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Q70이 한라산 중턱 성판악을 향해 질주한다. 춘삼월에 눈까지 동반해 몰아닥친 꽃샘추위지만 Q70의 발길을 막지는 못했다. 서귀포를 출발해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Q70은 미끄러운 길을 사뿐거리며 밟고 달렸다. 3.0 디젤도 있고 3.7 가솔린 엔진차에는 AWD 모델도 섞였다. 날씨는 추웠지만 인피니티 스텝들의 열기는 뜨겁다. 갑자기 변하는 날씨에도 “공격적인 루트”를 양보하지 않았다.
3.7 가솔린 AWD의 운전석에 올랐다. 놀랍고 반가운 건 여전한 인피니티의 엔진 소리다. 퍼포먼스 세단을 추구하는 Q70이다. 엔진 사운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규제와 기준에 맞추느라 ‘효율’이 미덕인 시절에 퍼포먼스 세단을 추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고집이 아니다. 덕분에 차를 타는 사람은 귀도 즐겁다. 여자 같은 중성적 사내들 틈에서 목소리 굵은 사내를 만나는 기분이다.
밟는 대로 터치는 경박한 소리가 아니다. 잘 만져진 소리에는 엔진 파워와 더불어 차의 품격이 담겨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진정 수준 있는 사운드다.
인피니티의 엔진 사운드가 말하는 건 ‘퍼포먼스 세단’이다. 배기량 3.7인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무려 7,000rpm에서 333마력의 힘을 뿜어낸다. 인피니티의 플래그십 세단 자리를 꿰찰만한 차다.
가속페달은 아무런 저항 없이 끝까지 한 번에 밀려 내려간다. 힘 못 쓰는 차에서 이런 현상을 만나면 킥다운 버튼이 주는 경계를 넘는 맛이 없어 밋밋하다는 평을 한다. 하지만 고성능 세단이라면 해석이 달라진다. 경계를 넘나들 필요 없이 언제든 최고의 힘으로 달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다.
스로틀밸브를 완전히 열면 레드존 시작점인 7,500rpm까지 곧바로 치고 오른다. 거침이 없다. 수동 변속 모드라면 올라간 rpm은 운전자의 손으로 시프트 업을 하기 전엔 내려오는 법이 없다. 주인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불독이다. 7500rpm을 놓치지 않고, 이제 그만 알아서 변속하라고 차체가 부르르 떨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변속은 오직 운전자가 한다. 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정직한 반응인가. 수동모드에선 자고로 이래야 한다.
제대로 달려보겠다고 잔뜩 힘을 몰아 엔진을 발기 시켰는데 정점을 찍자마자, 그마저도 어떤 녀석은 정점에 이르기도 전에, 자기가 알아서 변속한답시고 힘을 빼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변속 모드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수동변속 모드에선 그래선 안 된다. 즐겨보자고 작정했다면 제대로 즐기는 게 맞다. 7,500rpm으로 밤새 달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3.0 디젤엔진은 보어x스트로크가 84x90mm인 롱스트로크 엔진이지만 3.7 가솔린 엔진은 95.5x86mm인 확실한 쇼트 스트로크 엔진이다. 가속시 폭발적인 파워를 뽑아내는데 적합한 고회전용 엔진이라는 의미다.
핸들을 붙들고 왈츠를 추듯 코너 진입과 탈출을 이어가는 순간 박자를 놓쳤다. ‘아차’ 하는 순간 차는 휘청하며 흔들렸다. 충분히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뿐이다. 전자식 주행안정장치가 정확하게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운전자는 그냥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너무 감아버린 핸들을 잠깐 풀어줬을 뿐이다.
코너에선 사륜구동장치도 한 몫 한다. 인피니티가 자랑하는 아테사 ET-S라는 장치다. 스포츠 주행에 좀 더 초점을 맞춰 개발된 것으로 가볍고 반응이 빠르다. 평소에는 뒷바퀴굴림으로 달리고 차가 흔들리거나 미끄러지는 등 사륜구동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전자식 다판클러치를 이용해 사륜구동으로 변환한다. 구조가 간단하고 가벼워 연비 손실도 적다.
주행모드에 따라 차체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를 통해 노멀, 에코, 스포츠, 스노 등의 모드를 택할 수 있다. 에코 모드는 시프트업을 빠르게 가져간다. 가속은 더디게 된다. 연료를 아끼라는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
스포츠 모드에선 시프트업을 가능한 한 느리게 가져간다. rpm을 높게 사용해 힘을 세게 쓰는 것. 스포츠모드에서 한껏 달아오른 차체는 엑셀을 살짝만 터치해도 뜨겁고 민감하게 대답한다. 엑셀 오프에도 즉각 반응하며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승차감에도 차이가 있다. 에코 모드에선 물렁하고 여유가 있다. 스포츠모드에선 딱딱하고 쇼크에 즉각 반응한다.
트는 편하게 몸을 받아준다. 잡아주는 게 아니라 받치는 느낌이다. 그래서 허리가 허전하다. 와인딩이 이어지는 길에선 허리를 좀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어깨와 엉덩이로 횡가속도를 견뎌내야 했다.
가속할 때 몸과 시트가 나누는 교감은 색다르다. 시트는 몸을 밀고 나가고, 몸은 시트에 파묻힌다. 순간적으로 강한 가속감을 보이는 고성능 세단에서나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교감이다.
고속안정감은 끝내준다. 6,000만 원대의 세단에서 이 정도의 고속안정감을 보여주는 차는 많지 않다. 꽤 높은 속도에 이르러서야 차체의 거동이 커지면서 겁이 살짝 난다. 바람이 없는 화창하고 얌전한 날씨였다면 아마도 훨씬 더 안정적인 승차감을 보였을 거라 확신한다. 시승하는 내내 제주의 겨울바람에 시달려야 해서다. 엄청난 바람은 차의 앞, 뒤, 양옆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차를 괴롭혔다.
인피니티는 고집이 있다. ‘퍼포먼스’를 결코 놓치지 않는 고집이다. 궂은 날씨에도 ‘공격적인 루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피니티 스텝들의 ‘고집’도 결국은 ‘퍼포먼스에 대한 고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적당한 융통성도 가졌다. 한동안 고집하던 ‘온리 가솔린’ 정책을 거둬들이고 디젤엔진을 받아들였고 Q50에서는 하이브리드까지 선보이는 융통성이다. 이를 통해 인피니티는 버려야할 것과 유지해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보여준 셈이다.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은 ‘엔진 다운사이징’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까. 3.5 엔진도 부담스러운데 이를 개선해 무려 3.7리터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복합연비가 8.3km/L다. 3.7 가솔린에 후륜구동 모델은 8.8km/L다. 이 연비가 좋아 보이는 이들은 엔진 배기량까지 함께 보는 경우다. 이 연비가 턱없이 나빠 보인다면 최근의 디젤엔진 연비를 너무 많이 접한 까닭일 것이다.
Q70 3.7 AWD의 가격은 6,500만원이다. 이 가격에 제대로 조율된 333마력의 힘과 사륜구동의 안정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차는 찾기 힘들다. 3.7 가솔린 후륜구동 모델은 5,750만원부터다. 3.0 디젤엔진 모델은 한 가지 트림으로 6,22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이름은 Q70으로 완전히 바꿨지만 마이너체인지 수준의 변화로 그 폭이 옹색하다. 이름을 완전히 바꿨다면 풀체인지를 해야한다. 풀체인지 할 때 새 이름표를 다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핸들 구성은 마음에 안든다. 스티어링 휠은 크고 패들시프트가 없고 어느 정도 유격이 있다. 퍼포먼스 세단과 어울릴 수 없는 요소들이 핸들에 몰려 있다. 패들 시프트를 가진 좀 더 작고 타이트한 핸들이라면 운전은 훨씬 더 즐거울 수 있겠다.
제주=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