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선이 차의 곳곳에 스며있다. 토요타의 종이 접는 장인 ‘다쿠미’는 강철까지 이처럼 접어내는 것인가. 이름조차 선이 살아있는 NX다. 렉서스의 최신작 NX 300h을 시승했다.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렉서스의 고집은 대단하다. 디젤이 장악한 시장에서 벌써 몇 년째 한눈팔지 않고 하이브리드 외길을 걷고 있다. 고지식한 짝사랑을 보는 듯하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짝사랑 아닌가. 어스름한 골목길에서 나타나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며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그 기억이 렉서스를 보면 떠오른다.
시장은 디젤이 장악했고, 디젤에 반한 소비자는 아직 움직일 기미가 없다. 그래도 흔들림 없이 하이브리드를 고집하며 기다리는 게 토요타고 렉서스다. 이쯤 되면 순애보다.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세상 어떤 사랑도 처음은 짝사랑이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선 흔들려선 안 된다.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며 존재를 알리고 기다려야이루어지는 게 사랑이다.
첫 인상. 날카롭다. 아주 많이. 아가리를 쩍 벌린 듯 한 스핀들 그릴, 헤드램프 아래로 낚시바늘처럼 새겨 넣은 드라이빙 램프, 입체감을 살린 리어램프, 그리고 차체의 옆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라인들. 휠 하우스 주면의 볼륨감. 두루뭉술 대충 넘어가는 무난한 모습이 아니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강한 자존감을 본다. 렉서스 라인업에 새로 추가되는 모델. 즉 전에 없던 완전한 새 모델인 만큼 공들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에게 올라간 NX의 최종 디자인 안은 3개였다. 유러피언 감성을 담은 A안, 여성 디자이너가 진행한 B안, 까다롭고 만들기 어렵지만 사전 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C안. 아키오 사장은 A안을 좋아했지만 타깃 고객층에 맞는 C안을 최종 승인했다. 중요한 건 사장의 취향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이다.
자동차의 모습은 디자이너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부분들을 만족시키면서 디자인해야 한다. 법규에 맞게 만들다보면 개발의 폭은 확 줄어든다. NX는 그런 까다로운 법규를 만족시키면서 만족할만한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조금 뒤로 물린 라이트, 앞으로 뺀 노즈, 옆에서 보일 수 있게 날카로운 L자 형태로 배치한 방향지시등은 기존 헤드램프 구성방식을 해체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손대면 베일 것 같은 선을 피해 도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 가죽 시트를 만난다. 무채색 일색으로 무거워지는 실내 분위기가 빨간 가죽시트로 반전된다. 밝고 가뿐하다.
센터페시아가 눈길을 끈다. 건축물처럼 돌출되고 들어가는 입체감을 가졌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는 다른 차의 센터페시아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분을 만든 뒤 조합해 합친 게 아니다. 전체를 하나의 틀로 제작했다. 그래서 이음새가 없다. 조수석 대시보드는 가죽으로 감싸며 마감했고 그 위로 나무를 덧댔다.
변속레버 주변으로는 여러 버튼들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았다. 변속레버는 우측 바깥쪽으로 배치했고 드라이빙 모드를 택할 수 있는 원형 버튼, 전기차모드, ECU 버튼, 브레이크 홀드, 오토모드 등을 택하는 버튼들이 정돈돼 있다.
그 아래 마우스 패드처럼 자리한 터치패드는 내비게이션 모니터와 연동해 다양한 기능들을 실행시킨다. 필요한 위치에 커서를 두고 누르거나 더블클릭하면 작동한다.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에 잘 맞는 장치다. 손거울도 숨겨져 있다. 선바이저에 있는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고 살펴보는 어색한 동작이 NX에서는 필요없다. 단, 잃어버리지 않게 잘 관리해야하는 건 주인의 몫이다.
가죽으로 마감한 스티어링휠은 손이 닿는 부분의 질감을 다르게 했다. 핸들 열선도 손이 닿는 부분에만 있다.
콘솔박스를 열면 핸드폰 무선 충전장치가 있다. 무선충전 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이 위에 올려 놓기만 하면 충전이 된다. 새롭다.
핸들 왼쪽에는 버튼들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를 누르면 테일게이트가 열린다.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뒷좌석이 접힌다. 운전석에 앉은 채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 차에서 내려 직접 조작하는 번잡스러움이 없어 좋다.
NX의 인테리어는 비슷한 듯 다르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다를 수 있을까 편리할까 만족할까.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전기차 모드로 출발했다. 엔진소리 없이 공간을 미끄러져 나갈 때에는 현실감이 사라진다.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약하게 들리는 모터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차는 움직였다. 조금 더 속도를 높여 엔진이 숨소리를 토해내면 비로소 현실감이 살아난다. 엔진 상태에 따라 미래와 현실을 수시로 왕복하는 느낌. 하이브리드카에는 전기차의 매력이 있다.
디젤 엔진차의 오토스톱과는 출발할 때의 느낌이 아주 다르다. 디젤 엔진이 멈춘 뒤 다시 출발하는 순간 강하게 전해지는 엔진소리와 진동은 오토스톱의 편리함을 반감시키고 만다. 디젤엔진의 우렁찬 출발 신호에 엔진이 멈췄을 때의 조용함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좋지않은 반전이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선 이 같은 불편함이 없다. 차가 움직여도 당장 엔진이 작동하는 게 아니다. 적당히 속도가 올랐을 때 자연스럽게 엔진이 합류한다. 부드럽고 조용하다.
하이브리드 차라고 마냥 얌전하지는 않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거칠게 반응할 줄도 안다. 여자 앞에서 허세부리는 속없는 사내마냥 힘자랑을 한다. 필요할 땐 기대 이상의 힘을 드러낼 줄 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에너지 회생 기능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통해 에너지를 다시 회수해 이를 전기로 저장하는 것이다. 연료, 즉 돈 나가는 구멍을 바짝 조이는 셈이다.
80km/h로 달렸다. 잔잔한 타이어 소음 정도만 들린다. 굳이 신경을 곤두세우면 약간의 바람이 느껴진다. 쾌적하고 조용하다. 속도를 점차 높여도 이 같은 느낌은 계속 이어진다.
차의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해 엔진과 배터리 등 무게가 나가는 부품을 차축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미드십 효과를 노린 포석이다. 흔들림을 줄여 자동차의 주행안정감을 확보하는데 효과적인 배치다. 앞뒤의 무게 균형을 맞추는 정석이기도 하다. 세단이라면 뒤로 들어오는 배터리 때문에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있지만 SUV라서 그런 걱정은 없다. 높이가 주는 여유다. 바닥도 평평해 센터터널이 솟아있지 않다. 유효공간이 넓어졌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하면 rpm이 살아난다. 계기판 배경이 빨갛게 변하고 rpm 게이지가 활성화된다. 다시 에코 모드를 택하면 rpm 게이지는 파워게이지로 바뀐다. 에코모드가 연료를 아끼기에는 좋다. 계기판의 에코 구간을 이용하려고 오른발에 힘을 빼서 운전하게 된다. 하이브리드카의 본질은 에코모드에 있다. 렉서스 NX 300h의 복합연비는 12.6km/L.
시속 100km에서 알피엠은 1500 아래다. 대단한 안정감이다. 알피엠을 굳이 높게 쓰지 않아도 필요한 힘을 낸다. 수동변속모드로 3단을 택하면 같은 속도에서 3,800rpm까지 올라간다. 6단에서는 부드럽게 흐르고, 3단에선 당겨진 활 시위 처럼 팽팽하다. 안정감이 있다. 회전, 차선 변경할 때 흔들림이 크지 않다. 노면진동도 하체가 잘 흡수해 승객에 전해지는 쇼크는 크지 않다. 걸러진다.
핸들은 2.8회전한다. SUV로서는 조금 예민한 세팅이다. 온로드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와인딩 코스를 달릴 때 핸들링의 맛이 살아난다. 재미있다. 게다가 NX는 가변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가졌다. 주행상황에 맞춰 앞뒤 구동력을 배분한다. 조금 빠르게 달려도 크게 불안하지 않고, 코너에서 조금 더 과감해져도 좋을 정도로 잘 돈다.
2.5 엣킨슨 엔진에 배터리와 모터 결합으로 작동하는 파워트레인은 152마력의 힘을 낸다. 차급에 비해 충분한 파워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충분한 힘을 내준다.
LED 코너링 램프는 회전방향으로 빛을 쏜다. 운전자가 봐야 할 곳을 비춰주는 것. 운전자 시야확보에 큰 도움을 주는 기능이다. 후방충돌 경보장치는 주위에 장애물, 차가 있다면 경보음을 내서 알려준다.
이그제큐디브 모델에는 마크 레빈슨 오디오가 올라간다. 스피커는 14개가 귀를 호강시킨다. 귀에 착 감기는 입체감 있는 음질이다. 소리를 통해 고급스러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NX는 슈프림과 이크제큐티브 두 개 트림이 있다. 슈프림은 5,680만원, 이그제큐티브는 6,380만원이다. 가장 치열한 전장에 렉서스 최신병기 NX가 투입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 달 판매목표 700대인 이 차를 주문한 사람이 첫 달에만 9,500명이었다. 국내에서도 출시 열흘 만에 200대가 주문됐다. 짝사랑이 통하는 것일까. 상대의 마음이 살짝 흔들릴 때 좀 더 바짝 다가서야 한다. 이제부터 밀당이 중요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틈새 썩 만족스럽지 않다. 많이 벌어진 건 아니지만 재질 단면이 만져진다. 가운데는 떠있다.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다.
운전석에 수많은 버튼. 센터페시아에도. 많은 버튼이 펼쳐져 있다. 버튼을 줄여서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건 어떨까. 익숙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버튼을 찾는 동안 전방시선을 놓칠 수 있다. 직관적,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