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위기가 빚은 역작 SM6

웃고 있지만 비장했다. 권토중래, 절치부심, 눈물, 서러움 등의 단어가 그랬다. 르노삼성차 박동훈 부사장의 얘기다. 그의 말마따나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 차” 르노삼성 SM6가 드디어 심판대에 올랐다. 르노삼성차의 명운을 가를 존재다.

QM3가 르노삼성차의 오랜 추락을 멈추고 반전의 발판을 만들었다면 SM6에겐 비상의 날개를 펴야할 운명이 주어졌다. 성공할까? SM6를 내놓은 그들이 비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장함은 가격에도 스며있다. 가솔린 모델 기준 시작 가격이 2,420만원. 가격 발표가 있기 전, 기자는 2,500 만원을 하한선으로 봤다. 고급을 지향하는 최신형 중형차라면, 게다가 기존 SM5까지 고려한다면 그 정도가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예상은 깨졌다. 하한선을 더 내렸다. 막판 조율이 치열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만큼 절박했구나. 가격이 말하고 있다.

멋지다. 점잖다. 점잖은데 세련됐다. 튀면 죽는 게 중형세단의 세계. 음식으로 치자면 밥이다. 심심해야 한다. 하지만 맛이 살아 있어야 한다. 자극적인 향신료는 당연히 금물. 식탁의 중심이 밥인 것처럼, 전체 라인업의 중심인 중형 세단은 모나지 않은 무난함 안에 나만의 매력을 담아내야 한다. 중형차에선 욕심이 화를 부른다. 선을 넘고 싶은 욕심을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탈리스만, 즉 SM6는 전체 비례는 물론 구석구석 디테일까지 잘 다듬어 제대로 숙성시킨 모습이다. 강한 자신감이 그 안에 담겨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1,870mm의 넓은 어깨와 1,460mm의 낮은 높이에 길이는 4,850mm다. 라디에이터 그릴엔 르노 마크 대신 르노삼성의 ‘태풍’ 로고가 달렸다. 탈리스만은 프랑스 차지만 SM6는 한불합작, 혼혈이다. 두 혈통의 우수 인자만을 받아들인 강한 디자인이다.

인테리어는 중형차 최고 수준의 ‘고급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퀼트 시트가 압권이다. 마름모꼴 박음질과 나무장식을 넣은 대시보드도 눈에 확 들어온다. 언감생심, 중형차에선 만나기 어려운 인테리어다.

테슬라가 되고 싶었을까. 센터페시아에는 8.7인치 모니터를 큼지막하게 세로로 배치했다. S 링크가 구현되는 모니터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주행모드, 트립미터, 오디오 등 거의 모든 기능을 S 링크가 컨트롤한다. 차체가 낮아 머리 윗 공간이 빠듯하지만 좁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

시트는 넓다. 체격이 큰 사람도 여유 있게 받아준다. 그렇다고 헐겁진 않다. 코너를 감아돌 때 허리를 딱 지지해주는 느낌을 만나면 시트가 전혀 넓어 보이지 않는다. 시트의 안마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고 하지만 그 차이가 확연하지는 않다. 그냥 부드러운 자극이 지속적으로 전해오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서론이 길었다. 디자인 좋고 인테리어 고급이라도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면 자동차가 아니다. 자, 달려보자!

버튼을 눌렀다. 잠자던 엔진이 새끈 거리는 숨소리를 뱉어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르노삼성차가 겹친다. 다섯 가지 주행모드에 따라 다른 빛을 내는 앰비언트 라이팅은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효과도 크다.

1.6 TCe에 먼저 올랐다. 배기량 1.6리터 터보 엔진이다. 최고출력 190마력의 힘은 7.7초 만에 시속 100km를 주파한다. 부드럽지만 쭉 뻗는 가속감은 빠르게 한계 속도에 다다른다. 레드존인 6,000rpm을 넘기며 밀고 올라가는 느낌이 아주 상쾌하다. 흔들림도 잘 제어해 주행안정감도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3회전에 조금 못 미쳐 2.8 회전하는 핸들은 깔끔한 조향을 보인다. 용인 에버랜드 주변의 와인딩 코스를 아주 빠르게 달리는데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었다. 코너가 깔끔했다. 금호타이어의 245/40ZR 19 사이즈의 타이어, 적절한 강도로 세팅한 서스펜션에 더해 R-EPS의 효과가 크다. 랙기어에 모터를 배치한 R-EPS는 묵직한 조향감의 원천이다.

토션빔과 멀티 링크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만큼 험한 주행은 아니었지만 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은 훌륭했다. 코너에서도 매끄러운 가속이 가능했다. 구동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서스펜션이 부실하면 구동력을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

스포츠모드에선 엔진 사운드에 더해 실내 스피커를 통해 음향 효과가 더해진다. 조금 더 강하고 거친 소리여도 좋겠다. 고회전 영역에서도 소리는 부드러운 편이다.

패밀리카로 이 차를 타고 가끔 기분 내며 달리고 싶은 젊은 아빠라면 1.6TCe가 어울리겠다. 아이 픽업하러 쏜살같이 달려가서 아이를 태운 뒤에는 한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면이 가능하다.

2.0 GDe는 상대적으로 점잖은 편이다. 차의 반응도 안정감이 조금 더 빛을 발한다. 물론 킥다운을 걸며 힘을 쓸 때면 제법 빠르게 속도를 올리지만 1.6 터보에 비하면 더디다. 약간 살이 붙은 중년의 느낌이랄까. 운행하는 동안 전반적인 느낌이 그랬다. 부드럽게 조율된 안정감은 신뢰를 준다. 쏜살같이 달리기보다는 10분 먼저 출발해 아이를 기다려주는 여유 있는 아빠에 어울리겠다.

출시 전부터 말이 많았던 서스펜션 논란은 큰 의미 없다. 한편에선 토션빔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지만 르노삼성측은 이를 튜닝해 한국의 도로 상황에 최적화한 AM 서스펜션으로 완성시켰다고 설명한다. 분명한 건 SM6의 리어 서스펜션이 일반적인 토션빔 구조는 아니라는 것. 토션빔에 진폭 감응형 댐퍼, 액티브 댐핑 콘트롤 등이 더해졌다. 토션빔이어서 이 차의 구입을 포기한다면 함께 포기해야할 이 차의 매력이 너무 많다.

볼륨을 살짝 올려 음악을 들으면 짱짱한 음질에 놀란다. 8개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웅장하고 때로 섬세한 클래식 선율도, 경쾌하고 가벼운 팝송도 귀에 착 감긴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만큼 많은 기술과 편의장비들이 적용됐다. 풀 LED 헤드램프, 3D 풀 LED 테일램프, 19인치 휠, 초당 100회 최상의 조정 액티브 댐핑 컨트롤(ADC),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올 어라운드 파킹 센서, 스탑앤스타트 등이 기본 적용됐다.

메이커가 밝힌 복합연비는 19인치 타이어 기준으로 1.6 터보가 12.3km/L, 2.0이 12.0km/L다. 유가는 떨어지고 있다. 가솔린 차에겐 반가운 일이다.

느낌이 좋다. QM3가 2루타쯤 치고 나갔다면 이제 SM6의 홈런 한 방을 기대해도 좋겠다. 위기감이 빚은 역작이다.

사족. SM6의 유탄은 어디로 떨어질까. SM6는 쏘나타와 K5를 경쟁상대로 지목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말리부와 SM5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흥미진진한 싸움이 이제 시작된다. 중형차 시장에 몰아칠 SM6 태풍은 오는 3월 예고돼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방지장치는 아쉽다. 속도가 줄어들면 시속 30~40km 부근에서 ACC는 해제되어 버리고 속도 조절도 2km 단위로 이뤄진다. 차선이탈방지장치는 차선을 넘을 때 스피커를 통해 도로의 돌기를 넘을 때 나는 소리를 내는데 어색했다. 감성적이지 않았다.
주행모드를 조절하기 위해선 버튼을 두 번 눌러야 했다. 직관적으로 한 번에 조작하는데 익숙한 운전자에겐 어색하고 불편했다.
고급을 지향하는 차인데 앞 유리 창과 만나는 실내 지붕 끝이 떠있다. 고급차라면 눈에 안 보이는 이런 부분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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