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처음 볼 때의 신기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분명 앞으로 가는 발동작인데, 몸은 뒤로 움직이는 신기한 동작.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 보이는 마술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건 미묘한 발동작이다.
혼다 레전드가 그 미묘한 발동작을 배웠다. 뒷바퀴의 토 정렬을 조절해 깔끔하고 민첩한 코너링 성능을 완성했다. 뒷바퀴가 고정된 다른 차들과 달리 토인 혹은 토 아웃을 통해 미묘하게 각도를 조절해 주는 방식이다. 4륜 정밀조향 시스템 (P-AWS, Precision All-Wheel Steer)이다. 혼다의 독특한 기술로, 미드십 세단의 움직임에 뒤지지 않는 빠르고 안정적인 코너링을 완성한다.
실제로 레전드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려본 느낌은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차를 바깥에서 밀어주고 당겨주고 받쳐주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다. 탱고가 어울릴 것 같은 차다. 경쾌하게 움직이다 빠르게 방향전환을 하는 탱고. 빠른 스텝과 정확한 방향 동작을 이어가며 레전드는 멋지게 탱고를 소화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차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며 자세가 흐트러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친 주행상황에서 민첩하게 돌면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한 단계 위의 수준 높은 코너링 성능을 보였다. 계속 이어지는 코너를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춤을 추듯 공략해 나갔다. 신기할 정도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미드십 세단과 맞대결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레전드의 P-AWS는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드라이버의 부담이 훨씬 큰 다운힐에서도 높은 수준의 조향성능을 보였다. P-AWS에 더해 미쉐린이 만든 245/40R 19 타이어가 노면을 잘 잡아준다. 엔진룸에 세팅된 롤바도 차의 비틀림을 저지하며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스포츠 모드를 해제하면 차체는 조금 소프트해진다. 긴장을 푼 나긋나긋한 움직임으로 돌아온다.
길이 5m의 대형 세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날카롭고 안정적인 조향성능을 보였다. 승차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유 있는 공간, 다양한 편의장비를 통해 실내 승차감을 아주 높은 수준에서 완성시키고 있다.
혼다의 전설(레전드)은 1986년에 시작됐다. 1세대 레전드가 그때 처음 세상에 나온 것. 한국에는 한참 후인 2006년에 처음 소개됐다. 지난 3월 국내 론칭한 신형 레전드는 5세대 모델로 아시아에서는 처음 한국에서 시판됐다. 미국에서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어큐라의 RLX로 판매중인 차와 동일한 모델이다.
차체의 실루엣은 조금 보수적이다. 전통적인 세단의 비례를 통해 이 차의 고객층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헤드램프에는 10개의 LED램프가 2열로 배치됐다. 생소한 모습이다. 주얼리 LED 램프. 보석 같은 10개의 LED 램프가 헤드램프 역할을 맡았다. 아주 많은 홑눈과 겹눈으로 눈의 역할을 하는 곤충의 눈을 닮았다. 각각의 LED는 조사각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넓은 지역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딱 5m의 길이, 그리고 1.8m의 폭은 대형세단의 표준 사이즈. 공간의 여유로움만으로도 프리미엄 세단의 위엄을 풍긴다.
314마력짜리 V6 3.5 엔진은 6단 자동변속기와 호흡을 맞추며 시속 100km에서 최저 1,800rpm을 유지하는 안정감을 보이는가 하면 순식간에 초고속 주행상태로 순간이동 한다. 잔잔한 호수를 순항하다가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누르는 잠깐이면 폭풍 속으로 달려드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으로 변한다.
혼다가 넣을 수 있는 모든 기술이 들어가 있다. 어댑티브 쿠르즈(ACC) 기능은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구현됐다. 앞차와의 차간 거리 조절은 물론 완전 정지까지 가능하다. 아주 낮은 속도에서도 ACC를 작동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ACC는 정해진 속도 이상에서만 시작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레전드는 어떤 속도에서도 이를 작동할 수 있다. 시속 10km 정도에서도 ACC를 작동하면 시속 40km 정속주행 상태로 세팅되고 교통 흐름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조절한다. 기존의 다른 차에 적용된 ACC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차선이탈 방지장치도 다른 차의 그것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차선이탈방지장치는 좌우 두 개의 차선을 인식하며 이를 넘지 않도록 하고, 넘을 때에는 스티어링을 조작해 차를 차선 안으로 밀어 넣거나 경고등을 작동하는 방식이다. 레전드의 차선이탈방지장치는 차선 중앙에 차를 유지시킨다. 차선을 인식하고 조향장치를 조절해 차가 항상 차선 중앙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크렐사의 최고급 오디오는 생생한 음질을 들려준다. 잔잔한 음악에 맞춰 조용한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비트가 강한 음악에는 자연스럽게 몸을 흔드는 클럽 분위기도 만들어낸다. 14개의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마술이다. 웅장하고 입체감 있는 음감이다. 소리의 결이 살아있다.
6단 자동변속기는 D 레인지 까지만 있다. 수동변속은 핸들에 있는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변속기에 S 레인지가 없는 대신 변속레버 아래 스포츠 모드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rpm이 조금 더 상승하며 팽팽한 탄력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 모드로 달리다가 이를 해제하면 긴장을 푼 나긋나긋한 움직임을 보인다.
엔진소리는 격조가 있다. 평상주행에선 그 존재를 느끼기 힘들만큼 조용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무게감 있는 사운드가 박력 있게 터진다. 대형세단의 아우라를 가진 사운드다. 충분한 힘을 소리로 들려준다.
고속주행안정성은 놀랍다. 극한적인 고속주행을 시도했지만 차체의 흔들림은 크지 않았다. 바람소리도 의외로 크지 않아 실내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많이 덜어준다. 코너에서, 고속주행에서, 역시 ‘기술의 혼다’임을 절감하게 된다. 중저속에서 아주 편안한 최상의 상태를 보여주지만 레전드는 고성능 세단이다. 마음먹고 달릴 때 이 차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퍼포먼스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혼다의 자존심이 레전드에는 담겨있다.
레전드는 기술의 혼다가 만드는 플래그십 세단이다. 차의 크기와 성능을 감안할 때 6,480만원이라는 가격은 매력적이다. 합리적인 가격, 완성도 높은 다양한 기술은 혼다 레전드의 분명한 장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복합연비는 리터당 9.7km다. 3.5리터라는 엔진 배기량을 감안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수한 연비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업계의 흐름인 다운사이징과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쉽다. 엔진 배기량을 낮추고 출력을 유지하고 연비를 조금 더 끌어올리는 노력이 아쉽다. 혼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 메이커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문제다.
분명한 것은 독일 디젤 세단이 지배하는 수입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높은 연비 효율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의 요구,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효율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