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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익숙한’ 포르쉐 카이엔 S-E 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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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창시자 페르디난드 포르쉐가 제일 먼저 만든 건 4개의 휠 안에 모터를 장착한 전기차였다. 1900년 파리박람회에 등장했던 이 차는 2.5마력의 힘으로 최대속도 시속 50km의 성능을 보였다. 이 차의 이름은 로너 포르쉐. 포르쉐의 뿌리는 전기차였던 셈이다.

전기차로 회귀하는 것일까. 포르쉐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대를 열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100% 전기차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같은 차다.

포르쉐 카이엔 S E하이브리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포르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상징색으로 연두색을 택했다. 하이브리드 배지, 계기판의 바늘 등에 연두색을 적용했다. 275/45R20 사이즈의 거대한 타이어를 품은 휠 안쪽 브레이크 캘리퍼도 연두색이다. 이른 봄 새싹을 닮은 색이다. 이 차에 피가 있다면 아마 연두색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5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에서 제일 큰 원은 rpm 게이지다. 속도계는 없고 rpm 게이지 아래에 간단히 숫자로 속도를 표시한다. 속도보다 엔진 회전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포르쉐다.

엔진은 게으르고 배터리는 부지런하다. 시동을 켜도 엔진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비몽사몽 이불 안에서 끝까지 눈을 감는 게으름뱅이처럼 최대한 늦게 깨어난다. 대신 전기가 조용히 서두른다. 계기판 판 파워게이지가 ‘ready(준비)’상태로 위치하며 움직일 수 있음을 알린다.

카이엔 S E 하이브리드에서는 코스팅 기능이 있다. 속도를 올려 달리다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rpm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코스팅 주행 상태가 된다. 변속기가 중립상태가 되고 엔진은 꺼진다. 달리는 탄력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것. 연료를 쓰지 않거나 혹은 최소한만 사용하면서 움직이는 것.

기어를 물고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대신 퓨얼컷이 일어나는 타력주행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해 연료효율적인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게 포르쉐의 결론이다. 코스팅 주행의 반대는 킥다운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던가.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으면 간절히 달리고 싶다는 말로 알아듣고 온 우주를 대신해 엔진과 배터리가 함께 힘을 쓴다.

계기판의 바늘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속도를 높여나간다. 차체는 정확하게 제어된다. 전기차를 지향하는 친환경차임에도 불구하고 포르쉐의 기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다.

모터출력은 95마력으로 이전 카이엔 하이브리드의 모터출력 47마력에 비하면 두 배 이상 힘이 세졌다. V6 3.0리터 가솔린 엔진에는 수퍼차저가 올라갔다. 333마력이다. 엔진과 모터를 합한 시스템 출력은 416마력. 어마한 힘이다.

400마력이 넘는 힘을 가진 친환경 SUV. 어찌보면 형용모순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게 포르쉐다. 포르쉐의 본질인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친환경차로서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기차도 포르쉐가 만들면 스포츠카가 된다.

연비는 1리터로 9.4km를 가는 수준. 포르쉐 가문에선 참 좋은 연비다.

엉덩이에는 두 개의 연료 주입구가 있다. 왼쪽엔 전기를 받아들이는 충전구, 오른쪽엔 가솔린 주입구다. 가정용 220V 전력으로 약 3시간 정도면 완충된다.

변속레버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눌러 ‘E 파워’를 활성화시키면 전기차기 된다. 시속 125km까지 전기차 상태로 움직인다. 엔진은 죽은 듯 멈춰있고 전기로만 100km/h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노면 소음과 차창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엔진 소리와 진동 없이 빠르게 달린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엔진이 재시동될 때도 거부감이 안든다. 아주 자연스럽게 400m 계주 선수들이 바통을 넘기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엔진 파워가 개입해 들어온다. 정지 상태에서 엔진이 시동되는 게 아니라 달리는 과정에서 엔진이 살아나고 동력이 체인지되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럽거나 거칠지 않다.

봄처녀 사뿐거리는 발걸음은 대지를 박차는 힘찬 말발굽 같은 힘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숨겨져 있던 스포츠카의 폭발적인 힘, 극적인 요소들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면 익숙한 포르쉐의 면모들이 드러난다.

낯설고 익숙한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있다.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의 DNA, SUV의 새로운 혈통, 전기차의 미래지향적 요소 등등, 어쩌면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까지 조화롭게 잘 버무려졌다.

카이엔 S E 하이브리드는 시장의 변화, 기술의 흐름 잘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포르쉐의 자세와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늘 그렇듯 시장의 우려와 걱정을 앞선 기술로 불식시키고 있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의 국내 판매 가격은 1억 1,490만원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리엔 자동차가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은 옛날과 지금이 다르다. 변화중 하나, 보기 힘들던 포르쉐가 많아졌다. 911, 카이엔, 파나메라에 이어 마칸까지. 물결치는 자동차의 흐름 속에서 방패 문양을 단 포르쉐를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만큼 포르쉐가 많아졌다. 누구는 부자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얘기한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포르쉐를 좋아하는 부자들이 생각보다 많은거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크루즈컨트롤은 그냥 단순한 정속주행장치일 뿐이다. 1억이 넘는 차 가격, 포르쉐의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에는 너무 소박한 기능이다.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며 달리는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쓰지.
내비게이션이 계기판과 호환되지 않는다. 계기판에 지도를 보여주는 부분이 그냥 비어있다. 한국 소비자들도 이제 포르쉐의 모든 기능을 제대로 누릴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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