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것은 정체를 머금고 정체는 역사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브라힘 페레(Ibrahim Ferrer)를 주축으로 하는 쿠바 뮤지션들의 혼이 담긴 음원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그 음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다큐멘터리화 한 동명의 영화를 봤다. 그간 갖고 있던 CD 음반들은 익히 들어서 익숙했던 음악들을 담고 있어 그러려니 했는데 뒤늦게 영화를 보고 나니 “아! 이 음반들이 이런 곡절을 거쳐 탄생한 것이구나”하는 경악과 수 십 년의 시간 속에서 벌어진 쿠바 뮤지션들의 곡절 많은 삶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라는, 음악 이외의 값어치를 알게 되었다.
당초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1940년대 그러니까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득세를 하던 시절의 그렇고 그런 놀이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이브라힘 페레를 비롯한 몇 몇 뮤지션들이 값싼 음악적 노동을 제공했던 것. 그러다가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체 게바라,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이 진행되었고 이후 쿠바라는 나라는 철저히 폐쇄된 공간으로서 경제적, 문화적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당연히 가치를 잃은 뮤지션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1990년대 후반 어느날, 쿠바음악에 매료되었던 미국인 프로듀서 라이쿠더(Ry Cooder)는 음반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과거의 인물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 순간에도 늙은 이브라힘 페레는 구두딲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단다. 라이쿠더는 살아남은 뮤지션들을 어렵게 끌어모아 과거 그들이 연주하고 불렀던 노래들을 채집하였고 1998년 7월에는 뉴욕에서 성대한 기념공연까지 진행하였으며 700만 장 정도의 음반판매가 이루어지면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으로 표명되는 쿠바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게 된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삶과 음악이라는 단어 두 개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음반이자 영화. 이 콘텐츠는 너무 신선하다. 신선함은 카스트로가 부작위로 만들어 놓은 타임캡슐에서 과거의 것이 생생하게 튀어나와 내 앞에 있음이고 아프리카계 쿠바음악이 라틴음악을 포함하는 전 세계 음악에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깜짝 놀랄 만큼이라는 것. 완전히 묻혀 잊혀진 것들이 갑자기 살아나 움직인다면 그런 놀라움은 당연한 것 아닐지.
■ 새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카스트로가 만들어낸 영화 속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들은 1950년대 즈음의 미국 산 올드모델들. 덩치가 크고 낡았고 어찌 보면 움직이는 것조차 신기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다. 그런 차들이 깔끔한 도심을 달리고 있다면 미국 방송프로그램 ‘Counting Car’ 시청자들에게나 값어치가 있을 듯하다.
부조화가 호기심을 만들어내는데 일상의 낡음을 끼고 사는 천연덕스러운 쿠바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낡고 낡은 쿠바인들의 골목길에서는 지저분하게 수선된 구닥다리 자동차들은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역시나 ‘쿠바의 타임캡슐’이 있었기 때문이고 한때 정성들여 치장한 쿠바의 건물들과 도로와 어울려 자동차도 자연스럽게, 함께 늙어가고 있음이더라. 영화 속 얼핏 보이는 차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밖에는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늘 새것을 탐해야 하나? 쿠바인들의 음악이 독특한 것은 오늘의 어렵고 비참한 삶을 웃어넘길 수 있는 해학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 해석. 낡은 자동차와 낡은 도로, 주변환경들이 잘 어울림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될 듯하다. 즉, 가난해서 그렇다고 치부할 것은 아니고 음악에서처럼 그게 절대가난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의 여유가 있음이 맞겠다. 음악이건 자동차건 그들에게는 ‘붙잡혀 온 아프리카의 영혼’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박태수 <전 모토딕 발행인, 내 차 요모조모 돌보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