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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를 닮은 벤츠CLS, 그리고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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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CLS를 보며 뜬금없이 떠오른 건 그 여자였다.

천방지축 나대던 십대 후반, 또래 사내들을 줄 세웠던 그녀다. 늘씬한 키에 세상을 다 담을 듯한 눈, 어깨쯤 내려온 단발머리, 하얗다못해 창백한 얼굴은 도도함 그 자체였다. 우중충한 교복조차 맵시있게 소화하며 단발머리 살랑대는 그녀가 버스에 오르면 사내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할 수 없었다. 럭셔리했고, 아름다웠지만 콧대 높은 도도함까지 갖고 있어 많은 남자들이 속만 태우던 그녀였다. 지금 눈앞의 CLS처럼. 세월에 묻혀 지워졌던 기억이 CLS를 보며 되살아난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다.

CLS는 벤츠다. 코끝에 삼각별을 귀걸이처럼 매단,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벤츠다. 제일 저렴한 모델이 8,500만원, 가장 비싼 모델은 1억6,900만원이다. 비싸다고 할 수 없다. 벤츠니까. 최고급으로 치장해 럭셔리하고 섹시한 보디를 가졌고 경쟁자들이 넘볼 수 없는 첨단 기능들이 값어치를 한다. 뭇 사내들의 속을 태우기에 충분한 가격이다.

CLS의 눈은 경이롭다. 생김새만 예쁜 게 아니다. 밝게 앞을 비추지만 상대편 차에 아무런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큰 배려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미덕까지 갖췄다. 그렇다고 내 편리함을 양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편리함을 누린다. 첨단 기술의 이름으로…….

위급상황에서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도 남다르다. 온갖 센서와 반도체 칩을 이용해 충돌 위험이 있을 때 운전자가 한눈을 팔고 있어도 제 스스로 멈춘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안전기술인가. 궁극적으로 자동차 스스로의 자율주행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음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육감적으로 쭉 뻗은 보디라인과 분명한 윤곽, 럭셔리한 인테리어는 도도한 분위기로 보는 이를 주눅들게 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아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흘긋거리며 바라보던,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그녀처럼, CLS도 그랬다. 그나마 가까이서 눈을 맞추고 만져보고 쓰다듬을 수 있어 CLS가 더 현실적이다. 그녀는 헛된 꿈이었고 CLS는 눈 앞의 현실이다.

멀리 있어서 아름다웠던 것일까. 가까이서 살펴보니  빈틈이 있었다. 뒷문을 힘없이 살짝 밀어 닫으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살짝만 밀어도 슬그머니 잡아당기며 앙다문 이처럼 꽉 닫아줄 거라 기대했는데. 누군가 기다리는 것일까. 살짝 벌린 입술처럼 뒷문을 풀어놓았다. 말 그대로 빈틈이다.

평소에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은 허술했다. 트렁크 안쪽 윗부분이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은 구멍 숭숭 뚫린 맨 철판을 마주 보는 민망함이란. 구멍 난 속옷을 보고만 것이다. 아무리 속옷이라지만 제대로 좀 챙겨 입지. 차라리 보지 말 것을…….하지만 너무 탓할 일은 아니다. 럭셔리하지 못한 많은 평범한 차들도 이처럼 구멍 숭숭 뚫린 철판 속옷을 입고 달리고 있으니…….

우여곡절 끝에 멋진 그녀를 차지한 이는 세속적인 눈으로 봤을 때 그리 잘난 게 없는 그저 그런 사내였다고 바람이 전해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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