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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다. 한 없이 부드럽다. 디젤차가 이래도 되는 걸까?

시트로엥 그랜드 피카소 1.6 석 달 타기. 이제 본격적인 성능을 논할 차례다.

막바지인 3개월 차에 접어들며 누적 주행거리는 2,600km에 달하고 있다. 시종일관한 부드러움은 이 차의 가장 큰 주행특성이다. 디젤엔진차라고는 믿기 힘든 극한의 부드러움이 지배한다.

배기량 1.6 리터의 준중형급 엔진으로 최고출력은 120마력이다. 최대토크는 30.6kgm. 조금 허약해 보이는 숫자들중 그나마 최대토크가 눈길을 잡는다. 배기량 1.6 리터 엔진을 7인승 미니밴에 올릴 생각은 누가 했을까. 다운사이징한 엔진이라고는 하지만 120마력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책상 앞에서의 숫자놀음으로 보면 그랬다.

PSA 그룹이 개발한 경량 플랫폼 EMP2를 적용한 C4 그랜드 피카소 1.6의 공차중량은 1,590kg, 배기량은 1,560cc다. 마력당 무게비는 13.25kg로 무거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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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을 조율하는 건 6단 자동변속기다. MCP가 아닌 게 다행. 주행하는 동안 수시로 허리가 흔들릴 만큼 꺼떡대게 만드는 MCP보다 6단 자동변속기는 훨씬 부드럽게 힘을 조율해낸다.

핸들을 잡으면 힘보다 먼저 다가오는 부드러움이 있다. 시동이 걸릴 때 디젤 특유의 엔진 소리가 살짝 들리지만 이어지는 움직임은 잔잔하다. 차가 설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시동이 꺼진다. 브레이크를 살짝 뗐다가 다시 밟으면 엔진도 리얼타임으로 살아났다가 죽는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무시로 드나든다.

재시동 걸릴 때가 감동적이다. 부드럽게 스르르 깨어난다. 스톱&고 시스템을 적용해 시판중인 국내외 자동차들중 가장 부드럽게 재시동이 걸린다.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해선 PSA가 가장 앞섰다고 할 수 있을만한 수준.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_주행 (5)

부드러운 엔진은 승차감도 부드럽게 만든다. 넓은 차창과 지붕을 유리로 덮은 파노라믹 루프를 통해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이 탑승객의 스트레스를 크게 낮춘다. 함께 차에 올랐던 많은 이들이 탁 트인 시야에 만족감을 표했다.

시속 60~100km, rpm 1,500부터 2,000까지의 구간에서 이 차는 빛난다. 봄 바람에 소풍가는 발걸음 마냥 사뿐사뿐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움직임을 이어간다. 이 차가 가장 돋보이는 구간. 실생활에서 가장 실용적인 구간이기도 하다. 실생활에 가장 적합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차라는 의미가 된다.

차체가 높아 흔들림이 클 수 있는데 서스펜션이 흔들림을 잘 잡아줬다. 부드러운 엔진이 불필요한 진동과 흔들림의 발생을 제어하는 효과를 냈고, 서스펜션이 도로에서 올라오는 흔들림을 잘 잡아준 효과라고 풀이해 본다. 넓은 공간도 체감 성능을 개선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앉은 자세부터 편해지기 때문이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_주행 (7)

가속은 중저속 구간과 고속구간에서 반응이 다르다. 100km/h 이하의 중저속 구간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급가속 상황에선 실제 이상으로 힘을 뽑아내려는 ‘용쓰는 힘’이지만 어쨌든 가속이 힘들지는 않았다.

고속 구간에선 한계가 드러난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가속은 더디다. 힘의 한계를 만나는 것. 고속에서도 차의 흔들림은 크지 않았다. 이 차 타고 고속주행을 즐길 일은 많지 않다. 쓰임새가 없는 구간에 굳이 좋은 성능을 만들어낼 이유는 없는 것.

성능에서도 시트로엥의 상상력을 본다. 작은 엔진, 넉넉지 않은 힘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상상력. 부드러움은 그 상상력의 산물이다. 작은 엔진이라는 약점을 억지로 커버하려면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힘이 왜곡돼 억지로 뽑아내는 형국에 이르면 차의 밸런스는 깨질 수밖에 없다.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_주행 (1)

시트로엥은 작은 엔진, 작은 힘을 받아들였다.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대신 부드러운 조율로 이를 극복해 냈다. 극복한 정도가 아니라 가장 돋보이는 장점 ‘부드러움’을 완성시켰다. 도저히 디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부드러움이 시종일관 이 차를 지배한다.

힘이 세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차가 될 수 있음을 이 차는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고속 구간에서 엔진은 어쩔 줄 모른다.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지만 속도가 높아질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소리는 저 앞에서 달려가고, 차는 한참 뒤에서 힘겹게 따라가는 형국이다. 힘의 부족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구간. 다행인 건 7인승 소형 미니밴인 이 차에 그런 성능은 사실 크게 필요 없다는 것. C4 그랜드 피카소에겐 굳이 고속성능까지 욕심낼 이유가 없다. 아쉬울 게 없는 성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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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