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골프채를 들었고 문제는 놀랍도록 빠르게 해결됐다.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골프채를 만지작 거린다.
벤츠는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민폐를 끼쳤는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벤츠다. 그냥 멋있으라고 지어낸 말일 뿐 진실은 아니었다. 벤츠 중에서도 S 클래스였고, 그중 AMG 였다. 최고중의 최고이어야 할 그 차를 탄 소비자가 시동꺼짐 현상을 몇 차례나 겪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했던가. 그 소비자는 소비자원이나 법에 호소하기보다 골프채를 들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고, 엔진마다 담당 엔지니어가 있어 엔진에 손수 사인을 하다는,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메르세데스벤츠S63 AMG은 주인님의 골프채에 맞아 처참한 몰골로 부서졌다. 벤츠의 치욕이다.
18일, 보도에 따르면 골프채로 차를 박살낸 오너는 신차 교환을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공식 입장도 나왔다. 해당 고객과 최종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고객이 복구 비용 일부와 사용기간 동안의 일정 비용을 부담키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객은 신차교환 약속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비용부담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는 없다. 또한 벤츠측 공식 입장에 ‘신차 교환’이라는 내용은 없다. 뭔가 여전히 감추고 있는 것 같아 속 시원하지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원만히 합의를 보았다니 일단은 다행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이로써 시장에 아주 나쁜 신호를 주고 말았다. 시장은 이제 큰 혼란을 앞두게 됐다. 벤츠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걸 증명해 버렸다. 골프채를 휘두르니 문제가 해결됐다. 문제가 있는 차를 가진 오너들은 이제 한 두 차례 문제제기를 하다 성에 차지 않으면 골프채를 들고 전시장 앞 도로에 나올 확률이 아주 높아졌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더라고 그럴 유혹을 충분히 느끼게 만들었다. 법과 제도로서 더욱 폭넓게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문제를 덮기에 급급해 나쁜 선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악전고투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시동이 꺼지고, 브레이크가 안 듣고, 급출발하고, 에어백이 안 터지고 등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법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고 참고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아주 많다.
벤츠는 그들에게, 즉 법을 지키고 절차에 따르는 이들에게 큰 박탈감을 주고 말았다. “아, 나도 골프채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교롭게도 문제는 벤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현대차도 쉐보레도 폭스바겐도 아우디도 BMW도 이제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은 신차 교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엔진과 변속기,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 4대 주요 부품에 중대 결함이 발생해 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같은 부품에 2차례 혹은 1년에 4차례 이상 수리를 받은 경우 새 차로 교환해 준다는 기준이 있다. 소비자원이 그 업무를 담당한다. 시간이 걸리고 성가시고 귀찮지만 이처럼 분명한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업무가 처리되어야 한다. 벤츠는 그 소비자에게 이런 절차를 따르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댓가는 이제 자동차 업계 전체가 감당하게 생겼다.
한 변호사가 집단소송을 한다고 나선 모양이다. 시장의 혼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소송보다는 골프채 하나씩 들고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게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임을 벤츠가 증명해버렸다.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불량차, 결함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자동차가 공산품인 이상 불량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 이미 발생한, 소비자에게 건너간 불량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이제 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리콜을 좀 더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신차로 교환해주는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고 이 기준에 부합하는 차들은 메이커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교환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꾸 핑계를 대면서 교환해주기를 거부한다면 이번 사태처럼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호소하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팁. 놀랍게도 시장에는 이미 그 해결책이 나와 있었다. 결함차를 받았을 때 새 차로 교환해주는 보험상품이 출시돼 판매중인 것. “자꾸 말썽부리는 차, 안심카닷컴이 바꿔준다”는 제목으로 오토다이어리가 지난 6월 소개한 바 있다. 각 메이커에서는 반드시 참고해 볼 일이다. 일개 사업자가 신차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자동차 메이커가 이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신차교환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이 다행이다. 답은 시장에 있다.
오종훈 yes@auto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