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요타가 세 번째 하이브리드를 내놨다. 지난 4월 3일 열린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인 프리우스 V다. 디젤이 장악한 수입차 시장에서 토요타는 꿋꿋하게 하이브리드를 앞세우고 있다. 한국토요타는 이로써 토요타에 3개, 렉서스에 6개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확보하게 됐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춘 메이커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사랑은 거의 신념 수준이다. 한눈팔지 않고 뚜벅뚜벅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장에 몰두하는 모습은, 그것이 신념이든 혹은 고집이든, 어쨌거나 대단하다.
프리우스 V에서 ‘V’는 ‘Versatility’, 즉 여러 가지 실용적 특성을 가졌다는 다재다능함을 의미한다. 원래의 의미야 어쨌든 ‘승리의 V’ 라고 해석해본다. 하이브리드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토요타의 의지를 담은 이름은 아닐까.
라디에이터 그릴은 미소띈 얼굴처럼 완만한 각도를 준 V형 라인으로 만들었다. 그 좌우로 LED가 적용된 헤드램프를 배치했다.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로는 사다리꼴 형태의 검정색 하부 그릴이 있다. 토요타의 패밀리 룩인 ‘킨룩’을 표현한 앞모습이다.
시선은 엉뚱한 곳으로 꽂힌다. 좌우 헤드램프 옆으로 배치된 LED 주간주행등이 팔자수염을 닮았다. 코믹하다.
넓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느낌이다. 조금 답답한 느낌이었던 기존 프리우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4,645×1,775×1,600mm의 크기다. 기존 프리우스 대비 길이 너비 높이가 기존 프리우스 대비 각각 165mm, 25mm 95mm가 커졌다. 실내에 들어서면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만난다. 이정도로 넓을 줄은 몰랐다. 뒷좌석도 앞뒤로 슬라이딩이 가능해 트렁크를 넓게 쓸 수도, 뒷좌석을 넓게 쓸 수도 있다. 뒷좌석을 접으면 트렁크 공간은 1,905리터까지 확장된다.
솟아오르거나 요철이 없이 완전히 평평한 2열 바닥은 제한된 공간의 활용성을 더 크게 해준다.
파노라마 글래스 루프는 시원하게 창 밖 풍경을 보여준다. 유리 한 장이 아니라 앞뒤를 구분해 2장의 유리로 지붕을 덮었다. 글래스 루프 가림막을 걷고 달리는 모습을 뒷좌석에서 보면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 속에 빠진다.
에어로다이내믹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 차의 공기저항 계수(Cd)는 0.29다. 고속주행할 때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바람소리가 크지 않고 생각보다 차가 흔들림이 적고 안정적이다.
운전석 앞에 있어야할 계기판은 센터페시아 위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주행 정보를 탑승객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운전 잘하라는 잔소리를 듣기 싫으면 차를 살살 다뤄야 한다. 이 또한 하이브리드카의 정신에 부합하는 부분이다.
글로브박스에 숨겨진 멀티미디어 정션 박스에는 3개의 USB 포트가 있다. 각각의 포트는 충전용, 아이팟용, USB로 사용된다.
파워트레인은 프리우스와 동일하다. 1.8리터 직렬4기통 앳킨슨 사이클 엔진은 99마력의 힘을 낸다. 여기에 82마력의 모터가 더해져 총 시스템 출력은 136마력에 이른다.
시프트 바이 와이어 방시의 변속 시스템은 변속 신호를 전기로 전달한다. 자동변속기처럼 RND레인지가 있고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할 때 쓰는 B레인지가 있다. 공차중량 1,515kg으로 일반 세단보다 훨씬 가볍다.
시통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이 활성화된다. 엔진은 시동을 미룬 채 전기 모터가 움직일 준비를 한다. 차가 움직이면 적당한 시점에 엔진이 비로소 활성화된다. 시속 45km 까지는 전기모드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배터리 충전량이 충분한 경우에 한한다. 후진은 전기 모드다.
유령의 움직임처럼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어색함을 지나고 잠시 후 자연스럽게 엔진이 돌기 시작하면서 익숙한 자동차의 모습을 드러낸다.
얇은 핸들은 3.3회전한다. 여유 있다. 움직임은 가볍다. 이전 프리우스가 연비에 집중한 대신 힘차게 달리는 즐거움을 상당부분 양보했다면 프리우스 V는 달리는 즐거움을 양보하지 않았다. 파워 모드를 택해 달리면 차가 달라진다. 제법 힘 찬 엔진 소리를 토해내며 거침없이 질주한다.
주행 모드에 따라 차의 반응은 크게 달라진다. 에코 모드에선 가속반응이 더디고 파워 모드에선 팽팽한 탄력을 보인다. 그 차이는 누구나 알아챌 정도로 분명했다.
차가 가벼워 고속주행 안정감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흔들림이 크지 않고 안정감 있게 움직였다. 물론 묵직하게 가라앉으며 달리는 중량감을 기대해선 안 된다. 경쾌하게 즐거운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정도다.
브레이크는 회생제동시스템과 연계해 단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활용하는 핵심 장치중 하나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초기 반응은 약하고 뒤로 가면서 강해진다. 정지했을 때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보면 고무풍선을 밟는 듯한 반발력이 느껴진다. 일반적인 브레이크 페달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편평비 60에 16인치인 미쉐린의 그린X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를 사용했다. 타이어 구름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이는 데 최적화된 타이어다. 이 타이어를 사용하고도 만족할만한 고속주행 성능을 확보했다는 게 놀랍다.
프리우스를 얘기하며 안전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을 많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그 걱정을 덜어준다. IIHS는 2015년 이 차를 ‘탑 세이프티픽+’로 선정했다. 가정 안전한 수준의 차라는 공인을 받은 것. 무릎 에어백을 포함하는 7개의 에어백이 탑승객을 보호한다.
하이브리드차에서 연비는 생명이다. 토요타가 발표한 이 차의 복합연비는 17.9km/L. 재미있는 것은 도심연비(18.6km/L)가 고속도로 연비(17.1km/L)보다 더 좋다는 사실. EV 모드와 브레이크 회생제동 시스템 등이 활발히 작동하는 도심지역에서 훨씬 더 좋은 연비를 보인다.
시승구간의 절반 이상을 연비에 가장 안 좋은 고속주행으로 달렸다. 연비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고 달렸는데도 60km 가량 주행한 뒤 계기판이 알려준 연비는 15km/L 수준. 함께 달린 9대의 시승차중 최악의 연비였다. 잠실에서 춘천을 왕복하는 구간에서 최고 연비는 26km/L까지 나왔다. 연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다.
판매가격은 3,880만원. 하이브리드 차에 지원되는 1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연간 수백만 원의 연료비를 사용하는 운전자라면 연비 좋은 차가 갑이다. 계산기 두드리며 아긴 연료비를 계산해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인테리어는 너무 가볍다. 무게가 가벼운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인테리어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플라스틱 소재, 장난감 같은 변속레버는 아쉬운 부분이다.
스페어타이어가 이 차에 꼭 필요할까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단 1g의 무게도 줄여야 하는 극한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하이브리드카에서 10kg가 넘은 스페어타이어를 싣고 다니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싹 치우는 게 낫다. 전화 한통이면 10분 안에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스페어타이어 치우고 무게를 줄이고 그만큼 가격도 낮추면 모두가 좋지 아니한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