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를 의미한다. 더 높아진 기준, 새로운 기술, 브랜드의 철학을 적용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의 차를 통해 내일의 기준을 보여주는 게 플래그십 카다. 더구나 BMW의 플래그십이라면 말이다.
6세대 7시리즈가 국내 발표된 건 지난해 10월이다. 조금 늦었지만 750Li X 드라이브 프레스티지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7시리즈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77년이었다. 40년 동안 6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전자식 속도계, 전동식 윈도, 12기통 엔진, 제논 헤드라이트, 전자식 주차거리 컨트롤, 조수석 탑승 인식 시스템, 앞좌석 머리 에어백, 다이내믹 드라이브, 알루미늄 섀시, i드라이브와 커넥티드 드라이브, 헤드업 디스플레이,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시스템 등이 7시리즈를 통해 등장했다. 7 시리즈가 혁신의 모델인 증거들이다.
6세대 7시리즈는 카본 코어를 활용한 경량 설계, 5세대와 비교해 더욱 커진 외관, 터치 디스플레이와 제스처 콘트롤, 레이저 라이트 등의 신기술을 받아들였고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드라이빙 럭셔리’를 제시하고 있다.
LCD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BMW 디스플레이 키도 생소한 기술이다. 모든 트림에 기본 제공되는 이 키는 도어의 개폐여부와 주행 가능 거리, 차량의 이상 여부 등을 최대 300m 범위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타봐야 아는 법, 일단 시동을 걸고 달렸다. 출발할 때 안전띠가 몸을 꽉 조여 주는 부분은 일종의 포옹이다. 차와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감성적인 요소다.
운전석에 앉으면 일단 차분해진다.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큰차, 고급차일수록 그렇다. 촐싹거리며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고, 속도를 내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마구 달리는 운전을 스스로 제어하게 된다. 차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다. 이 차의 주인, 오너는 뒷좌석에 앉고 운전석에는 고용된 운전자가 앉는다. 뒷좌석 오너의 자리가 가장 중심인 차다. 달리는 즐거움보다 편안한 이동이 몇 배는 더 중요한 차다.
때마침 몰아친 강추위에 오그라진 몸을 시트에 올리고 시트 열선을 올렸다. 엉덩이는 물론 등까지 온기가 느껴진다. 몸이 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쾌적한 주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스티어링 휠에는 왼쪽에는 차선이탈 방지, 크루즈컨트롤, 차간거리 조절 등의 버튼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라디오, 오디오 조절버튼이 있다. 버튼을 조절하지 않아도 모션 제스처를 통해 오디오 볼륨 조절, 화면 넘김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손동작에 따라 차가 반응하는 마술쇼를 누구나 연출할 수 있다. 재미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자율주행에 좀 더 가깝게 진화했다. 교통 흐름에 따라 혼자 차선을 읽으며 움직인다. 핸들을 쥐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조향까지 한다. 이미 많은 차에 적용돼 있는 기술이지만 더 정교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완성도가 높다.
운전의 의미가 변하고 있음을 이 차는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드라이버가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작하는 운전이었다. 이제는 차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알아서 움직이면 드라이버는 이를 가만히 따라가는 운전이다. 결정적 오류가 있을 때에 개입하지만 그 전에는 차에 맡겨도 좋은, BMW 7 시리즈는 그런 차다. 차가 드라이버를 운전석에서 밀어내는 느낌이다.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플래그십 답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옆에서 사선으로 차가 끼어들 때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7시리즈는 이런 상황에서의 속도제어가 개선됐다. 인식 범위가 더 넓어졌고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다.
주행하는 모든 상황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알 수 있다. 현재속도 목표속도 앞차와의 거리 주행방향 등이 컬러로 표시된다.
핸들은 2.8회전한다. 3회전에 조금 못 미친다. 락투락 3회전이 조향과 승차감의 균형점이란 인식은 이미 깨지고 있다. 예민한 조향감은 승차감을 해친다는 명제도 이젠 과거완료형이다. 이젠 아니다. 핸들을 돌리면 5m에 가까운 큰 덩치가 날렵하게 반응을 하면서도 안정감이 최우선인 차의 거동은 흔들림이 없다. 5,238mm에 달하는 큰 보디가 더 없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7시리즈는 보기보다 유연했다. 훨씬 더 부드럽다.
가죽으로 감싼 핸들은 손에 꽉 차게 굵다. 모니터 계기판은 왼쪽에 속도계, 오른쪽에 타코미터. 레드존은 7,000 부터다. 모니터로 구성된 계기판은 가림창이 없다. 손을 대면 모니터 표면을 그냥 만질 수 있다.
차가 멈추면 엔진은 꺼지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시동이 걸린다. 홀드 모드를 이용하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시동 꺼짐을 유지하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 시동이 걸린다. 재시동이 부드러워 거부감이 없다.
4.2 리터 V8 엔진은 최고 450마력, 최대토크 66.3kgm의 힘을 낸다. 4.5초 만에 시속 100km를 주파한다. 시속 100km에서 1,400 rpm 정도로 아주 안정된 자세를 보인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지 않아도 일상 주행 영역에서는 필요한 속도를 여유 있게 만들어 낸다. 힘이 세서, 힘을 쓸 필요가 없다.
강한 엔진을 조율하는 건, 부드럽기 짝이 없는 8단 자동변속기다. 변속 순간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다. 물론 포커페이스다. 작정하고 가속페달 꾹, 깊게 밟으면 시트가 등을 미는 게 느껴질 만큼 순간적인 파워를 뽑아낸다. 변속기의 직결감과 함께 대단한 힘이 느껴진다. 에코프로 모드는 한 템포 늦게 반응한다. 운전 재미는 반감되고 뒷좌석 오너의 편안함은 배가된다. 컴포트 모드, 혹은 에코 프로모드가 스포츠 모드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시속 150km까지도 그다지 빠르다는 생각이 안든다. 그냥 편안히 움직일 뿐인데 함께 달리는 차들은 자꾸 뒤로 쳐진다. 조금 달린다 싶은 기분이 들어 속도계를 보면 그 이상의 속도다.
일반적인 중형, 대형 세단이 조금 불안함을 느낄 속도에서도 7시리즈는 비단길을 달리는 느낌이다. 안락함을 잃지 않는다. 억지로 힘 쓰지 않아도 부드럽고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사소한 충격은 상당부분 걸러준다. 차의 거동 때문에 불쾌함을 느낄 일은 없겠다. 고속에서도 중심을 딱 잡고 달리는 느낌 아주 좋다.
한계속도까지 빠르게 가속을 이어가지만 불안감은 크지 않다. 차의 거동도 아주 우수하다. 안정감, 고속주행감, 조용함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이런 부분들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이 차는 BMW의 플래그십 세단이니까.
엑스드라이브 사륜구동시스템은 고속에서 탁월한 안정감을 보이는 원천이다. 전자식주행안정장치(DSC)에 더해 x드라이브가 더해 탁월한 안정감과 접지력을 확보한다. 이는 코너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오버 혹은 언더 스티어링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주행상황에 따른 구동력 배분을 앞뒤로 조절해 안정적인 자세를 확보하는 것.
스포츠 모드에선 제대로 된 엔진 사운드를 만날 수 있다. 소리로 성능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잘 만져진 소리가 터져 나온다. 깊게 가속하면 rpm은 6,500을 터치하고 후퇴한다.
극한적인 고속구간에서 풍절음은 당연한 현상이다. 바람소리가 엔진 소리를 덮는다. 속도에 비해 엔진소리는 차분한 편.
오너 자리엔 ‘터치 커맨드’가 준비돼 있다. 차와 연결된 삼성전자의 7인치 태블릿 PC를 통해 시트조절, 에어컨 작동, 내비게이션 조작, 조명, 글래스 선루프 등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탈착이 가능하고 휴대할 수도 있다는 게 장점, 그러다 분실할 수 있다는 게 흠이다.
바우어스 앤 윌킨스 오디오 시스템이다. 간단한 MP3 파일로 재생하는 소리도 풍부한 음질을 보여준다. 제대로 된 음원을 사용하면 귀가 제대로 호강하겠다. 총 1,400와트 출력의 16개 스피커가 소리를 만든다. 오디오를 켜면 스피커의 간접 조명이 은은한 빛을 발한다. 소리를 눈으로 보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에 최고급 오디오는 자랑하는 것만큼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소음과 진동에 늘 노출된 상태에서 잡음 없는 최고급 오디오를 고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7시리즈의 오디오는 제법 귀를 호강시켜준다. 기본적으로 차가 조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내에서는 굳이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잘 들린다. 낮은 속도로 움직일 땐 차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실내를 연출한다. 엔진소리도 안 들릴 정도다. 실내의 정숙함은 차의 고급감을 말해주는 척도다. 7시리즈에선 최고 수준의 정숙함을 체험할 수 있다.
독일에서 만든 차지만 한글을 잘 알아듣고 인식한다. “블루투스”라고 말하면 핸드폰 블루투스 오디오가 작동하고, “96.3” 이라고 말하면 해당 주파수의 FM 라디오가 들린다. 주변이 시끄러울 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대체로 잘 알아듣고 지시대로 작동한다.
한글 인식은 조금 더 정확하다. 죠그셔틀을 돌리며 한글 자음과 모음을 왔다갔다 짜증나게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입력하는 대신 조그셔틀 위에 한글을 쓰면 신기하게 인식한다.
연비에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춘 차다. 일단 무겁다. 차체중량 2,155kg. 이것저것 좋다는 장비들을 넣다보니 2톤이 넘는 무게가 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카본 코어 차체를 사용해 이전 모델 대비 130kg을 줄였다. 성인 남녀 커플 무게가 빠진 셈이다. X드라이브 사륜구동 시스템도 연비에는 부담을 준다. 시스템 자체의 무게, 동력전달 과정에서의 손실 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연비는 어느 수준일까. 시승 전반부 100km 정도는 스포츠 모드 위주의 거친 드라이빙을 이어갔다. 고속구간과 정체구간, 국도, 심지어 정차 후 공회전까지 연비에 최악인 주행이었다. 계기판이 알려준 평균 연비는 5.2km/L다. 마구 달려도 이 정도 연비는 나온다고 보면 된다.
시승 후반부는 에코 프로모드로 80~100km/h 전후로 정속주행을 했다. 서울에 진입해서는 도심 체증구간도 지났다. 1시간 15분가량 달린 주행거리는 53km, 평균시속 44.2km를 기록했다. 연비는 10.2km/L. 메이커가 밝힌 이 차의 복합연비는 8.4km/L다. 잘 다루면 두 자리 수 연비가 불가능한 건 아님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연비가 중요한 차는 아니다. 2억 원에 육박하는 가격, 최고급을 지향하는 성격으로 볼 때 연비가 다소 나쁘더라도 완성도 성능 편안함 등이 값어치가 있다면 이 차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의 연비는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
7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 모델인 750Li x드라이브 프레스티지의 가격은 1억 9,200만원. 730d x드라이브는 1억 3,130만원, 730Ld x드라이브는 1억 4,160만원, 750Li x드라이브는 1억 8,990만원이다.
워낙 많은 기능들이 집약된 차여서 일일이 다 경험하고 소개하기 힘들다. 분명한 건 차의 모든 부분이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다. 점점 더 운전자의 영역이 좁아지고 차 스스로가 담당하는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를 지향하는 최첨단, 최고급 세단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오늘의 최고, 내일의 기준. 7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오종훈의 단도직입
조수석 시트를 접어서 뒷좌석을 풀 플랫 시키면 운전자의 시야를 가린다. 헤드레스트가 접히며 사이드미러를 일부 가린다. 오너의 편의도 중요하지만 차의 안전이 더 우선해야 한다. 차의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편리를 추구해야하는 데 편리함이 차의 안전을 침범하고 있다.
모션 제스처는 가끔 의도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사용자가 적응을 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동그라미를 그려도 오디오 볼륨이 올라가지 않는 등 약속된 손동작에 제때 반응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