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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이안 칼럼’이다.

무대에 오른 거장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름다운 고성능’ 재규어의 디자인을 이끄는 이안 칼럼이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뉴 XJ 신차발표회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13년 서울모터쇼에 이어 두 번째 방한이다.

무대에 오른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XJ를 비롯해 재규어의 디자인 전반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영국에서 1954년에 출생했으니 올해 나이 61세. 열정적이었다고 하기엔 조금 힘이 들어보였던 것은 오랜 비행 탓이라 했다. 게다가 영국과의 시차도 영향이 컸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렇지만 간간이 물을 마시며 진행한 프리젠테이션, 이어진 Q&A를 통해 그는 XJ를 비롯한 재규어는 물론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강한 애정을 충분히 드러내 보였다.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그의 통찰과 철학을 만난 시간을 옮겨본다.

그는 “재규어는 명확한 디자인을 갖췄다. 자동차 디자인은 흐르는 듯한 선을 유지해야 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 XJ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세단”이라고 말하며 “속도감 있는 옆 라인과 비율”을 강조했다.

인테리어에서는 소재의 질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운전자를 감싸는 분위기를 강조했다. 주요 기능을 사용하기 편하도록 심플하게 구성하면서도 뚜렷한 디테일을 갖춰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1970~80년대 재규어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브랜드였으나 2000년대 들어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은 혁신적이고 젊어졌다고 그는 진단했다. XJ는 패션 아이콘으로 통하는 유명 연예인들과 록스타, 영국 왕실 등이 선택한 차로 런던에서는 고급 리무진보다 XJ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언급할 때에는 강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안 칼럼은 XJ, F-타입 스포츠카, XE 세단 등을 가장 좋아하는 차로 꼽았다.

재규어는 전통을 강조하는 브랜드지만 여기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전통의 가치를 살려서 다시 재해석한다”는 게 이안 칼럼의 얘기다.

디자이너는 어딘가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모습을 창조해간다. 그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을까.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예술, 음악, 건축, 사진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는다. 왜 좋은지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명확한 나의 생각, 나의 방식이 생긴다. 흥미를 유발하는 익사이팅한 느낌을 포착해 영감으로 활용한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 “느낌을 받는 것이다. 카피가 아니다” 그는 후반부에도 다시 “카피가 아니다”라며 거듭 강조했다. ‘카피’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결국 “판단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디자이너는 판단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판단하고 섬세하게 조율하고 절제를 통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 자동차 디자인은 섬세하게 맞춰가는 작업이다. 양보가 아니라 최종 판단을 해야 한다. 국가마다 법규가 다른데 이런 외부 속성을 잘 활용하고 고민해 전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일찍부터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14살 때 직접 재규어 디자인 스케치를 재규어에 보내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제 그는 그를 닮은 어린 학생들로부터 똑 같은 질문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그의 대답은 어떨까?

“디자인이 하나의 기업을 살릴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그는 운을 뗐다. 그만큼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뜻밖에 그는 디자인과 더불어 수학과 엔지니어링을 강조했다.
“디자이너를 희망한다면 수학과 엔지니어링, 예술과 창의력 등을 균일하게 집중해야한다. 두 분야 모두 똑같이 가치가 있다. 모두 공부해야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에 따르면 수학을 못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엔지니어링을 모르는 자동차 디자이너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경쟁과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 이어졌다. “자동차 디자인학교를 가거나 산업디자인을 공부해서 잘한다면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이어지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경쟁이 심하다. 100명중에서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10% 남짓이다. 굉장히 잘해야 되고, 노력해야 한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전통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야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 XJ의 헤드라이트가 재규어의 전통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재규어의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4개의 헤드라이트는 62년 마크X에서 시작됐다는 것. 그 전에는 싱글 램프였다. 처음 적용된 4개의 헤드라이트를 보고 당시 그의 부친 친구는 “이건 재규어가 아니야”라고 했지만 이후 재규어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사족. 그를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중 한명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재규어의 디자인 르네상스를 이끄는 탁월한 디자이너임은 분명하지만 3대 디자이너가 누구누구를 얘기하는지는 모르겠다. 크리스 뱅글, 피터 슈라이어, 이안 칼럼, 월터드 실바 등을 언급하며 3대 디자이너라고 얘기하지만 숫자가 맞지 않는다. 크리스 뱅글은 BMW를 떠나 삼성전자에 잠시 머물렀다 떠났다. 현직이 아니다. 월터드 실바의 폭스바겐 디자인이 우수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 역시 지난해 연말에 은퇴했다.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언급되는 4명중 두 명은 업계를 떠난 셈이다. 3대 자동차 디자이너를 꼽는 건 이미 지나간 시대의 틀이다.

결국 3대 자동차 디자이너가 모두를 포함하면 4명이거나 혹은 현역으로 활동중인 2명 피터 슈라이어와 이안 칼럼이다. 이안 칼럼은 이날 “피터를 존경한다. 그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굳이 3대 디자이너를 찾을 필요는 없겠다. 분명한 건 이안 칼럼이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이 시대 자동차 디자인 거장이라는 사실이다. 재규어 라인업을 통해 알 수 있듯,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자동차들을 디자인한 그다. 다른 이름과 묶지 않아도, 그의 이름은 그 하나로 충분한 권위를 갖는다. 그의 이름은 ‘이안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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