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C118_845

지중해와 맞닿은 휴양도시, 포르투갈 파루의 햇살은 따뜻했다. 이틀을 날아가 피곤한 몸을 마중 나온 차들은 메르세데스 AMG C63S와 C63. 그리고 메르세데스 벤츠 C 450 AMG 4매틱이다. C 클래스를 베이스로 만든 AMG 3총사다. C63 S가 맏형이고 C450 AMG는 AMG의 고성능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막내다.

메르세데스 벤츠 C63 AMG 라는 이름은 메르세데스 AMG C63으로 조금 짧아졌다. 벤츠가 빠진 자리에 AMG가 자리를 옮겨 넣은 이름이다. 벤츠의 서브 브랜드 ‘AMG’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기존 C63 AMG의 6.3리터 자연흡기 엔진은 AMG C63으로 변하면서 V8 4.0 바이터보 엔진으로 다운사이징 됐다. 63S와 63에는 엔진 코드명은 M177이 올라간다. 두 개의 터보차저는 엔진 실린더 뱅크 안쪽에 배치했다. 덕분에 엔진 크기가 작아졌다. 차 앞부분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작아진 엔진에서 C63 S는 510마력. C63은 476마력의 경이로운 힘을 만들어낸다. 실현 가능한 극한의 성능을 뽑아내는 것, 바로 AMG의 존재이유다. AMG 스피드시프트 7단 자동변속기가 그 힘을 조율한다.

Mercedes-AMG C 63 S, designo iridiumsilber magno, Fahrvorstellun

3대의 차를 이틀 동안 차례로 시승했다. 첫 데이트를 C 63 S로 택했다. 치명적 실수였다.
소리가 먼저 다가온다. 엔진이 토해내는 방구 소리가 다르다. 여기저기 눈치 보며 끼는 듯 마는 듯 새어나는 방구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눈치 보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터진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시원하다.

물론 드라이빙 모드에 따라서 그 소리는 조금씩 톤이 달라진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얌전히 내숭을 떨줄도 안다. 배기구를 통해 토해내는 소리의 결에 따라 심장은 춤을 춘다.

알가르브 서킷으로 향하는 길은 고속도로를 거쳐 와인딩이 이어지는 산길을 넘는 코스. 시승하기엔 최적의 조합이다. 남유럽의 따사로운 햇살은 덤.

C63 S를 타는 건 치열한 부부싸움이다. 신경전, 육탄전,  전면전. 그 사이 잠깐의 화해와 평화가 쉼 없이 이어지는,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시간이었다.

Mercedes-AMG C 63 S, designo iridiumsilber magno, Fahrvorstellun

기죽지 말자고 택한 건 스포츠 플러스 모드다. 바짝 독이 오른 이 여자는 소리를 한 템포 올리며 바짝 날선 모습으로 맞받는다.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페달을 툭 치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더 멀리 튀어나간다. 주먹 불끈 쥐었더니 뺨을 후려치는 기세다. 육탄전이다. 빠르다. 그리고 상대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가속페달을 툭 치면 차체는 어떤 속도 어떤 rpm 구간에서도 정직하게 반응했다. 시속 60km에서 2,500 rpm을 쓴다. 시속 100에 맞추면 4단 3,000rpm에 물린다. 수동모드에서 1단으로 끝까지 가속하면 시속 100km 가까이 변속 없이 치솟는다. 차가 미쳤다.

스포츠모드와 컴포트 모드로 낮추니 이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힘을 풀진 않는다. 언제든지 도발하면 응전하겠다는 낌새가 여전하다. 시속 100km에 맞추면 2~7단이 모두 커버한다. 2단이 7,000rpm, 7단에선 1,500rpm까지 떨어진다. 1,500rpm에서의 평화, 7,000rpm에서의 공방. 밀고 밀리며 전쟁은 계속된다.

순한 양같은 양가집 규수의 사뿐거리는 발걸음이 먹이를 낚아채려는 맹수의 거친 질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극적 반전을 원할 때마다 즐길 수 있다. 재미있다. 그 원천은 힘이다. 힘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변신. 놀라운 건 맹수의 질주가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쉽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친 듯이 날뛰는 막무가내의 질주가 아니라 정교하한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컨트롤 가능한 질주다.

100km/h에서 바람소리는 거의 없다. 귀를 기울이면 앞 유리창을 스치는 바람정도만 소곤거리듯 들린다. 시속 180킬로는 넘어야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끝없는 가속 유혹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최고속도 290km/h가 가능하고 200km/h를 무시로 넘나드는 준족에게 시속 100km는 아장아장 걷는 느낌이다. 체감속도는 실제 속도의 절반 수준이다.

Mercedes-AMG C 63 S, designo iridiumsilber magno, Fahrvorstellun

싸움은 장소를 옮기며 진행된다. 산길, 이번엔 신경전이다. 툭툭 건들고 치고 빠진 뒤 눈치보다 다시 도발하는 신경전. 절대 전력을 집중해선 안되는 게 포인트다. 속도를 높였다 줄이며 코너를 돌아나간 뒤 다시 쭉 뻗는 잠깐의 가속, 그리도 다시 감속과 턴. 게릴라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코너.

허리가 즐겁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에서 차가 턴을 할 때마다 허리가 차를 느낀다. 버킷 타입 시트의 허리 지지대가 시트 밖으로 밀려나가는 몸을 막아주는 것. 코너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 편하게 긴장을 풀고 차에 몸을 맡기면 시트가 허리를 맛사지해준다.

패들시프트로 약을 올렸다가 풀어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작하는 만큼, 조절하는 만큼, 딱 그만큼 자세를 잡는다. 뒷바퀴가 밀면 앞바퀴가 방향을 잡는다. 절대 밀리지도, 그렇다고 밀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균형이 중요함을 차도 드라이버도 알고 있다.

신경전은 심리전. 기 싸움이다. 조금 더 과하게 약을 올려도 C63 S는 좀처럼 말려들지 않는다. 주먹처럼 날아오는 코너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잘도 피한다. 최강의 수준으로 세팅된 서스펜션은 조금의 유격도 허용치 않는 관절들과 함께 노면을 놓치는 법이 없다. 즐거운 전쟁이다. 육탄전과 심리전, 사이사이 잠깐의 평화를 즐기며 결전을 향해 달렸다.

Mercedes-AMG C 63 S; Fahrvorstellung Portimao 2015; brillantblau

알가르브 서킷. 길이 4.4km. 결전의 무대다. 역시 C63 S가 서킷 주행용으로 준비됐다. C63 S에는 레이싱 모드가 있다. 최고의 성능을 만들어내는 세팅으로 63S에만 준비된 주행모드다. 전면전을 위한 무기다.
알가르브 서킷은 고저차가 큰 코너를 몇 개 품고 있는, 까탈스럽고 어려운 서킷이다. 한국의 인제 서킷과 흡사한 곳이다. 이곳에서 모든 화력을 총동원해 승부를 갈라야 한다. 헤어질 각오를 하고 독하게 싸워야 하는 무대다.

쭉 뻗은 직선로에서의 총력전. 모든 자원을 쏟아 부어 시속 210km까지 속도를 높인다. 3단이 이 속도를 커버한다.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모든 걸 쏟아부으며 격한 싸움을 하는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 승패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스스로의 만족이다.

직선을 벗어나면 몇 번의 코너를 지나 오르막을 앞서가던 차가 마술처럼 사라진다. 언덕의 정점을 지나자마자 뚝 떨어지는 내리막. 그리고 다시 코너가 이어진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재미있는 코스다.
완만한 오르막을 지난 뒤엔 다시 내리막에 커브가 겹치는 난코스. 전력질주는 파국이고, 기어가면 패배다. 과감한 용기에 정교한 파워조절이 필요한 곳. 코너에 진입할수록 용기는 줄어들고 가속페달을 밟은 발은 브레이크로 바꿔 밟는다.

Mercedes-AMG C 63 und Mercedes-Benz C 450 AMG Pressdrive Portima

용기가 필요했다. 과감한 도발.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만 파국을 각오하고 차를 던져보자. 3랩째 같은 코너에서 작정하고 차를 던졌다. 승부수다. 그렇게 단단한 균형을 유지하던 녀석이 흔들렸다. 뒤가 밀리기 시작한 것.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가속을 유지한 채 핸들을 잠깐 풀었다 다시 감는 잠깐 사이에 C63S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끄러짐을 멈추고 제대로 달렸다. 잠깐의 흔들림, 그게 전부다. 업어치고 매쳐도 안정된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가 없다.

녀석을 제대로 다루기엔 드라이버가 너무 약체다. 싸움을 건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 녀석은 귀여운 아이 업어주듯 나를 태우고 달린 건 아니었는지. 전면전은 패배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 C63S의 완벽한 승리. 엄지를 치켜 세워준다. 멋지다. 최고다. 부부싸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서킷을 뒤로하고 C63과 C450 AMG를 차례로 갈아탔다.

앞서 말했듯, C63S를 먼저 탄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너무 강한 상대를 경험한 뒤여서 476마력의 힘이 얌전하게 느껴져서다. 엔진 소리도 살짝 힘이 빠진다. C63을 먼저 만났다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었겠지만 C63 S를 먼저 타는 바람에 점점 약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 것. 일종의 착시다.

Mercedes-AMG C 63 S, designo iridiumsilber magno, Fahrvorstellun

AMG C63은 바이터보 V8 4.0 엔진을 얹어 476마력의 힘을 낸다. C63 S보다 한 단계 아래라고 우습게 볼 수 있는 차가 아니다. 퍼포먼스 세단의 하이엔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부부싸움이긴 마찬가지. 몰아치면 어김없이 손톱을 드러내며 사납고 무서워진다. C63은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4.1초로 C63 S보다 0.1초가 더디지만 최고속도는 290km/h로 동일하다.

무섭게 달리는 차를 백업하는 건 브레이크다. 앞을 보고 정신없이 달리다 제동이 필요한 순간 브레이크를 작동하면 어김없이 정확한 감속이 이뤄진다. 고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제동이 이뤄진다. 차를 신뢰할 수 있는 순간은 가속 때보다 정확한 제동을 확인할 때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신뢰가 샘솟는 차다.
C63과 C63 S 가 하이엔드급 파워를 보인다면 벤츠 C 450 4매틱은 고성능 입문자용 세단이라고 할 수 있다. 후륜 기반의 사륜구동으로 기본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고 최고출력 367마력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V6 3.0 엔진은 7단 변속기와 궁합을 맞춘다.

Mercedes-AMG C 63 und Mercedes-Benz C 450 AMG Pressdrive Portima

착시는 이어졌다. 벤츠 C450 AMG 4매틱의 한없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함. 하지만 그건 AMG 뱃지를 달지 않은 C 클래스 세단의 퍼포먼스를 훨씬 능가하는 단단하고 파워풀한 반응이었다. 정지상태에서 불과 4.9초 만에 시속 100km를 끊는 성능을 가졌다. 충분한 고성능을 가진 차다. 앞뒤 토크배분이 33대 67로 후륜기반의 안정된 사륜구동을 확보했다. 잘 조련된 사자라고 할 수 있다. 애완동물만 만나던 이들이 정글에 나서기를 원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Mercedes-AMG C 63 und Mercedes-Benz C 450 AMG Pressdrive Portima

 

오종훈의 단도직입
도어 닫힘은 때로 불완전했다. 툭 하고 힘없이 문을 닫으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출발하는 차를 세워 도어를 제대로 닫게 하고 출발시키기도 했다. 대충 걸쳐주는 정도여도 차가 알아서 닫아주면 좋겠다.
대시보드의 돌출된 부분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센터페시아에 튀어나온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거슬린다. 센터페시아와 기어박스를 감싸는 부분도 돌출되어있다. 자꾸 걸린다. 집어넣어! 소리 치고 싶다.

포르투갈 알가르브=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