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응답하라 1988’의 자동차들

20회를 작정하고 연재 중인 tvN의 ‘응답하라 1988′이 연일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고 있다. 우연히 이 연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80년대의 동네, 거리, 친구, 이런 저런 문화상들에 대해 TV화면을 통해 회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인데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게는 추억속 자동차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달리는 것을 잠깐씩이라도 볼 수 있는, 덤까지 제공한다.

■ 날렵한 제비 – 대우자동차 르망(LeMAN)
독일 OPEL의 카데트(Kaddet)를 베이스로 만든 자동차. 푹 꺼진 듯한 운전석과 앞쪽의 어우러짐이 좋았고 후진 시 기어의 Lock 장치를 당겨올려야하는 다소 생뚱맞은 조작법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고속에서 안정적이고 나름 잘 달릴 수 있는 모델로 “내가 무엇을 추월했다”, “맘 먹고 달리니 경찰차도 못쫒아오더라”라는 식의 자화자찬이 있었다. 포니 택시들이 거리에서 달리던 시절이었으니 최신식 디자인에, 전자제어식 고성능 르망은 그야말로 날렵한 제비같았을 것.

(출처 : http://en.autowp.ru/opel/kadett/e/77037/14905/pictures/184152/)

■ 굼뱅이가 따로없다. – 현대자동차 스텔라(STELLAR)
합작생산하던 FORD 코티나(Cortina)를 변형한 후륜구동형 모델. 넙적하고 각지고 대략은 큰 덩치에, 기억하는 바로는 체구에 걸맞지않는 1500cc SOHC 엔진이 달려 여러 명 타면 언제나 힘에 겨워했던 모델로 기억된다. 여기에 애프터-마켓에서 장착하는 에어컨까지 달아놓으면 길거리 굼벵이가 따로 없다. (이건 뭐… 달리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1993년 첫 직장 업무용차가 딱 그런 성능의 스텔라였다. 그래도 그때는 느린 속도가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다행.  영업용 택시로 많이 쓰였던 이 스텔라는 ‘소나타 2000’이라는 다소 엉뚱했던 페이스-리프트(별다른 것은 없다. 고급스럽게 보이라고 범퍼에 크롬 도금판 잔뜩 적용)를 거친 직후 단종되고 이후는 미쓰비시 Gallant 기반의 롱런모델 ‘소나타’가 중형라인을 주도하게 된다.

(사진출처 및 현대자동차 과거모델에 대한 다양한 정보 : http://kids.hyundai.com/)

 

■ 꺽는 메터가 달린 택시 – 현대자동차 포니(PONY)

현대자동차의 토대를 마련한 고 정주영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첫번째 본격 국산자동차. 이탈디자인의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택시로 쓸만큼 많이 팔린 모델. 택시를 타면 운전사(그때는 기사라는 말을 쓰지않았다)가 동그랗게 생긴 레버를 우측으로 젖히고 그때부터 기계적인 방법(속도계와 적산계를 구동하던, 변속기에 연결된 케이블을 사용)으로 계량이 진행되었다.

(포니2, 사진출처 및 현대자동차 과거모델에 대한 다양한 정보 : http://kids.hyundai.com/)

친구 아버님의 차, 검정색 마크 파이브(Mark V) 이후 평생 두 번째로 몰아본 자동차였고 흥분한 마음에 ‘사이드브레키’ 푸는 것을 잊고 달리다가 뭔가 타는 냄새가 나서 급히 내려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응팔’에서는 정봉이, 정팔이 아버지가 금성사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타고 다니던 자동차. 당시엔 포니 한 대만 갖고 있어도 동네 부자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정봉이가 산 복권에 벼락부자된 그 아버지는 동네부자가 맞겠고 내 친구의 아버지는 더 부자였던가보다.

■ 국민차였다면? – 기아자동차 프라이드(PRIDE)

FORD Festiva 설계도를 가지고 국내생산, 수출을 하게 된 경우. 신문 등 매체를 통해 전국적인 모델명 공모를 진행했는데 영등포에 사시는 30대 김OO이라는 여성이 당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험한 바로 전면부 공조장치는 볼트 4개 풀어낸 후 툭! 당기면 분리되고 캬브레이터 엔진이 달린 초기형 기본모델은 구조가 너무 간단해서 대책없이 막굴려도 고장날 것이 없었더라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무래도 작고 가볍다 싶은 800cc TiCO보다는 1300cc 60마력에 튼튼했던 프라이드(기본형)이 대한민국 국민차로서 딱 맞는 모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외수출 그리고 완벽히 동일한 ‘포드 페스티바’, 출처 : www.taringa.net)

기아자동차 모델이 궁금했던 십 년쯤 전, 대뜸 중고차매매상에 가서 20만원 짜리 빨간색 장축형 프라이드를 한 대 사서 몇 달간 신나게 몰고 다닌 적이 있다. 정비없이 상태불문으로. 엉망인 조건에서조차 아무생각없이 달리는 게 신기했다. 이제는… 거리에서 정말로 보기어려운 자동차, 정말 아쉬운 자동차가 되었고 다시금 똑같은 모델이 판매된다면 내 한걸음에 달려가 구입할 마음이.

■ 종이 회수권 그리고 시내버스
예전엔 분명히 팔힘이 센 안내양들이 있었는데… 88년도 그 즈음에도 어딘가엔 안내양이 일을 하고 있었을까? 기억하는 바로는 앞문을 열고 올라서면 곧바로 엔진커버가 있었으니 전면에 엔진이 배치되었다는 것이데 ‘응팔’의 시내버스는 엔진이 뒤쪽에 있다. 중간문은 있었으되 정팔이, 덕선이, 도룡뇽이 뒤쪽 높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차량 섭외의 한계일까? 엔진을 뒤쪽으로 배치하는 형태는 88년도가 아니라 90년대나 되어서였을 듯?

급하면 창문으로도 탑승할 수 있는 구조, 에어컨이 당연히 없으니 더운 여름에는 천정문, 창문이나 쪽문을 어떻게든 열어야 살 수 있는 구조였다. 회수권을 넣는 척하다가 슬쩍 다시 가져가거나 아예  열심히 그림을 그려 얼렁뚱땅 운전사에게 말을 걸며 집어 넣기도 했고 친구 사이에서는 회수권이 일종의 돈처럼 사용되었다. 회수권이 토큰이 되었다가 이제는 틱틱! 전자결재하는 세상이 되어 그런 재미를 느껴볼 기회가 없다. 더불어… 에어컨 기본탑재 때문에 시원해지기는 했으되 대신, “제발 달려라!” 그제야 반가운 바깥바람 들어오던 창문들이 영구히 닫혀버렸다.

 

박태수(motordicdase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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