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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몰고 온 재규어 XE의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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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왔다. 런던 템즈강을 배경으로 화려한 탄생 신고를 했던 그 차, 재규어 XE다.

8월 서울에서 신차발표회를 열었고 강릉에서 장장 일주일간 미디어 시승회를 치렀다. 이제 “공격 앞으로”를 외칠 일만 남았다. 시승을 위해 달려간 강릉에선 때마침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이 일행을 맞았다. 8월의 폭염을 한방에 몰아내버린 태풍 고니였다. 재규어 XE와 함께 폭풍을 뚫고 달렸다. 한국에서도 블록버스터급 데뷔다.

재규어 XE는 재규어의 라인업에 없던 신형 모델로 BMW 3시리즈를 정조준하고 있다. 동급 최강으로 꼽히는 BMW 3시리즈와 본격적인 경쟁구도를 만들어 시장을 주도해 나간다는 것. 기존 XF로부터 엔트리 모델의 자리를 넘겨받은 XE는 D 세그먼트에 포지셔닝한다.

재규어 XE는 가솔린 및 디젤 엔진을 탑재한 총 다섯 가지 세부 트림으로 출시된다. 퓨어 모델을 시작으로 프레스티지, 포트폴리오, R-스포트, XE S 등이다. 5개 트림으로 파상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2.0 디젤 엔진을 얹은 R 스포츠와 가솔린 엔진을 얹은 20t 프레스티지, 두 대를 탔다.

운전석에 앉으면 인테리어 개발자의 욕심을 만난다. 심하게 곡선을 준 대시보드는 운전자를 둥글게 감싸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도어 패널도 마치 층층이 베란다를 가진 3층 건물처럼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어떻게든 좋게, 다르게 만들려는 의욕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의욕은 조금 넘친다. 과유불급이다.

뒷좌석도 그리 넓지 않다. 센터 터널도 거의 시트 아래까지 솟아올라와 있어 유효공간을 제한한다. 실내 패키징은 조금 더 손볼 필요가 있다.

재규어 역사상 가장 가볍다고 했다. 20d R 스포츠의 공차중량이 1,670kg이다.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구조에 새로운 서스펜션을 탑재했다.

터보차저를 얹은 디젤 엔진은 재규어가 처음 자체 제작했다는 인제니움 엔진이다.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과 트윈 역회전 밸런스 샤프트로 진동을 크게 줄였다. 터보차저를 적용해 낮은 rpm에서도 강력한 토크를 발휘하며, 운전자가 원할 때 즉각적인 반응과 강력한 가속을 보인다.

재규어 XE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안정감을 꼽겠다. 앞 뒤의 무게배분에 더해 수직방향은 물론 횡방향의 흔들림까지 잡아주는 서스펜션이 큰 몫을 한다. 앞은 더블 위시본, 뒤는 인테그럴 링크 방식이다. 인테그럴 링크 방식의 후륜 서스펜션은 기존의 멀티링크 방식과 비교해 강성이 향상돼 날카로운 핸들링과 유연한 승차감에 필요한 이상적인 강성을 제공해준다. 젖은 노면이지만 타이어 그립이 충분해 조금 더 과감하게 핸들링을 하게 만든다.

차의 안정감을 더해주는 기술은 더 있다. 랜드로버에서 건너온 오프로드 기술이다. 전지형 프로그래스 컨트롤(All Surface Progress Control: ASPC) 시스템. 도로 상태를 불문하고 최적의 트랙션을 제공해주는 기술이다.
앞뒤 50대50으로 무게를 배분한 점도 주행안정감을 확보하는데 큰 힘이 된다. 이 같은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 D 세그먼트에 어울리지 않는 탁월한 안정감을 보여준다. 균형 잡힌 주행감각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핸들은 2.6 회전한다. 타이트하고 예민한 조향비다. 날카로운 핸들링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토크벡터링이 있어 코너에 특히 강했다. 균형감 있는 무게 배분, 그립이 좋은 타이어, 토크벡터링이 만들어내는 코너링 성능이 매력 있다. 사륜구동에 버금가는 코너링이다.

지붕과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로 엔진소리, NVH를 제대로 체크할 수는 없었다. 낮지만 묵직하게 멀리서 올라오는 엔진 소리는 빗소리와 섞여 그 실체를 분명하게 느끼긴 힘들었다. 마치 초점 안맞은 시야처럼. 그래도 가속페달의 마지막 저항을 뚫고 끝까지 밟으면 엔진 사운드가 생동감 있게 올라온다. 살아 있다. 생명력을 전해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4,200rpm까지 치고 올라간 뒤 기어를 바꿔물며 3,000rpm까지 후퇴한다. 호흡을 정돈하고 다시 치고 나간다. rpm 변화는 빠르다.

점점 빠르게, 점점 강하게 몰아붙이는데 차는 이런 한계를 즐긴다. 아주 빠른 속도에서도 속도를 이겨내는 차제를 느낀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입질이 오는 낚싯대를 낚아채듯 순간적으로 강한 토크가 살아난다. 알루미늄 보디는 가볍다. 공차중량 1,670kg은 180마력의 힘이 가뿐하게 끌고 달린다. 거침이 없다.

가솔린 엔진을 얹은 20t 프레스티지로 시승차를 교체했다. 200마력, 28.6kgm의 토크로  가솔린 특유의 경쾌함이 살아난다. 디젤의 묵직함도 좋지만 가솔린의 경쾌함은 또 다른 느낌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북돋는다. 디젤이 힘 있고 묵직한 펀치라면 가솔린은 스냅을 살려 가볍고 매운 펀치다. 엔진 사운드도 디젤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상극인 부드러움과 강함은 8단 변속기를 통해 한 몸에 조화를 이루며 공존 한다. 속도는 빠르고 강하게 치고 오르지만 변속충격은 거의 없고 차체 반응 역시 부드럽다. 변속기의 조율이 놀랍다.

수동 조작에도 8단변속기는 적극적으로 대응해 즉각 반응한다. 급한 가속을 할 때에는 간간이 변속충격이 올라오지만 이를 예상하고 가속페달을 잘 다루면 “부드럽게, 하지만 강하게” 라는 상호 모순된 표현을 이해하게 된다.

재규어 XE는 한 수 위의 안정감과 성능을 보였다. 고속주행과 코너에서 보여준 안정감은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엄청난 비와 바람이 시승하는 동안 내내 함께 했다. 그 비를 맞으며 빠른 속도로, 때로 급한 코너를 돌아나가며 희희낙락 시승을 즐겼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서야 한 한 차례도 미끌리거나 휘청이는 순간이 없었음을 알았다. 차를 탈 때엔 놀라운 안정감에 취해 안보이던 매우 위험한 환경이 차에서 내릴 때 비로소 보였던 것. 재규어였기에 가능했던 미친 시승이었다.

재규어는 프리미엄 니치마켓이 생존공간이다. 그럼에도 재규어는 양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D 세그먼트에까지 내려왔다. 재규어 XE의 공간은 반올림한 D세그먼트, 즉 #D 세그먼트다. 경쟁차종들에 반걸음 앞선 제품으로, 양보다 질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게 재규어의 운명이다. 재규어 XE는 그런 운명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솔린 모델인 재규어 XE 20t 프레스티지는 4,800만원이다. 디젤모델은 4,760만원부터다. 4,000만 원대에 살 수 있는 재규어가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뉴스다. 재규어의 서식 공간이 더 많은 사람들 가까이로 넓어지는 셈이다. 도심을 누비는 재규어들을 더 자주, 더 많이 볼 수 있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페달 간격이 좁다. 브레이크 페달을 조금 오른쪽으로 밟으면 가속페달이 함께 밟히기도 한다. 발이 큰 사람은 더 자주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게 페달의 크기와 위치를 좀 더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겠다.
주행모드는 화살표 버튼을 이용해 선택해야 한다. 처음엔 에코 표시나, 체커기 표시를 누르게 되는데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고 다시 화살표를 누르게 된다. 물론 익숙해지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조작 버튼이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선 문제가 있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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