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예사스럽지 않다. 명품이다.
탱탱하고 볼륨감이 넘치는,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엉덩이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곡선이 살아있는 탐스런 엉덩이를 그냥 보고만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다. 가만히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입 꼬리가 귀 끝에 걸린다.
뒤태는 뇌리에 남는다. 매혹적인 모습에 시선을 던지면 내 앞을 스쳐 지난 뒷모습이 보일 뿐이다.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뒤태를 보는 시간은 제법 길다. 앞모습은 잠깐, 뒷모습은 제법 오래도록 보게된다. 뒤태가 중요한 이유다.
엉덩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 차, 메르세데스 AMG-GT다.
AMG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서브 브랜드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면서 만든 차다. 족보를 따져보면 AMG가 자체 개발한 두 번째 차다. 첫 모델은 2010년 출시됐던 메르세데스 벤츠 SLS AMG였다. 벤츠 배지를 내리고 그 자리에 AMG 배지를 올린 이름으로는 첫 모델이다.
시승 모델은 최고급 모델인 메르세데스 AMG-GT 에디션1이다. 2억 1,620만 원짜리다.
한참동안 볼륨감 넘치는 뒤태만 바라보다 정신 차리면 비로소 긴 코, 도로에 착 달라붙는 낮은 자세, 불태워버릴 것 같은 빨간 컬러 등이 눈에 들어온다. 뒤태뿐 아니라 구석구석이 강렬한 인상을 가진, 예사스럽지 않은 차다.
기 싸움이다.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강렬한 기운을 이길 수 있어야 이 차의 오너가 될 수 있다. 차만큼 혹은 차보다 더 예사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주눅 들고, 기가 죽는다. 차를 이기지 못하는 거다. 기 싸움에서 AMG-GT를 이길 수 있는 자,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눈이 처음 이 차는 알아봤다면 그 뒤를 이어 귀가 AMG-GT를 알아듣는다. 소리도 다르다. 시동을 거는 순간,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주행 모드를 바꾸는 순간, 배기 플립을 바꾸는 순간, 매 순간 마다 거친 소리를 뱉어내며 존재를 과시한다. 소리는 주행 상태에 따라 다르다.
가속페달을 잠깐, 살짝 깊게 밟았을 뿐인데 몸이 시트에 파묻힌다. 시트가 몸을 보듬으며 밀고 나가는 어마어마한 괴력을 느낀다. 최고출력 510마력을 내는 건 V8 바이터보 4.0 엔진이다. 66.3kgm의 최대토크는 1750~4750rpm 구간에서 나온다.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 구간에서 최대토크가 나오는 셈이다.
엔진이 앞에, 변속기가 뒤에 있다. 전형적인 트랜스 액슬 방식이다. 차체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엔진과 변속기를 앞뒤로 떼어낸 것이다. 페라리 캘리포니아 등 하이엔드급 스포츠카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구조다.
만들기 복잡하지만 스포츠카의 완성도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
2억이 넘는 차라 실내가 아주 호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한다. 호화롭기는 하지만 공간이 넓지 않은데다 몸에 딱 맞는 시트는 불편하다. 아주 딱딱한 서스펜션은 말랑말랑한 승차감에 익숙한 몸을 사정없이 괴롭힌다.
운전석에 앉으면 동굴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깊숙하다. 도어패널과 윈도 끝이 만나는 숄더라인은 턱 밑에까지 치고 올라왔다. 몸이 파묻히는 느낌이다. 벙커 깊숙한 곳에서 적진을 지켜보는 비장한 표정을 짓게 된다. 폼은 나지만, 톨게이트에서 요금 지불할 때 불편하다.
수납공간이 부족한 불편함도 있다. 센터콘솔이 그나마 조금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도어 패널에는 그물 비슷한 칸막이가 얕게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건, 센터콘솔 안쪽에 시동키를 꽂아 시동을 걸 수 있는 이그니션 키 박스가 있다. 키가 뒤를 향하게 거꾸로 꽂아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엉거주춤, 자세가 안 나오는 묘한 곳에 자리한 키 박스다. 왜 여기에 만들어놨을까.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변속레버는 후진할 때 아니면 만질 일 없겠다. 패들 시프트를 쓰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7단 변속기는 빠르고 힘 있게 변속한다. 벤츠의 7단 DCT는 기어조합이 일반적이지 않다. 1, 2, 4, 5단과 후진이 한 조를 이루고 3,6,7단이 또 다른 한 조를 구성한다. 홀수 짝수로 조합을 이루는 다른 DCT와는 조금 다른 구조다.
주행모드는 버튼으로 조절할 수 있다.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레이스 모드 순으로 좀 더 긴장감 있고 다이내믹한 반응을 보인다. 컴포트 모드라고는 하지만 결코 컴포트 하지 않다. 일반 세단의 스포츠모드 이상의 반응이다. 차 자체가 기본적으로 하드코어를 지향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작정하고 밟으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자극적인 엔진 사운드가 귀를 때리지만 머릿속은 차분해지면서 방사선의 끝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세계를 만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속페달은 남는다. 킥다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대단하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7,000 rpm까지 치솟는다. 이후 5,500rpm까지 내어주면서 빠르게 변속이 일어난다.
최강 주행모드인 레이스 모드는 서킷주행에 최적화된 상태다. 따로 손볼 것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자동차 경주에 나서도 될 정도다. 시트포지션이 낮아 바닥에 달라붙어 달리는 느낌은 환상적이다. 바닥을 긁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제원표상 최고속도는 300km/h를 넘는다.
코가 아주 길다. 혹은 크다. 운전석에서 보면 엔진룸 끝이 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그 끝에 프런트 휠이 자리했다. 오버행도 거의 없다. 덕분에 아주 독특한 조향감각을 맛보게 된다. 앞바퀴가 돌고나서 그 다음 몸이 따라가는 것. 이런 독특한 조향감은 오랜만에 느껴본다. 1991년에 시승했던 쌍용 칼리스타가 그랬다. 엔진룸이 아주 길고 운전석은 뒷차축에 걸쳐지는 스타일이 AMG-GT와 아주 흡사한 구조였다.
밟게 되면 순식간에 속도를 높인다. 메이커가 밝힌 0-100km/h 가속시간은 3.8초다. 시승차에 계측장비를 달고 직접 0-100km/h 가속시간을 체크했다. 4.38초로 메이커 발표치보다 조금 늦었다. 하지만 날개를 펴면 날아오를 것 같은 엄청난 가속감을 체감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1.7초에 시속 20km를 통과하면서 가속감이 더 크게 살아나는 것을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실시해 제동거리와 시간도 구해봤다. 제동시간은 3.45초, 거리는 44.05m였다.
일반인이 운전해도 이 차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생활 속의 스포츠카라는 말이다. 도로에서 속도를 내다 앞차와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낸다. 하지만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지는 않는다. 차를 다루는 건 어디까지나 운전자 몫이라는 의미다.
이것저것 많이 싣고 여러 사람 태우는 차가 아니다. 가볍게 즐기며, 달리는 차다. 기능적인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연비 역시 마찬가지다. 연료게이지 바라보며 마음 졸이는 오너는 키 반납하고 내리는 게 낫다.
트립미터를 보면 4시간 19분 동안 153km를 달렸다. 평균 속도 35km/h, 연비는 4.8km/L다. 연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시원하게, 차가 날기 직전까지 즐겁게 달린 결과다. 공인연비는 7.6km/L다. 엔진 스톱 기능을 적용하는 등 효율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렇다고 이 차가 효율적인 차라고 할 수는 없다.
궁극의 즐거움을 위한 다른 많은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는 차, AMG-GT는 이처럼 분명한 성격을 가졌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무엇보다 문을 열고 타고 내리기가 많이 힘들다. 좁은 주차장이라면 문을 열고 몸을 비틀고, 발을 집어넣으면서 엉덩이를 낮춰야 한다. 자세 잘못 잡으면 슬림 핏의 바지가 찢어지기도 한다. 투도어인데다 차가 낮아 시트포지션이 따라서 낮아진 탓이다. 그렇다고 승하차 불편을 해소한다고 차를 높일 수는 없는 일,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불편이다.골프채로 차를 난타한 최근의 벤츠 사태는 최악이었다. 품질 자체의 문제와 고객대응, 위기관리 등에서 벤츠에 대한 신뢰를 한순간에 깎아먹는 일이었다. 폭스바겐 사태가 아니었다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아마 지금쯤 훨씬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 모른다. 이제 차분히 복기해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