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이 한국에 왔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슈퍼카가 뒤늦게 한국 땅을 밟았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 브랜드인 애스턴마틴의 역사는 1913년에 시작된다. 영화 007 시리즈에 단골로 등장했던 슈퍼카다.
벤틀리,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등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한국 시장에 이제야 입성하다니. 3년만 먼저 왔어도 짭짤했을 텐데. 하긴 더 늦은 것 보다는 낫다. 시승차는 미국을 통해 우회 수입한 차다. 최근 정식 딜러가 국내에 애스턴마틴 전시장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에서 애스턴마틴을 만나는 두 개의 루트가 생긴 것이다. 애스턴마틴서울이 수입한 DB9을 타고 영종도를 달렸다. 컨버터블이다.
검은색 소프트톱을 닫고 호텔 앞에 세워진 DB9은 슈퍼카치고 소박한 얼굴이다. 허탈하기까지 하다. 평범한 얼굴에 군더더기 없는 라인. 이렇다 할 장식도 포인트도 없는 디자인이다. 자랑할게 많은 차를 이렇게 소박하게 만들기도 쉽지는 않겠다. 낮은 차체, 앞으로 잔뜩 숙여진 보닛 라인이 힌트지만 알아차릴 이들은 많지 않겠다. 물론 정답은 노출돼 있다. 날개 문양의 애스턴마틴 앰블럼. 그리고 뒷부분에 달린 뱃지 DB9. 이 차 영국에서 만든 슈퍼카 애스턴마틴 DB9이다.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4,720, 2,601, 1,282mm, 휠베이스는 2,740mm, 공차중량 1,785kg의 체격이다. 넓고 낮다. 그리고 가볍다. 타이어는 압도적이다. 앞에는 20인치, 뒤에는 30인치 타이어다. 피렐리 제품으로 245/35 ZR20, 295/30ZR 30 사이즈다.
A자 형상의 롤바가 엔진룸을 견고하게 잡아주고 있다. 그 안에 꽉 찬 엔진은 V12 6.0리터다. 최고출력 517마력, 최대토크 60.8kgm의 괴력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소박한 옷차림 안에는 우락부락하게 단련된 엄청난 근육이 숨겨져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일체형 시트는 몸을 제대로 받혀준다. 그 가죽이 최고급임은 굳이 확인할 필요 없다. 나무 장식으로 꾸민 센터페시아는 고전적이다. 센터페시아 제일 위 키홀더를 집어넣어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과장을 보태면 천둥 같은 소리다. 귀를 때린다. 긴장을 풀고 무심코 누르면 깜짝 놀란다. 긴장하라고,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다. 12개의 실린더가 움직임을 시작하며 이제부터 펼쳐질 드라이빙을 예고하는 소리이기도하다. 차를 타는 동안 소리는 늘 함께 했다. 조용히 숨 쉬는 편안한 소리, 포효하듯 폭발하는 엔진 사운드, 그리고 때로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핸들은 3회전 한다. 3회전하는 핸들은 흔히 승차감과 성능을 두루 고려하는 세팅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차에선 좀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500마력이 넘는 힘을 적절히 컨트롤하기 위한 타협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속페달은 깊게 밟힌다. 페달은 아무 저항 없이 바닥까지 밟힌다.
변속레버는 없다. 대신 센터페시아에 변속 버튼이 자리했다. 박력 있는 움직임은 6단 변속기가 조율한다. D 레인지에서는 변속이 부드럽다. 시속 100km에서 1,800rpm 정도를 커버한다.
핸들에 달린 패들시프트를 이용하면 박력이 더 커진다. 패들시프트로 다운 시프트를 하면 엔진 사운드가 살아난다. rpm이 치솟는다. 500마력 넘는 힘이 차체를 밀고 달린다. 미친 듯한 파워지만 다루지는 어렵지 않다.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맛에 취하면 적절한 제어시점을 놓치기 쉽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이유다.
패들시프트를 통한 수동변속에 스포츠모드를 이용하면 한계를 확인하기 힘든 최강의 성능을 체험할 수 있다. 끝장을 보자는 듯 한계를 물고 가는 느낌. rpm이 레드존에 이르면 심장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극한의 속도를 어렵지 않게 터치한다. 잘 달리는 것은 기본. 이 기본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완벽하게 차체를 제어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빠른 속도에서도 브레이크는 필요한 순간에 완벽하게 차체를 장악해준다. 슈퍼카의 첫째 조건은 슈퍼 브레이크다. 넘치는 박력을 순식간에 순둥이로 만드는 제동력이 인상적이다. 카본세라믹으로 제작된 V 디스크 브레이크다. 앞에는 디스크 직경 398mm, 6 피스톤 캘리퍼, 뒤에는 360mm, 4 피스톤 캘리퍼를 썼다.
영상 4도 이하에서는 경고등이 뜬다. 날씨가 추워 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운전 조심하라는 것. 500마력이 넘는 괴력을 가진 후륜구동차다.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운 길에서 가속페달 잘못 밟으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소프트톱을 완전히 여는데는 16초 가량이 걸린다. 톱이 접혀들어가는 공간 때문에 트렁크는 협소하다. 미국 기준, 시내주행 5.5km/L, 고속도로주행 8.1km/L 정도의 연비를 보인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국내 판매가격(부가세 포함, 기본 옵션)은 3억4,370만원, DB9 볼란테 카본 에디션은 3억5,760만원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슈퍼카는 로망이다. 현실은 슈퍼카와 어울리지 않는다. 얄팍한 지갑도 그렇지만 빨라야 110km/h까지만 허용되는 도로 현실도 그렇다. 일반적인 차들도 제대로 달려보지 못하는 답답한 도로는 슈퍼카에게 더더욱 잔인한 현실이다. 수억원하는 차를 사도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매일 몸풀기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꿈과 현실의 갭은 이처럼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팔린다. 애스턴마틴도 벌써 계약대수 30대를 넘나든다고 한다. 현실의 벽을 깨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이다. 그 많은 슈퍼카들은 어디서 제대로 타고 다닐까. 모두가 다 알지만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염화시중의 미소만 지을 뿐.
오종훈의 단도직입
윗 시야가 막힌다. 지붕을 덮으면 멀리보이지만 위는 잘 안보인다. 신호대기 제일 앞에 있으면 신호등이 차 위로 걸리는데 고개를 바짝 숙여야 보인다. 소리는 때로 듣기 좋은 사운드가 되고 때로는 소음이 된다. 호쾌한 주행을 할 때 옆 차나 보행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