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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날 땐 작아보였던 그랜드 피카소가 시간이 갈수록 커 보인다. 석 달 가까이 타면서 여러 사람들이 차에 타고 내렸지만 좁다는 얘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작은 사이즈에 큰 공간이라는 설명은 거짓이 아니다.

그랜드 피카소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차다. 계기판이 대표적이다. 12인치 파노라믹 스크린을 계기판으로 만든 것. 센터 페시아 꼭대기에 만들어 놓은 이 스크린이 처음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적응과정을 거치니 아무 불편이 없다.

게다가 이 스크린 계기판은 민주적이다. 차의 정보를 탑승자 모두와 공유하기 때문이다. 계기판이 대시보드 한 가운데 있으니 차에 탄 사람 누구나 이를 볼 수 있다. 주행 정보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때문에 운전자 맘대로 속도를 내다가는 “빨리 달리지 마라”는 잔소리가 쏟아진다. 연료가 떨어진 걸 뒷사람이 먼저 보고 알려주기도 한다. 때로 듣기 싫은 잔소리지만 안전운전엔 큰 도움이 된다.

시원스럽게 배치된 계기판에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배경 사진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군대 간 아들의 사진이거나 혹은 가족사진을 넣어 계기판에 띄울 수 있는 것. 늘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화면의 절반을 사진으로 채우고도 모든 운행 정보는 적재적소로 재배치된다. 필요한 정보를 구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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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에는 7인치 터치패드가 있다. 손가락으로 터치해 조작하는 7인치 터치패드는 내비게이션, 오디오, 전화, 차량 세팅 등 대부분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룸미러 위에 따로 설치된 볼록 거울은 운전자가 한눈에 실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뒷좌석에 앉은 꼬맹이가 어디를 보는지, 무슨 장난을 치는지 척 보면 다 알 수 있다. 풍성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

방향지시등이 깜빡이는 소리도 바꿀 수 있다는 건 차를 타고나서 한 참 지나서야 알았다. 이것저것 만져보다 차량 설정을 통해 ‘깜빡 깜빡’하는 단조로운 소리를 ‘따가닥 따가닥’하는 경쾌한 2박자 리듬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생활의 발견인 셈.

얘기를 해준 것도 아닌데 뒷좌석 바닥에 신발을 넣어둘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었다. 쿵쿵 발을 디뎌보다 울리는 소리가 달라 열어보니 그런 공간이 있더라는 것. 작은 탄성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센터 콘솔은 그 넓은 공간이 매력적이지만 더욱 매력적인 건 아예 그 콘솔은 제거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콘솔 아래로 손을 넣고 딸깍 하고 버튼을 젖히면 콘솔을 제거할 수 있다. 꽉 차 있던 공간이 텅 빈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넓은 수납공간이 사라지면 실내에서 뒷좌석으로 걸어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워크 스루’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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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믹 윈드 스크린과 대형 글래스 루프는 앞선 시승기에서 언급했던 사항. 뛰어난 개방감은 탑승객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는데 충분하다.

2열에 배치된 3개의 시트는 각자의 필요와 신체 사이즈에 맞게 개별 조절할 수 있다. 좌석 위치를 앞뒤로 150mm 이동할 수 있고, 등받이를 뒤로 젖힐 수도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등받이 뒤로는 접이식 선반을 준비해 2열 승객들을 배려했다.

시트로엥 그랜드 피카소는 자동차의 성능을 탐하고 속도를 즐기는 이들에겐 그전 심심한 차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이동, 자동차를 통해 윤택한 삶을 살고 싶은 이들에겐 참 좋은 파트너가 된다. 허세를 버리고 실속을 챙긴 차다. 자동차 자체가 아니라 ‘차와 함께 하는 삶’ 즉 ‘사람과 생활’에 포커스를 둔, 그랜드 피카소는 그런 차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