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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6의 시대가 열렸다. 각 브랜드들이 유로 6 기준에 대응하는 디젤 엔진 모델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폭스바겐의 디젤엔진 사태가 끝없이 번지는 가운데 디젤 엔진 차를 출시하기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

디젤 사태와 관련해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메이커가 푸조다. 푸조의 어떤 차량에도 배출가스 테스트를 감지해 테스트 중에만 질소산화물(NOx) 등의 오염물 처리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실제 주행 조건에서는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나 장치가 장착돼 있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는 것. 모두가 눈치를 보는 가운데 본사가 직접 나서 책임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그런 푸조가 신형 508을 한국에 출시했다. 유로6 기준에 대응하는 신형 모델로 1.6과 2.0 디젤 엔진 두 종류다. 이중 1.6 모델을 타고 435km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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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508은 푸조의 플래그십카다. 라인업의 정상에 서 있는 모델. 그런데 겨우 1.6리터 엔진을 올렸다. 윗급이라고 해야 2.0 엔진이다. 푸조라는 브랜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찬란한 유럽 문명의 한 가운데 프랑스가 있고, 온갖 명품, 예술의 중심지가 파리이지만 정작 자동차는 소박하다. 시트로엥도 그렇고 르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자동차는 배기량 3.0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지극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강조한다. 둘이 모여야 성냥불을 켠다고 할 만큼 절약하고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독일이지만 자동차 부문에서는 다분히 호화롭고 고급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강한 것과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508은 그런 면을 잘 보여준다. 단정한 모습이다. 어느 한 부분에도 과함이 없다.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에서 오히려 힘을 느낀다. 주름을 살려 다린 듯 보닛 위에 날선 라인이 포인트.

시트는 품이 넉넉한 양복처럼 여유 있게 몸을 받아 준다. 긴장을 풀고 시트에 안긴다는 마음으로 몸을 맡기면 된다. 편하다. 그렇다고 몸이 놀지는 않는다. 코너에서 잘 지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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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센터 터널은 낮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정도. 제한된 뒷공간을 상대적으로 넓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센터페시아 상단의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7인치 풀 터치스크린이다. 작아 보이지만 운전 중에 지도를 보기에 충분한 크기다. 핸드폰 핫스팟을 이용해서 차에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오디오, 블루투스 등 차량 기능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순간연비, 누적연비, 평균속도 등 차량에 대한 모든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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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1.6 디젤 엔진을 얹었다. PSA그룹이 자랑하는 블루HDi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최고 출력 120마력, 최대 토크 30.6kg·m의 힘을 낸다. 메이커측이 발표한 복합연비는 14.2km/ℓ(도심 13.3km/ℓ, 고속 15.5km/ℓ)다. 서울서 무주를 왕복하는 구간에서 실제 체험연비는 16.3km/L. 수도권에서의 교통체증, 고속도로에서의 일부 과속을 포함한 고속주행, 국도 주행 등을 모두 거친 결과다. 평균속도는 75km/h. 과속을 줄이고 교통 정체구간을 피했다면 더 좋은 연비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우수한 연비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는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이다. 푸조의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은 재시동이 부드럽다. 보통 부드러운 게 아니라 놀랍도록 부드러운 수준. 디젤엔진이 다시 시동 걸리면서 터지는 엔진소리와 진동에 놀랄 일이 푸조에선 없다.

(Stop&Start System)까지 장착해 뛰어난 연료효율을 자랑한다. PSA 그룹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여주는 이 시스템은 정차 시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고 다시 움직이면 재시동을 걸어주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차 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연료와 CO2 배출이 없으며, 시내 주행 시 약 15% 의 연비 향상 효과와 평균 5g/km의 CO2 배출량 감소 효과를 보인다.

PSA그룹의 블루HDi엔진은 유로 6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system, 선택적 환원 촉매 시스템)에 DPF(Diesel Particulate Filter, 디젤 입자 필터) 기술을 조합해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90%까지 줄여주고 미세 입자 제거율을 99.9%까지 높였다고 푸조는 강조했다. 미립자 필터 앞쪽에 설치된 SCR 시스템은 모든 주행 조건에서 작동한다고 언급하는 건 폭스바겐의 거짓말을 의식한 말이다.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이 엄중한 시기에 자신 있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자신 있다는 얘기다.

미안하지만, 하는 얘기를 그대로 다 믿을 순 없다. 폭스바겐 사태의 진실규명이 되어가면서 자연히 밝혀질 내용들.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한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메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정도로 정리해두자.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하수상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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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이게 재미있다. 팡팡 터지는 넘치는 파워를 기대하기엔 무리인 1.6 엔진이다. 그런데 이 작은 녀석이 필요할 때 지그시 눌러 힘을 짜내면 “아쭈”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야무진 파워를 보인다. 물론 발진가속에서 본격적인 가속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은 필요하다.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기대이상의 힘과 속도를 보여준다.

박력? 2.0 엔진이라면 모를까, 1.6 엔진에선 기대하지 말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부드럽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치고 박고, 밀고 당기는 싸움은 이 차와 거리가 있다. 화낼 줄 모른다. 차분히 힘을 낼 뿐. 싸움을 피하는 프랑스 신사다.

조금 큼직한 핸들. 그 핸들엔 버튼이 아주 많다. 좌우로 7개씩 모두 14개의 버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능적으로 잘 모여 있어서 핸들을 쥔채로 버튼을 작동할 수 있다. 많지만 복잡하다는 생각은 안든다.

핸들 아래에 자리한 패들시프트는 핸들과 분리된 고정식이다. 왼쪽은 시프트 다운, 오른쪽은 시프트 업. 핸들을 돌린 상태에서도 정확히 위치를 알 수 있어 작동하기 쉽다. 변속레버를 이용해서도 수동 변속이 된다. 엔진룸쪽으로 밀면 시프트 다운, 뒷좌석 쪽으로 당기면 시프트 업이다. 일반적인 방향과는 다르다. BMW가 이런 방향으로 수동변속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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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배기량이 작은데도 시속 100km에서 약 1600~1700 rpm 정도를 마크 한다. 배기량을 보면 이 속도에서 적어도 2,000rpm 이상으로 가야하는데 힘을 잘 조율해주는 변속기 덕에 엔진이 무리 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푸조의 6단 자동변속기(EAT6)는 기어 변속이 빠르고 내부 마찰을 줄여 내구성을 강화했다고 푸조측은 소개했다. 수동변속으로 3단까지 내리면 rpm은 4,000까지 치솟는다.

킥다운을 하면 rpm이 치솟고 찬찬히 속도를 올려간다. 4500rpm을 터치하고 변속이 일어나면 3,500rpm까지 물러선다. 펑펑 터지는 힘은 아니지만 야무지게 속도를 올려간다.

푸조의 다른 모델들이 대부분 스페어 타이어를 싣지 않는데 이 차엔 스페어 타이어가 있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화 한통 하면 금방 서비스카가 달려오는 나라라 스페어 타이어 없어도 크게 불편함은 없겠지만 있다고 타박할 것도 아니다.

플래그십 세단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착한 가격은 푸조의 상징. 뉴 푸조 508은 3,960만원부터다. 시승차인 1.6 Lux는 4,290만원. 2.0 엔진을 얹은 모델은 4,690만원이다. 거품을 걷어낸 가격이라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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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모드는 스포츠와 노멀모드가 있다. 스포츠 모드에서 좀 더 탄력 있는 힘이 나오지만 신경써서 챙기지 않으면 그 차이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애매하다. 스포츠 모드가 좀 더 강했으면 좋겠다. 1.6 엔진에선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포르쉐를 닮고 싶었던 것일까. 시동버튼은 왼쪽에 자리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초를 다투며 시동을 걸고 달려야했던 포르쉐야 그럴 이유가 있겠지만 푸조에겐 그래야할 합당한 이유가 부족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