, 혹은 상상력의 결과다.
또 하나의 키 워드가 있다. 미니멀리즘이다. 과감한 생략을 통한 심플한 구성이 돋보인다. 주어와 술어로만 구성된 문장을 닮았다. 9.7인치 모니터에 대부분의 기능을 다 몰아넣었다. 바깥에 남은 버튼은 오디오 전원, 비상등, 두 개의 열선, 도어 잠금, 외기 차단 버튼이 전부다. 덕분에 센터페시아가 허전할 만큼 심플하다. 비워냄으로 완성한 탁월한 인테리어다.
출발하며 무심코 방향지시등을 작동하자 “따그닥 따그닥” 경쾌한 2박자 리듬의 말발굽 소리가 난다. 기존 방향지시등 소리와 다른 리드미컬한 소리다. 사소한데서 재미를 찾게 된다.
308 해치백모델보다 190L가 더 넓은 660L의 트렁크 용량을 가졌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775L까지 넓어진다.
복합연비 16.2km/L로 1등급이다. 판매가격은 3,390만원. 매력적인 가격이다. 유러피언 디젤 왜건을 이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제안이다.
2.9회전하는 작은 스티어링 휠은 조작하는 재미가 크다. 경쾌하고 가벼울 뿐 아니라 반응도 즉각적이다. 조금 움직여도 크게 반응한다.
노멀 모드에서 편안하게 움직이던 차체는 스포츠모드를 택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계기판은 빨갛게 변하고 파워, 부스트 토크 그래프가 나온다. 엔진 사운드엔 정통 스포츠카의 힘이 담긴다. 사운드 제너레이터의 효과다. 엔진 자체의 소리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는 것. 고양이가 사자의 포효를 들려주니 어쨌든 효과는 만점이다. 초원의 왕이 되고 싶은 고양이랄까. 소리만으로도 스포츠 드라이빙의 재미를 만끽하게 된다.
물론 차체 반응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한다. 팽팽한 긴장감도 전해온다.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1,100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1.6리터 디젤엔진이 뿜어내는 힘은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30.6kgm. 6단자동변속기가 이 힘을 조율한다. 조금 부족한듯한 출력을 토크가 보완해준다. 힘은 충분했다. 깊게 가속하면 가볍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고 탄력 있게 가속을 이어간다.
지치지 않고 잘 달렸다. 코너를 탈 때도 재미있다. 오르막 급코너를 기죽지 않고 빠르게 내닫는다. 스포츠 모드일 때 시속 100km에서 2,000rpm 정도를 보인다. rpm 게이지는 우측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회전해 넘어간다. 흔히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가는 일반적인 방식을 거부했다.
강한 힘은 아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버티며 필요한 힘을 기어이 뽑아내는 게 대견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솟아오르는 힘을 만나게 된다. 충분히 높은 속도까지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다이내믹한 운전도 잘 받아준다. 속도를 떨어뜨리면 다시 가속할 때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도 배기량 1.6 엔진으로선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반응이다.
속도를 좀 올리면 잔잔한 바람소리 정도가 실내로 들어온다. 시끄럽지 않다. 디젤이지만 엔진은 조용하고 노면 잡소리도 잘 걸러낸다. 도로 상태가 좋은 이유도 크다. 브레이크 반응도 확실하다. 코너를 만날 때 급하게 속도를 줄여도 잘 따라준다. 브레이크가 그만큼 튼튼하다.
노멀모드로 돌아오면 엔진 소리에 힘이 쫙 빠진다. 착해진 소리다. 사자 소리를 내던 고양이가 원래 자기 소리를 낸다.
시야도 충분하다. 막힘이 없다. 전후방 시야가 확실한데 더해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를 통해 한라산의 풍경이 차 안으로 그대로 담긴다.
힘차게 달리다가 신호에 걸리면 차가 서면 엔진도 어김없이 꺼진다. 실내는 조용해진다. 3세대 스톱앤 고 시스템. 훨씬 더 진화된 기술이다. 시동 걸릴 때 느끼게 되는 불쾌한 진동은 적어도 이 차에선 사라졌다.
재미있는 왜건이다. 실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가하면 마음먹고 달리면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준다. 엔진의 힘을 잘 조율한다. 6단 변속기. MCP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불규칙한 변속반응은 더 이상 없다.
6단 AT는 엔진의 힘을 잘 조율해 낸다. 디젤이지만 차분해졌고 소음과 진동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덕분에 실내는 조용하고 승차감도 그만큼 더 좋아졌다.
공간은 넓고 1등급 연비에 착한 가격을 가졌다. 원할 때는 스포츠카 기분까지 마음껏 낼 수 있다. 기능적이고 합리적이다. 프랑스의 고집과 개성, 그리고 합리성을 잘 담아낸 차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시트는 어딘지 허전하다. 몸을 느슨하게 받쳐주는 정도에서 과격한 코너링에선 시트가 부담이 된다. 시트 등받이를 누이는 것 역시 시간이 걸린다. 동그란 로터리 버튼을 열심히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 칸 한 칸 넘어가는 게 성질 급한 사람은 속 터질 정도. 레버를 적용해 한 번에 넘어가는 게 나는 좋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