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와 동시에 완판. 일부 자동차 업체들이 가끔 쓰는 꼼수다. 1차 주문 물량을 작게 잡아 ‘초도물량 완판’을 만들어 내고 이 소식은 신차출시와 함께 뉴스가 되어 잠재구매자들의 지름신을 강하게 자극한다. 초기판매를 조기에 안정화시켜 선순환을 노리는 일종의 ‘작전’이다.
푸조 2008이 예약판매 1주일 만에 1,000대 판매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작된, 혹은 의도된 ‘이상 열기’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이유다. 의도했다는 것은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넘쳐 불과 수백 대 가량을 배정받은 한불모터스로서는 몰려드는 계약이 ‘발등이 불’이었다. 추가로 불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약의 상당부분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상황. 자칫 제때 공급을 할 수 없으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번지며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이 10월 29일 푸조 2008 신차발표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급거 프랑스로 날아간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한불모터스는 추가로 1,500대 가량을 확보해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약속할 수 있게 됐다.
그 차, 푸조 2008을 시승했다.
2008은 올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모터쇼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유럽에서 검증받고 우수성을 인정받은 차다.
세계적으로도, 국내에서도 큰 트렌드를 형성하는 차급, 컴팩트 SUV다. 국내외의 수많은 차들이 이 시장에서 혈투를 벌이며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새끼 사자도 발톱을 세우고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야무진 모습이다. 강한 개성은 외모에서부터 시작된다.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세련됨을 품은 디자인.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는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났다. 리어램프는 사자의 발톱이 할퀴고 지난 모습이다. LED 주간주행등이 포인트.
루프라인에도 살짝 변화를 줬다. 푸조의 아이코닉 모델 RCZ의 라인이 2008의 루프로 옮겨온 것. 그 루프의 끝에는 스포일러를 달아 포인트를 줬다. 트렁크 바닥은 높지 않다. 짐을 쉽게 실을 수 있고 걸터앉기도 좋다.
인테리어에서도 틀을 깨는 푸조의 고집이 곳곳에 배어있다. 핸들이 유난히 작다. 게임을 즐기듯 핸들을 쥐면 어깨가 좁아진다. 운전자세가 다른 차를 다룰 때와 확연히 달라진다. 그 작은 핸들은 2.8회전한다. 작은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는 게 재미있다. 핸들이 작고 조향비가 좁아 차의 반응이 빠르다. 작은 놈이 휙휙 돌아가는 게 재미지다.
작은 핸들을 조금 아래로 배치하고 계기판은 조금 위로 올렸다. 그래서 운전자가 볼 때 핸들 위로 계기판이 보인다. 핸들 사이로 계기판을 보는 다른 차들과 다른 구조다. 운전을 하는 동안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아도 앞을 보는 그대로 계기판을 볼 수 있는 배치다. 굳이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그 효과를 내는 것. 끊임없이 제품을 파고들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다.
내비게이션 지도가 뜨는 모니터는 정전식으로 반응하는 터치스크린이다. 꾹꾹 누르지 않아도 툭툭 건들고 지나면 빠르게 반응한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전화와 차량설정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시트는 등받이가 얇다. 실내공간을 1mm라도 더 확보하려는 패키징 기술의 결과다. 차 크기에 비해 뒷좌석 무릎 공간이 여유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트렁크는 6:4 분리형 2열 시트 덕분에, 공간을 편의에 따라 360L부터 최대 1,194L까지 확대된다. 2열 시트는 쉽게 누일 수 있다.
트렁크 양쪽 측면에 마련된 2개의 그물망에는 작은 물건을 보관할 수 있으며, 트렁크 매트 아래에는 22리터의 수납공간을 추가로 마련했다.
트렁크 바닥 2열 시트에 다섯 개의 레일이 설치돼 있어, 트렁크에서 앞좌석까지 적재물건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또한 레일 위의 적재물건은 크롬으로 도금된 6개의 고리로 안전하게 고정시킬 수 있다.
재떨이는 물론 CD 플레이어도 자취를 감췄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이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1.6 엔진에 MCP의 조합. 파워트레인까지 평범을 거부한다. 수동변속기 구조에 자동변속기의 조작법을 도입한 MCP는 놀라운 효율과 더불어 차체의 독특한 반응이 특징이다. 가속페달을 꾹 밟고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변속 순간마다 차체가 꺼떡댄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에는 중간에 차가 멈출 듯 탄력이 줄어드는 순간도 생긴다. 운전자가 급할수록 이런 반응은 심해진다. 부드럽게 살살 다루면 어느 정도 이런 반응을 줄일 수 있다.
엔진스톱 기능은 조금 더 정교해졌다. 핸들을 돌려도 엔진정지 상태는 유지되고 재시동 걸릴 때의 진동도 그리 거칠지 않다. 엔진스톱 기능의 유일한, 그러나 만만치 않은 불편함은 재시동시 느끼는 불쾌한 진동이다. 잔잔한 호수에 바위가 떨어지는 것 같은 진동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 진동이 줄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경험이지만 신기함이 일상이 되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줄어든 거다. 물론 그 불편함은 기름을 아낄 수 있다는 달콤함을 선사한다. 0.4초 만에 재시동을 걸어주는 3세대 엔진스톱 시스템으로 시내주행에서 연료를 15% 가량 절약해준다.
255/55R 16 사이즈의 미쉐린 그린X 타이어는 사뿐거리며 도로 위를 달렸다. 스페어타이어는 없다. 쓸데없이 싣고 다니며 기름 낭비할 이유는 없다. 1.6 eHDI 엔진의 최고출력은 92마력. 수치만으로 보면 많이 부족해 보이는 출력은 1,750rpm에서 터지는 최대토크 23.5kgm가 커버한다. 가벼운 몸무게도 경쾌한 주행을 돕는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800 전후로 엔진 배기량을 고려하면 무척 안정된 수준이다. 6단 MCP가 엔진의 효율을 한껏 끌어올려주는 덕이다. 가벼운 발걸음은 시속 130km부터 시끄러워진다. 한계에 이른 듯 엄살을 떨지만 시속 170km를 넘길 때까지 속도는 꾸준히 올린다. 130~170km/h 구간에서 차체의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밟아대도 계기판이 알려주는 연비는 20km/L를 넘긴다. 놀라운 수준이다. 저속주행, 고속주행, 공회전 등 일상적인 주행패턴을 크게 벗어나며 차를 괴롭혔는데도 이 정도 연비를 보였다. 제원표상의 복합연비는 17.4(고속 19.2/도심 16.2)km/L다. ‘연비의 푸조’ 가문 구성원답다. 어떤 모델이든 푸조를 택하면 적어도 연비에 관한한 후회할 일은 없다. 하나같이 짠돌이다.
파크 어시스트는 평행주차를 스스로 한다. 주차공간을 찾고 핸들을 조절하며 정확하게 차를 주차한다. 운전자가 할 일은 핸들에서 손을 떼고 변속레버만 바꿔주면 된다. 어지간히 운전하는 드라이버보다 훨씬 잘 주차한다.
2008이 고성능모델은 아니다. 컴팩트 SUV가 고성능일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커버하고 가끔 떠나는 여행, 주말 레저에 좋은 동반자면 족하다. 게다가 이 차, 푸조 2008에는 다른 차에서는 느끼기 힘든 파리지엥의 강한 개성이 곳곳에 묻어 있다. 디자인과 성능에서 정해진 틀을 깨는 묘미가 있다. 남들 따라하기 싫어하는 개성 강한 합리적 소비자들에게 찰떡궁합이다.
푸조 2008은 모두 3개 트림으로 국내 판매된다. 1.6 e-HDi 악티브2,650만원, 알뤼르 2,950만원, 펠린 3,150만원이다. 매우 공격적인 가격이다. 현대차 투싼과 가격대가 겹칠 만큼 저공침투를 시도하고 있다. 폭주하는 주문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무심코 리어게이트를 열다가 멈칫했다. 무거워서다. 리어게이트로 앞뒤 무게 배분을 맞추려 한 것은 아닐텐데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방충돌을 대비, 안전을 위해서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도 리어게이트는 조금 더 가벼운 게 좋겠다.
연비를 위해 감수해야하는 MCP의 불편함. 수긍은 가지만 불편한건 사실이다. 구매를 고려하는 이들에겐 판단하기 전에 시승을 권한다.
시승/글 오종훈 yes@autodiary.kr
사진 / 임민규 dlaalsrb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