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 그랜드 피카소를 3개월간 시승한다. 차 하나를 온전히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 여유 있게 타보고 6회에 걸쳐 그 결과를 보고한다. 그 두 번째, 김기형 기자의 설 귀향 보고서다. <편집자>
다운사이징은 이제 흔한 일이다. 7인승 MPV(다목적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시트로엥의 7인승 그랜드 피카소에 2리터 디젤엔진에 이어 1.6 리터로 다운사이징 엔진이 적용됐다. 7인승 차에 1.6디젤 엔진이라 파워가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염려는 기우였다.
마침, 설 명절이라 고향의 부모님 집까지(약 250km거리) 그랜드 피카소와 함께 하였다. 이번 시승에서는 귀향길 주행연비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먼저 간단히 그랜드 피카소 엔진을 둘러보면, 고효율의 6단 EAT 변속기와 결합된 1.6 eHDi 디젤엔진(120마력, 30.6kg.m토크)은, 디젤엔진을 처음으로 장착한 PSA의 명성답게 부드럽고 빠르게 반응했다. 차량이 멈출 때 엔진이 꺼지는 오토 스탑 앤 스타트 기능이 인상적이다. 빠르고 부드럽게 시동을 건다. 게다가 조용하다. 한 템포 늦게 출발하거나 갑자기 들리는 큰 시동 소리에 놀랄 일은 없어보인다. 운전자가 거의 느끼기 힘들 정도로 반응이 부드럽다.
목적지는 전라북도의 장수 IC까지다. 강원도 만큼이나 산이 많은 지역이다. 자동차 연비 측정에는 가혹한 환경이다. 명절 당일, 7시 조금 넘어 아직은 어둑어둑한 중부고속도로에 올랐다. 주행구간은 중부고속도로를 거쳐서 남이분기점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날 때 까지만 해도 원할했던 도로가 10여분이 지나자마자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차를 다소 거세게 다루기도 했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를을 뛰어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니 뛰어서라도 넘어가고 싶었다…)
일죽부터 조금씩 풀어진 도로상황으로 인해 1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그 뒤부턴 정상적인 주행을 할 수가 있었다. 뒤에서 힘들어하는 아이 때문에라도 1분이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 시승하는 그랜드 피카소 1.6의 파워도 알아볼 겸 다소 거칠게 차량을 몰아붙였다. 출발전 계기판의 연료게이지에는 가득찬 상태에서 조금 연료가 소모된 상태였다. 대전에 이를때쯤 17km/L 연비를 넘어서 18km/L에 이르게 됐다. 대전부터는 다소 험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지속되는 구간의 연속이다. 이 구간은 무주, 진안, 장수로 이어지는 수많은 계곡과 산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터널구간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넓디넓은 윈드쉴드(앞유리창)를 통해 보여지는 주변의 높은 산과 절벽 그리고 하늘을 나는 듯하게 건설된 높은 해발의 고속도로는 눈을 맑고 시원하게 해준다. 1시간 정도의 지체가 있었지만 중간에 조금 속도를 내어서 2시 40여 분 만에 목적지인 장수IC에 도착하게 되었다. 연료게이지는 4칸 중 고작 1칸 정도를 소모했을 뿐이었다. 연비는 19.2 km/L였다. 고속연비는 정말 나를 놀라게 하였다. 1,100원정도의 경유라면 2만원 정도 소비한 것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연비를 측정하였다. 고향에서 친지를 만나고 병문안도 다니는 등 산악도로를 제법 많이 주행하였다. 귀경길에는 늘 신경이 예민해진다. 안 막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포기하고 부모님 집에서 밤 9시가 넘어서 길을 나섰다.
대전 부근에 이르자 경부고속도로와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만나서 또 다시 차량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건 완전 주차장이다. 가다 서다가 아니라 그냥 도로에 멈춰있기가 일쑤이다. 막히는 출퇴근 시간의 서울도심주행과 비슷하다. 가족들은 뒤에서 곯아떨어졌고 나 홀로 졸음과 싸우며 어둠을 헤쳐갔다.
일 년에 몇 차례 겪지만 막힌 도로주행은 늘 힘들다. 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돌아서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났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놀라운 연비였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연비, 23.8km/L였다. 자고서 이제야 일어난 아들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재잘되고 있지만, 내 머리속에는 여전히 놀라운 연비로 흥분될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높은 산악지대에서 내려오는 길이 많다보니 귀성길보다도 더 좋은 연비가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집에 들어가니 이미 새벽 1시가 훌쩍넘었고 바리바리 쌓아주신 엄마표 음식들을 집으로 옮기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힘든 야간 주행이었지만 다시 한번 조그마한 1.6 eHDi 디젤엔진에 놀랐다.
정리해보면, 성인 2명과 어린이 1명이 탑승하고 고향을 방문하여 어른들을 뵙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계기판의 연비정보는 왕복 650km의 주행에서 평균연비 20km/L임을 말하고 있었다. 메이커가 밝히는 공식 복합연비는 15.1 km/L, 고속연비는 16.7 km/L다.
연료게이지도 아직 한 칸이 남아있어서 한번 주유로 900km정도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연비운전이 아닌 일상의 운전에서 얻어진 결과이다. 다소 과속을 하기도 하였고 도로의 정체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도 하여서 얻어진 결과라 더 의미가 있다.
다시 한 번 푸조-시트로엥의 디젤엔진에 감탄하게 된다. 6단 자동변속기가 적극적으로 주행에 개입하여 변속을 고단화하여 좋은 연비를 끌어낸 것 같다. 사진에서도 보듯이, 110km/h 속도를 넘긴 상태에서도 엔진 RPM이 2천을 넘지않는다. 엔진 출력 역시 3명 탑승에 약간의 카메라 장비와 명절 선물 등을 실은 상태였지만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1.6 엔진이지만 힘은 충분했고, 연비는 기대 이상이었음을 실제로 확인한 설 귀향길이었다.
김기형 tnkfree@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