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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155톤에 달하는 보잉 747을 끌고가는 투아렉의 모습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 엔진과 변속기, 타이어, 그리고 드라이브 샤프트가 제대로 견뎌야 가능한 장면을 투아렉은 보란 듯이 해냈다.

그 차, 투아렉이 마이너체인지를 거쳐 신형으로 교체됏다. 투아렉을 타고 여의도-인천 영종도 구간을 왕복하며 시승했다. 시승모델은 투아렉 V6 3.0 TDI 블루모션 R라인.

이런 저런 디자인 설명이 있었지만 한 눈에 들어온 건 견고한 수평 라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정면, 측면, 후면의 라인들이 모두 수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혹은 뒤로 기울어진 선은 기본적으로 불안하다. 물론 그 불안함은 동적인 의미로 해석돼 ‘다이내믹함’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투아렉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一(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처럼, 수평라인은 안정감과 함께 완고한 느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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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완고함은 실내의 대시보드로 이어진다. 기울어지지 않은 실내의 수평 라인은 고전적인 맛을 풍긴다. 기교를 부리는 건 작은 차에나 어울린다. 투아렉 정도의 고급차라면, 기교 보다는 신뢰감을 주는 기본이 더 중요하다.
지붕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선루프는 차창 밖 풍경을 시원하게 차 안으로 담아낸다. 운전자보다는 동승객이 더 즐길만한 요소다.

무게감은 도어를 닫을 때에도 전해진다. 문이 닫힐 때의 묵직한 느낌. 쉬운 차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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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렉은 폭스바겐그룹 대형 SUV의 씨받이다.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등 폭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들의 주요 SUV들의 뿌리가 투아렉이어서다. 폭스바겐 사람들은 투아렉이 없었다면 Q7이나 카이엔도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물론 아우디나 포르쉐에서는 투아렉을 기본으로 만든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다며 조금 다른 뉘앙스로 풀이한다.

핸들은 2.6회전한다. SUV, 그중에서도 풀사이즈 SUV치고는 대단히 예민하게 세팅한 조향비다. 서스펜션의 강도와 높이를 조절해 오프로드 주파까지 염두에둔 차인데도 타이트한 조향을 노렸다. 온로드에서는 깔끔한 조향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오프로드를 장시간 운행한다면 운전자를 좀 더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1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SUV로 오프로드를, 그것도 장시간 달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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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에어 서스펜션은 재미있다. 차 높이가 조금씩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시트에서 느껴진다. 셀프 레벨링 및 주행 높이 조절기능과 전자식 댐퍼 컨트롤이 포함되어 있다. 3가지 모드가 있다. 노멀, 컴포트, 스포츠 모드다. 컴포트 모드에선 스카이후크 시스템이 노면의 충격을 상쇄시키는 가장 적합한 상태를 찾는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차 높이가 25mm 낮아진다. 에어 서스펜션은 차 높이를 최대 300mm까지 조절할 수 있다. 차량 속도가 140km/h가 넘어가면 자동으로 차고가 낮아진다.

V6 3.0 디젤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의 조율을 거쳐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56.1kg·m의 힘을 만든다. 길이 4,801, 너비 1,940 높이 1,709mm의 거대한 덩치에 설 때마다 숨을 죽이는 엔진 스타트 스톱 기능이 있다.

주행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에너지 회생시스템과 코스팅 모드도 있다. 코스팅 모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엔진과 기어박스의 연결이 끊는 것. 변속기가 중립이 되면서 타력주행 상태를 만드는 것.
일반적으로 연료를 아끼기 위해서는 주행 중 가속페달에서 발만 떼고 변속기는 D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퓨얼 컷’ 즉 연료공급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변속기를 중립으로 해 코스팅 모드가 되면 공회전하는데 필요한 만큼, 연료가 공급된다. 물론 미량이다.

퓨얼 컷을 이용하면 연료가 확실히 차단되는 대신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속도가 빠르게 줄어든다. 퓨얼 컷 구간이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의미다. 코스팅모드에서는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훨씬 더 멀리 작은 양의 연료만 쓰면서 이동할 수 있다. 투아렉이 코스팅 모드를 적용한 이유다. 결국 전체적으로 본다면 코스팅 모드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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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 힘들 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유용하다. 이를 작동시키면 핸들만 쥐고 있으면 된다. 정해진 속도 이내에서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며 달린다. 처음 이 장치를 접하는 이들에겐 신기한 경험이다. 완전 정지후 출발도 가능하다.

호쾌한 주행은 압권이다. 1,750~2,250rpm 구간에서 터지는 최대토크는 낮은 속도에서부터 충분한 힘을 낸다. 공차중량 2,380kg인 거구가 새털처럼 가볍게 움직인다. 2.4톤이 가볍게 질주하는 ‘경쾌한 중량감’은 다른 SUV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느낌이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다가온다.
자잘한 노면 충격은 차 무게로 그냥 눌러버린다. 거칠게 다루면 모든 걸 힘으로 그냥 밀어버리는 탱크 같은 무지막지한 힘을 느낀다. 공기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밀고 나간다. 고속주행에서 바람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잡아먹어버린다. 킥다운을 걸며 깊은 가속을 시도하면 4,000rpm까지 물고 늘어진 뒤 3,000rpm으로 후퇴하고 다시 가속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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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처럼 무조건 내달리는 건 아니다. 한없이 편안하게 순항하는 모습도 보인다. 부드럽게 가속을 이어가면 3,000rpm 부근에서 짧게 짧게 끊어지는 변속이 일어난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까지 떨어지며 차분하게 움직인다. 150km/h에서 겨우 2,000rpm을 마크할 뿐이다.

센터터널이 적당히 솟아 있지만 뒷좌석의 여유로운 공간을 해치지는 않는다. 2열 시트는 앞뒤로 160mm까지 이동할 수 있고 등받이도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트렁크 공간은 1,642리터까지 넓힐 수 있다. 트렁크 이지 오픈 기능이 있어 범퍼 아래로 발을 쓱 움직이면 트렁크가 열린다.

다중 충돌 방지 브레이크는 2차 사고 위험을 크게 줄여주는 장치다. 1차 사고가 난 뒤 차가 스스로 제동해 시속 10km까지 속도를 줄인다. 운전자가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차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을 크게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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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는 수준급이다. 소리의 결이 살아있다. 한데 뭉뚱그려진 소리가 아니라 각 파트의 소리가 제각각 살아있어 한데 어울린다. 조금 크다 싶을 정도로 볼륨을 올려보면 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가수의 목소리, 악기 하나하나가 입체감 있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12개의 스피커를 적용한 다인 오디오시스템의 결과물이다.

복합연비 10.9km/L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2.4톤에 이르는 무게를 감안하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젤 엔진의 우수한 연비에 눈이 익은 소비자들에겐 걸리는 부분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연비 눈높이를 잔뜩 끌어올린 게 바로 폭스바겐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이번 시승은 절반의 의미밖에 없다. 오프로드에서 기대되는 투아렉의 엄청난 파워와 성능을 경험하지 못해서다. 투아렉을 오프로드에서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아쉬움은 다음 숙제로 남긴다.

판매가격 9,750만원. 1억 원 주면 거스름돈이 250만원이다. 7,720만원하는 투아렉 V6 3.0 블루모션 모델과 8,670만원짜리 투아렉 V6 3.0 TDI 프리미엄 모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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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차에 USB 단자가 없다. 별도의 USB 연결선을 센터콘솔 안에 있는 단자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번거롭다. 다른 차에 없는 많은 것들을 가졌지만 요즘 거의 모든 차에 있는 USB 단자가 없는 것은 정말 의외다.
도어 패널의 재질은 ‘고급 비닐’이다. 차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퀄리티를 맞췄다는 느낌을 준다.
사이드어시스트의 경고등은 때로 너무 공격적이다. 좌우측 사이드미러에서 사각지대를 모니터링해주는 사이드어시스트가 경고등을 점등하는 데 때로 앰블런스의 경광등처럼 자극적으로 번쩍여 거슬린다. 점등 강도를 훨씬 더 낮추는 게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