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건축, 문화, 패션 등의 분야에서 화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프랑스다. 하지만 자동차는 아니다.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3사의 플래그십 차에는 고작 2.0~3.0 엔진이 올라간다. 소박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와 함께 ‘평등’을 사회적 가치로 높이 받드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거라 짐작해본다.
푸조의 플래그십세단 508을 만났다. 우리의 쏘나타 정도 되는 중형급 세단이다. 2.0 디젤 엔진을 올려 163마력의 출력을 낸다. 아래로는 1.6 엔진을 올린 트림도 있다.
단정하고 절제된 디자인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직선을 좀 더 강조한 모습에선 솔직함이 묻어난다. 간결하지만 세련됐다. 이전 모델에 비해 날씬해졌다. 길이를 키우고 폭과 높이는 줄였다. 그래도 차폭이 1,830mm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7인치 내비모니터는 터치 패널을 사용한다. 차의 각 부분을 세팅하고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등을 손끝으로 조절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는 간결하게 정리했다. 많은 기능을 터치스크린 안으로 몰아넣어 버튼들을 많이 줄였다. 두 개의 컵을 놓아둘 수 있는 컵홀더도 센터페시아 안에 숨겨 놓았다.
2.7 회전하는 핸들은 쥐는 맛이 좋다. 그 반응은 타이트하고 즉각적이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조향성능은 단단한 하체와 맞물려 대부분의 코너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여유 있는, 어쩌면 조금 헐렁한 느낌을 주는 그래서 편안하게 느껴지는 조향이 아니다. 단단하고 예민한 핸들이 리듬에 맞춰 왈츠를 추듯 코너를 희롱해 나간다. 박자가 빨라지며 조금 더, 조금 더 운전자를 유혹한다. 푸조의 조향성능은 단연 갑이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반응도 좋다. 충격을 받아 넘긴 뒤 잔진동이 없다. 충격을 받아치지 않고 포용해 품어 안는다. 작은 흔들림만으로 쇼크를 해결해낸다. 디젤의 굵은 토크감이 낮은 속도에서도 살아난다. 툭 툭 치는 가속페달에 차체는 정직하게 반응한다.
차선을 바꿀 때에는 블라인드 스팟모니터링이 작동한다. 사각지대에 장애물이 있으면 사이드미러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 사이드 미러에 빨간불이 있으면 조금 더 조심하게 된다. 안전에 도움이 된다.
시속 100에서 1600rpm을 마크한다. 1,997cc 디젤엔진이 만들어내는 최고출력은 163마력, 최대토크는 2,000rpm에서 34.6kgm다. 6단변속기가 이 힘을 조율한다. MCP가 아니어서 주행이 훨씬 부드럽다. 수동변속 모드에서는 레버를 위로 밀어야 시프트다운이 된다. 손맛이 다르다. BMW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패들시프트는 핸들과 분리되어 그 아래 위치했다.
시프트다운하면 차가 힘을 쓴다. 예민해진다. 2단에서 킥다운을 걸며 가속하면 4500rpm을 터치하면서 3단으로 올라간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주행속도와 크루즈컨트롤의 정보를 보여준다. 내비게이션과는 연동하지 않는다. 푸조는 208 등에 핸들 사이즈를 줄이고 계기판 위치를 조절해 헤드업디스플레이를 대신하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508에도 그런 방법이 좋겠다.
브레이크를 깊게 밟아 급제동을 시도하면 비상등이 스스로 작동한다. 다시 가속을 시도하면 비상등은 자동 해제된다. 브레이크는 아주 정확하게 자체를 제어한다.
눈이 쌓인 오르막길에서 정지 후 출발했다. 트랙션컨트롤이 작동하면서 멈칫 멈칫 구동력을 확보하면서 잘 출발했다.
연비는 14.8km/L로 2등급이다. 국내 연비 기준이 워낙 박하게 정해져 있어서 일반 운전자들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직한 연비다. 판매가격은 4,490만원. 1.6 엔진을 얹은 모델은 3,990만원부터 시작한다.
508의 완성도는 높다. 화려하지도, 눈길을 확 잡아끄는 포인트는 없지만 인테리어의 품질, 감성을 자극하는 주행품질, 알차게 배치된 편의장비 등이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각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508이 푸조의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유야 어떻든 자동차의 상한선은 이정도가 좋겠다는 푸조 나름의 기준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스탑 앤 고 시스템이 없다. 푸조가 자랑하는 최고 효율의 스탑 앤 고 시스템은 1.6 모델에만 적용되고 2.0 모델에는 없다. 이를 적용하면 연비를 좀 더 올릴 수 있었다는 의미다. 아쉽다.
주행모드를 선택하는 버튼은 작동이 부자연스럽다. 기능이 작동하는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나 손끝의 느낌이 어색해 자꾸 한 번 더 누르게 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