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올 뉴 파일럿이 새 단장하고 우리 앞에 섰다. 풀 체인지를 거친 3세대 모델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었다.
빠다 냄새 풀씬 풍기는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일단 크다. 길이 4,955mm, 너비 1,995mm, 높이 1,775mm에 휠베이스 2,820mm에 이른다. 양키처럼 큰 덩치는 풀사이즈 SUV에 걸맞는 사이즈다. 메이드 인 USA 마크가 운전석쪽 B필러에 새겨져 있다. 혼다가 미국에서 만든 차다. 일본 브랜드인 혼다가 미국에서 만든 차를 한국에서 탄다. 이 차 안에 세계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된 모습으로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 측면에서 볼 때 풀사이즈 SUV의 위용이 제대로 드러난다. 20인치 휠, 역동적으로 배치한 라인 등이 포인트다. 크롬을 사용한 프런트 그릴, 날을 세운 보닛 라인이 눈길을 잡는다. 리어램프를 단정하게 배치하고 뒷범퍼 하단에는 크롬으로 포인트를 줬다.
실내는 여유롭다. 넉넉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혹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뒷좌석 바닥도 평평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도 충분한 공간을 마련했다. 게다가 트렁크에 숨겨진 시트를 들어 올리면 8인승이 된다. 3열 시트에 성인 셋이 앉을 수 있어 8인승이라고는 하지만 무리다. 3열 시트엔 둘이 앉으면 딱 좋다.
적재공간은 넉넉하다. 3열 시트를 접으면 1,325리터, 2열까지 접으면 2,376리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필요할 땐 화물차로 써도 좋을 만큼이다. 트렁크 공간은 통으로 넓게 쓰거나 혹은 가운데 칸막이를 써서 2층 구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운전석 옆의 센터 콘솔은 제법 깊다. 넓은 공간에 많은 것을 담아둘 수 있겠다.
계기판에는 4.2인치 멀티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가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8인치 디스플레이를 배치했다. 이 두 곳의 정보창을 통해 많은 정보들이 전해진다. 8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을 통해 오디오, 내비게이션, 차량 세팅 등을 통합 조정할 수 있다. 한글까지 지원한다.
일자형 변속레버 아래로는 인텔리전트 트랙션 매니지먼트 버튼이 있다. 풀타임 사륜구동을 다시 노면 상태에 맞춰 노멀, 눈길, 진흙길, 모랫길 등으로 구분해 운전할 수 있다. 운전자는 그냥 버튼을 누르고 선택하면 된다.
배기량 3.5리터의 가솔린 엔진이 어색한 시대다. 다운사이징이 유행처럼 번지며 “작은 엔진 큰 힘”을 외치고 있지만 혼다는 배기량을 줄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큰 배기량을 유지하며 좀 더 큰 힘을 만들어냈다고 자랑한다. 물 한 방울, 쌀 한 톨 알뜰살뜰 아끼는 자린고비 정신보다는, 넉넉히 쓰는 스타일이다. 물론 허투루 쓰는 건 아니다. 운전상황에 따라 일부 실린더를 잠재우는 VCM 기술을 적용해 연비를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CON 버튼을 누르면 연비 우선 모드로 달리게 된다. 이 상태에서도 충분히 힘을 느낄 수 있다. 연비는 8.9km/L.
V6 3.5리터 엔진을 조율하는 건 6단 자동변속기다. 콤팩트한 크기의 6단자동변속기는 부드럽게 엔진의 힘을 다룬다. 최고출력 284마력, 토크는 최대 36.2kgm까지 나온다. 공차중량 1,965kg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마력당 무게비 6.9kg 수준으로 매우 경쾌한 주행감을 기대할 수 있다. 마력당 무게비는 대게 시속 100km 주파 시간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7초 안팎으로 그 시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톤 무게를 가볍게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스티어링 휠은 3.1회전한다. 세바퀴를 조금 넘어가는 수준. 풀사이즈 SUV에 딱 좋은 조향비다. 조향은 만족스럽다. 토크 벡터링을 갖춘 사륜구동시스템에 핸들링 보조 시스템이 더해져 조향 반응이 빠르고 정확한 편이다. 덩치는 크지만 코너링은 깔끔하게 마무리해낸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800수준에 머문다. 안정적이다. 가속페달에 살짝 발을 얹어 달리면 발걸음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뿐거린다. 오른발에 힘을 좀 더 싣고 꾹 밟으면 공기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고, 다시 배기구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커진다. 그 소리에 맞춰 속도는 빠르게 상승한다. 고속주행을 어렵지 않게 체험할 수 있다.
큰 덩치가 공기를 밀고 나가는 가속감은 대단했다. 홈을 향해 질주는 주자처럼 눈치보지 않고 내달린다. 거침 없이, 힘 있게…
조금 소프트한 세팅이다.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노면에 따라 살짝 살짝 흔들린다. 조금 말랑거리는 느낌. 굳이 따지자면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가속페달에는 킥다운 버튼이 없어 아무 저항 없이 바닥까지 눌린다. 일자형 변속레버에는 L레인지와 더불어 D4 강제변속 버튼이 있다. 저속에서 강한 구동력이 필요할 땐 L 레인지, 고속주행중 추월가속을 시도하거나 높은 rpm으로 강한 힘을 쓸 땐 D4 버튼을 이용하면 된다. 패들시프트나 변속레버의 수동 변속 기능이 없어 이외의 수동변속은 불가능한 구조다. 적극적으로 운전을 즐기기보다는 필요할 때 적절히 차를 다룰 수 있는, 하지만 평소에는 차분하게 움직이는 이들에게 어울리겠다.
사륜구동을 갖춘 풀사이즈 SUV로 딱 좋은 컨셉이다. 파일럿을 타고 마구 달리면서 수시로 수동변속을 하는 건 정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겠다.
파일럿의 사륜구동시스템은 i-VTM4(지능형 전자식 구동력 배분시스템)으로 이름 붙였다. 앞뒤는 물론 좌우로 구동력을 배분을 원활하게 해주는 토크벡터링이 적용돼 코너에 강하다. 정속주행시에는 앞바퀴굴림으로 연비 개선을 노리고, 노면 상황에 따라 사륜구동으로 전환해 안정감 있는 주행성능을 확보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경험하기 힘든 부분이 안전성이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2015년 평가에서 전부문 최고등급을 받아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로 선정됐다니 최고의 안전성을 갖췄다는 주장은 믿어도 되겠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LKAS), 추돌경감 제동 시스템(CMBS), 차선이탈 경감 시스템(RDM) 등의 장치들이 주행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여준다. 고속도로에서는 자율주행에 버금가는 상태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때로 차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힘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크루즈 컨트롤 역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다가 속도가 40km/h 이하로 떨어지면 해제돼 버린다. 완전 정지까지 크루즈컨트롤이 유지되지 않는다. 2% 부족한 느낌이다.
레인워치는 혼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치다. 우측 사이드 미러 아래에 카메라를 달아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를 통해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기능이다.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자동으로 보이고, 별도로 마련된 버튼을 눌러도 보인다. 오른쪽 뒤에서 따라오는 차나 오토바이를 사각지대 없이 볼 수 있어 쓰임새가 크다.
판매가격 5,390만원.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춘 풀 사이즈 수입 SUV를 이 가격에 누릴 수 있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실속 있는 가장이라면 이 차, 파일럿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8인승? 3열에 셋을 태워야 가능한 얘긴데 3열에 성인 셋이 앉기는 어렵다. 그냥 편하게 7인승으로 얘기하는 게 낫겠다.
뒷범퍼 좌우 모서리 부분에 램프를 달았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범퍼는 가끔 살짝 부딪히기도 하는 부분인데 여기에 램프를 달아놓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가다.
센터페시아의 8인치 모니터를 통해서는 한글이 지원되지만 계기판에는 한글이 적용되지 않았다. 여전히 영어로 정보를 전한다. 한국 시장을 배려하는 노력이 아직은 조금 부족함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