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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다. 하필 이때 골프라니. 폭스바겐 디젤 엔진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는 와중에 골프R을 시승했다. 대략 난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타면 써야하는 게 기록하는 놈, 기자의 의무. 디젤 엔진과 관련한 폭스바겐의 거짓말 실체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거짓말이 어디까지 번질지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탔으니 쓴다.

예쁘니 뭐니 디자인 가지고 칭찬하는 건 생략하자. 지금까지 봐 왔던 그 골프 모습에 이니셜 ‘R’을 추가해 뭔가 다른 분위기를 내는 건 짚고 간다. A 필러 끝에 틈새를 둬서 작은 창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시야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전히 튼튼한 C 필러는 믿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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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R. 폭스바겐 골프 라인업의 최고봉이다. 별도 브랜드로 떼어낸 건 아니지만 폭스바겐의 R은 브랜드 안에서 벤츠의 AMG, BMW의 M에 비길만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성능이 최고의 미덕인, 덕후들을 위한 차다.

직렬 4기통 가솔린 직분사 2.0 엔진에서 292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38.7kgm. 길이 4,255mm의 소형 해치백의 성능으로는 믿기 힘든 고성능을 실현한 차다.

핸들을 돌려보고 놀랐다. 채 두 바퀴가 안돈다. 1.9 회전. 이건 뭐지? 좀처럼 만나기 힘든 조향비. 놀랍다. 조금만 핸들을 돌려도 차의 머리가 돌아가는 각도가 크다. 와인딩 도로, 서킷에서 탄다면 아주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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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낮은 시트 포인트와 이로 인한 노면 밀착감이다. 시트포지션이 아주 낮다. 20mm 낮추고 버킷 시트를 적용해서 운전석 느낌이 노면에 달라붙는 느낌이 확 와 닿는다. 서스펜션은 하드하다. 노면 굴곡이 그대로 엉덩이로 전해진다. 편한 승차감은 아니다. 소프트하고 말랑한 편한 승차감을 원하는 이들에겐 피곤함만 안긴다. 특히 뒷좌석 승객의 불만이 컸다.

시트는 몸을 꽉 잡아준다. 딱 맞는 수트를 입은 느낌이다. 허리를 조여 주는 느낌도 좋다. 코너에서 몸의 안정감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길이 4255, 너비 1800, 높이 1450mm, 휠베이스 2640mm의 수치들을 지나 공차중량 1540kg까지 확인했다. 마력당 무게비 5.27kg. 메이커가 발표한 0-100km/h 도달 시간은 5.1초다.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을 지칭하는 말로 넓게 사용된다. 틀린 용어라는 지적이 있음을 알지만 의미 전달에 유효하기에 그냥 쓴다. 이보다 짧고 효과적으로 의미전달을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과 마력당 무게비는 비슷하게 수렴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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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승이지만 4인승으로 타는 게 마음 편하다. 뒷좌석 중앙을 센터터널이 좌우로 가르고 있어서다. 앞에도 둘, 뒤에도 둘이 타는 게 속편하다. 3명이 뒤에 타려면 마음 상한다.

듀얼 클러치 방식인 6단 DGS에 4모션 사륜구동시스템이 더해졌다.

가속 페달의 킥다운 버튼은 가볍게 밟힌다. 강한 저항이 아니다. 밟고 넘어서면 힘찬 가속감으로 이어진다.

짧은 해치백이다. 뒷부분 부담이 크지 않다. 게다가 4모션이어서 강하고 조금 더 거칠게 다뤄도 무리 없다.

시속 80km. 바람이 좀 부는 날씨다. 조용하다기보다 자글거리는 소리가 들어온다. 디젤 엔진이 하도 조용해서 가솔린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골프 R은 그 반대다. 조금 시끄러운 가솔린이어서 디젤이 아닌지 확인하게 된다. 조용하진 않다는 얘기다.

고속주행에 접어들면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미묘하게 들린다. 듣기 나쁘지 않지만 계속 듣기엔 신경 쓰인다. 하지만 고속주행을 계속해야 들리는 소리지, 간헐적으로 끊겼다 이어진다. 크게 신경 쓸 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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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m은 높다. 에코 모드 시속 100km에서 2200rpm을 마크한다. 레이스모드에선 같은 속도에서 3,000rpm으로 치솟는다. 고성능에 집착하는 모습을 rpm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4개의 주행모드, 노멀, 레이스, 에코, 개별모드가 있다. 개별모드에선 조향 엔진 코너링 라이트 냉난방 시스템을 취향에 맞게 일일이 세팅할 수 있다. 좋은데 정확하게 세팅하려면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알아서 해줘” 하는 이들에겐 하나하나 선택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런 이들은 개별모드는 무시하고 노멀, 레이스, 에코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브레이크의 능력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고성능이라면 제대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밟으면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속도를 제어한다.

핸들에 달린 음성인식 버튼을 눌러 “KBS”하고 명령했다. 라디오를 들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KBS 방송국을 목적지로 추천한다. 음성인식은 내비게이션 안에서만 먹힌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하겠지만 현대차의 음성인식 기능을 맛본 운전자라면 “쩝” 입맛을 다시게 된다.

첫발 떼는 순간 그 성격이 바로 드러난다. 아주 강하다. 하드한 서스펜션과 즉각적인 가속, 아주 예민한 핸들. 승차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오로지 고성능을 지향하는 차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BMW 미니의 초기모델이 이런 느낌이었다. ‘고카트 느낌’으로 표현되는 반응들이다. 즉각적인 핸들링 민감한 가속반응, 서스펜션이 없는 것 같은 승차감. 시간이 지나며 미니는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골프R이 다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미니보다 훨씬 더 고카트에 가까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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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명한 성격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호 불호를 갈리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하게 나뉜다. 나쁠 게 없다. 이차의 성격을 분명히 알리고 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이 차를 탔을 때 이 차의 즐거움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궁합 맞는 운전자라야 이 차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레이스 모드를 택하면 엔진 소리가 달라진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다. 반응도 훨씬 더 예민해진다. 레이스 모드를 거쳐 에코모드로 내려오면 엔진이 순해진다. 순간적으로 착해진다. 에코모드에서도 엔진스탑은 없다. 연료 효율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느낌이다.

계기판이 알려주는 연비는 리터당 5.0km 정도 수준이다. 가감속을 많이 했고 고속주행 위주로 달려서 연비가 좋을 리는 없다. 이 차의 성격을 제대로 즐기려면 연비에 얽매이면 안될 듯하다. 기름값은 좀 쓴다 생각하고 마음껏 즐기는 게 이 차를 타는 자세가 아닐까.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복합연비는 9.9km/L로 4등급이다.

없는 게 많다. 크루즈컨트롤이 없다. 엔진스톱도, 차선이탈방지장치도 없다. 운전은 운전자의 몫이고 그에 따르는 모든 즐거움과 책임은 운전자의 몫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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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면목은 고속주행에서 드러난다. 중저속에서 다소 거칠고 어정쩡한 반응들이 고속주행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감을 찾는다. 엔진도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좀 더 커지는 엔진 사운드는 듣기 좋은 울림을 남기고 차체의 움직임도 빠른 속도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찾아간다.

차체가 낮게 지면에 깔려 달리는 느낌이 고속에서 안정감을 준다. 속도는 빠른데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느낌이 묘하다. 고성능에 최적화된 차라는 걸 달려보면 알게 된다. 달려야 제 맛이다.

판매가격 5,190만원. 디젤엔진 파문 직격탄을 맞은 폭스바겐코리아는 전 차종 60개월 할부판매를 시행중이다. 가솔린 엔진이니 일단 디젤 엔진 문제에선 벗어나 있는 차다. 판매조건 좋을 때 구매하는 게 좋은 방법이기는 하겠다.

하지만 과연 가솔린 엔진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원표 상의 모든 숫자는 거짓이 없는가. 폭스바겐의 모든 언행을 의심해야 하는 시간이다. 폭스바겐의 거짓말이 부른 댓가다. 불신의 댓가는 혹독하고 크다. 사회적 혼란을 부르고 비용 지불도 크다. 폭스바겐이 야기한 불신이다. 폭스바겐이 하는 모든 얘기는 이제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폭스바겐이 부른 불신의 시대, 이제 신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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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고성능 차에 큰 스티어링 휠은 언밸런스다. 게다가 D컷 핸들이다. 고성능 소형 해치백에 올라간 D컷 스티어링휠이라면 작은 게 맞다. 어쩔 수 없이 큰 스티어링휠을 적용했다면 적어도 D컷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크게 만든 D컷 스티어링휠은 모순이다. 더 작았으면 훨씬 더 운전하는 즐거움이 크겠다. 고성능엔 작은 스티어링 휠이어야 제 맛이다.
내비게이션의 그래픽은 구리다. 보는데 지장 없지만 화려한 그래픽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3-4년 묵은 듯 한 화면이 아쉽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